기적의 아이

나를 선생님으로 만든 아이들- 첫 번째 이야기

스프링스프링 열매를 먹었나.

그 녀석은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하는 듯 가만히 있는 법이 없었다. 제자리 점프를 몇십 번씩 반복한 후에야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손톱을 물어뜯으며 걸었다.


훤칠한 키, 날렵한 턱선, 군살 없는 보디라인과 긴 팔다리, 피부 위로 선명히 보이는 탄력 있는 근질.. 마치 가장 빠르다는 사냥개, 그레이하운드가 인간화된 것 같았다.




상식이는 내가 특수학교 공익근무요원으로 배치된 후 처음 맡은 학생이었다. 조산아로 태어나 브로카 영역과 전두엽 일부가 손상되었다고 했다. 브로카 영역은 좌측 전두엽 하단에서 언어생성과 발화를 관장하는 부위로 알려졌다.


그래서 상식이는 "음~~"이나 "어~~" 밖에 말하지 못했고 지적 기능도 유아 정도로 낮았다. 쉬운 말로 말하면 내가 하는 말을 이해하기는 했다. 그래도 운동신경이 매우 뛰어난 고등학생이고 나보다 키가 컸으며 얼굴도 꽤나 잘생겼다. 나만큼은 아니었지만. 흠흠.

나는 상식이의 학습과 신변처리 등등 학교생활 전체를 전담하게 되었다.


전담한다는 것은 그 아이만 본다는 뜻이다.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기운이 넘쳐흐르다 못해 폭발하는 친구였기 때문에 지켜 볼 사람이 필요했고, 주기적으로 운동도 시켜야 했다. 어느새 나는 그의 개인 트레이너가 되어 있었다.


녀석은 점프와 달리기를 잘했을 뿐만 아니라, 인라인 스케이트와 자전거의 귀재였다. 그가 인라인을 타고 달리는 자태는 빙상을 미끄러지는 김연아같이 우아했고,

자전거를 타고 내달릴 때는 벨로드롬에서 가속하는 경륜 선수를 보는 듯했다.


20대 초반의 건강한 신체로도 전력질주하는 상식이를 잡을 수 있는 공익요원은 별로 없었으니, 여자 선생님들이나 중년의 선생님들이 상식이를 잡아올 수 있을 리 만무했다.


그랬다. 그는 운동 선수의 신체를 갖게 된 아기와 같았으므로 이제 막 현장배치된 요원인 나의 특수 임무는 바로 그가 도주하지 않도록 주시하며, 도주 시 검거(?)하는 일이었다.


그가 강당에서 인라인을 타다가 내 방심을 틈타 복도로 순식간에 빠져나가는 날이면 뒤꽁무니를 쫓기 바빴다. 그러면서도 감탄했다.


와.. 쇼트트랙 이상화를 방불케 하는 직선코스의 폭발적인 부스터와 안정적인 코너링!!

(복도가 교실들을 둘러싸고 육상트랙처럼 이어진 구조였기 때문에, 나중에는 제 자리에 서있다가 녀석이 한 바퀴 돌아올 때 잡았다.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한다.)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별다른 사건 없이 학기가 끝나가던 어느 날, 옆 반 공익 선배가 소집해제를 했고 내가 그 반에 재배치되었다. 그렇게 상식이의 전담요원은 부재하게 되었다.




상식이의 담임은 건장하고 긍정적이며 호탕한 남자 선생님이셨다. 그러나 아무리 젊고 건강한 남교사여도, 보조교사 없이 7명의 중도 지적장애 학생들을 홀로 가르치고 돌보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새로 배치된 반은 젊은 신규 여자선생님이 담임이어서 어쩔 수 없으면서도 못내 걱정이 되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사고가 터지고 말았다.


점심 시간, 운동장에서 자전거를 타고 있던 상식이는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가속하더니 튕겨나가듯 교문 바깥으로 내달렸다. 교문을 나가면 원만한 내리막길이 100m쯤 지속되다가 그 길과 수직으로 만나는 차도가 나왔다.


선생님은 상식이가 교문을 나간 즉시 뛰쳐나갔고, 이를 악물고 죽을힘을 다해 달렸다. 반드시 잡아야만 했다.그러나 하루도 빠짐없이 자전거를 연마한 상식이의 주행 속도와 운동 능력은 상식을 초월했다.


그는 브레이크 한 번 잡지 않고 내리막길을 달려가 차가 달리는 도로 한복판으로 난입하고서, 부드러운 코너링 후 도로 저편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선생님은 아득해지는 정신을 간신히 붙잡고 경찰서에 신고한 후 허겁지겁 학교 방송을 울렸다.


"교내에 승용차를 가져온 모든 교직원들은 지금 즉시 도로로 차를 가지고 나가서 상식이를 찾아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안내드립니다. 교내에......"


그날 차로 출근했던 교직원들이 총출동했지만 상식이의 그림자도 발견하지 못했다. 어느덧 하교 시간이 되어 스쿨버스가 출차하고 난 뒤 학교로 한 통의 연락이 왔다.


경찰서였다.


"00 부근에서 누가 자전거를 타고 도로를 역주행하고 있다는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그 학생인 것 같습니다."


학교는 그 동선을 지나고 있는 스쿨버스 기사님에게 즉시 전화했다. 마침 상식이가 하교하는 버스의 기사님이었다.


"예, 예, 상식이가 00 부근에서 발견됐다고요?

네, 알겠습니다. 찾아보겠...."


운전 중인 기사님의 말문이 잠시 막혔다. 주행중인 버스 사이드 미러로 누군가 맹렬하게 뒤쫓아오는 모습이 보였다.



하교시간, 노란 스쿨버스, 자전거.


