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면 족하다는 듯이-
영화 ‘버팔로 66’을 보고 나서
-그것이면 족하다는 듯이-
시아
한 소년이 있다. 강아지를 끌어안고 있는데 그것이면 족하다는 듯 미소를 띠고 있다. ‘빌리 브라운, 7세’라는 자막이 나온다. 이어 소년의 출생과 출신이 적혀있다. ‘1966년 12월 26일생. 뉴욕 버팔로 출신’. 그리고 덧붙인 글 하나, ‘강아지 빙고와 함께’.
영화는 7살 빌리의 스냅사진 한 장으로 시작한다. 그다음 장면은 을씨년스럽다. 청년이 된 빌리는 5년 복역을 치르고 출소한다. 빌리는 1만 불짜리 스포츠 내기를 했고 졌다. 그 대가를 치르라는 협박으로 타인의 죄를 덮어쓰고 감옥에 간다. 빌리의 목표는 단 하나다. 내기를 걸었던 미식축구팀 ‘버팔로’의 선수 스코트 우드를 해치우는 것이다. 일단, 빌리는 집에 전화를 건다. 부모는 빌리의 사정을 전혀 모르고 있다. 빌리는 친구 군한테 정기적으로 집으로 편지를 보내도록 당부했고, 군은 그 약속을 지켜왔던 것이다. 편지 속에는 고등학교 때 짝사랑했던 웬디를 등장시켜서 결혼했다고 적어 놓았다. 모친이 새신부를 데리고 오라