상식이였다.


버스가 비상정차하고 문을 열었을 때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버스에 탑승해 자리에 앉고 땀을 스윽 닦았다고 한다. 상식이는 무슨 생각이었을까. 연습은 할 만큼 했으니 도로주행을 한 번 해보고 싶었던걸까.


아무도 모르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몇 시간 동안 상식이는 멈추지도, 어디 한 곳에 머무르지도 않은 채 하염없이 달렸을 것이다. 에너지를 남김없이 태울 때까지, 햇살이 비췰 때 무지개빛으로 빛나는 땀방울을 흩뿌리면서 자신만의 청춘만화를 찍었을 것이다.


그러다 마침내 눈에 익은 도로를 찾아 숨을 고르며 속도를 줄이다가 노란 버스를 발견하고서는 격렬하게 페달을 밟았을 것이다.


이제 집에 갈 시간이다.

쌩쌩 달리는 차를 하나 둘 제치고, 역주행을 감행하면서, 틈바구니를 헤쳐와 끝내 버스를 따라잡았을 것이었다.


가히 기적의 역주였다.




하인리히 법칙에 의하면 큰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그와 관련된 작은 사고가 29회 일어난다고 한다. 상식이의 교출 시도 등 단독 돌발 행동은 그 숫자를 한참 넘었다.

큰 사건이 벌어진 후였지만 지원인력 충원은 없었다. 당장 상식이보다 더 심한 장애 학생들이 많았고, 병무청에서 인력을 곧 보충해주겠다고 했으나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었다. 교육청의 교육실무사 T.O.는 아예 예정에도 없었다.


기다림이라는 명목의 방치는 필연적으로 또 다른 사고를 낳았다.


등교하자마자 어딘가로 사라진 상식이는, 기계실에서 발견되었다. 2L 짜리 통 하나가 뚜껑이 열린 채 널브러져 있었다. 청소용 락스였다. 상식이는 목이 말랐고, 통을 발견했을 뿐이었다. 아마 우유인 줄 알았을 성 싶다. 그의 아귀 힘이 너무 강인했던 탓에 뚜껑은 쉽게 열려 버렸다.


락스는 강알칼리성으로, 체내 조직을 녹여버린다. 락스를 마시면 점막에 화상을 입고 심한 통증과 구토를 유발한다. 식도는 협착되고, 심할 경우 천공되거나 쇼크가 올 수 있다.


응급실에 실려간 상식이는 결국 쇼크로 온 몸이 시꺼멓게 변한 채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학교가 뒤집어졌다. 달려 온 어머니는 오열했고, 담임 선생님은 참담했으며, 학교는 변명할 수 없는 죄인이 되었다. 생각해 보건대 교장 선생님도 미칠 노릇이었을 것이다.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일이었다.


특수교사의 법정충원인원은 특수교육대상자 4명당 1명으로 배치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2024년 기준 대한민국의 특수교육대상학생은 약 11만 5,610명이며, 법정 필요 특수교사는 약 2만 8,902명이었다.


그러나 실제 배치된 특수교사는 2024년 기준 약 65% 으로, 약 10년 전인 2016년의 65%와도, 또 그 10년 전과도 별반 다르지 않다. 특수교육통계에 의하면, 출산율이 가파르게 떨어지고 있는 최근에도 특수교육대상 학생은 해마다 6천 명 이상씩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일주일이 지났다.

믿을 수 없게도 상식이가 등교했다.

아무렇지도 않은 무표정한 얼굴로, 머리를 쓸어 넘기며 유유히 자기 발로 걸어왔다.


너 괜찮냐는 내 물음에 상식이는 씨익 미소지었다.

부활한 예수님을 본 제자들이 이랬을까?

살아있는 기적의 형상을 보는 심정이었다.




그러나 역시, 다신 보고 싶지 않은 기적이다.


이런 기적이라면 어땠을까.


1. 학교는 교내외 출입 안전 장치를 잘 정비해두어 이런 사건을 미연에 방지한다.

2. 교육당국과 정치인들은 아까운 예산을 기꺼이 할당할 만큼 충분한 논의를 지속하면서 환경과 시스템을 개선한다.

3. 교사나 당사자 개인에게 온갖 무거운 의무와 책임을 짊어지우지 않는다.

4. 사리 분별을 할 수 없는 중도의 장애 학생이라도 자신과 타인을 상하게 하지 않도록 안전하게 지켜준다.

5. 나아가 맘껏 뛰어놀며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도록 적절한 공간을 마련해준다.

이렇게 함으로써 수십 수백 수천 명의 다른 상식이들을 지켜주고 구해내는 게 진짜 기적이 아닐까.


기적이란 과연 뭘까?

수십 대의 차 사이를 자전거로 역주행하고도 살아남는 일도, 한창 유행했던 “바텐더, 락스 한 잔.”을 진짜로 실행하고 중환자실에서 생환하는 일도 누군가는 농담으로 여길 기적일테지만.


이 번잡스럽고 온갖 위험이 도사린 세상에서 평안히 살아가는 일이 오히려 기적 아닐까.


그것은 우리가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를 생각할 때라야 가능한 일이기에, 다른 이를 생각하는 마음이야말로 가장 기적에 가깝다.


그리고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과 사랑받는다는 건 그 자체로 기적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먼저 생각하니까.

이 신기한 일도 금세 잊혀진 일이 되었으니까.


그래, 내가 보고 싶은 기적은 그런 거였다.




그래도 그립기는 하다.

십 수년이 지났는데, 잘 지내고 있으려나.

나의 기적의 아이.


*보고 겪은 일을 썼으나 인물의 이름과 상황은 일부 각색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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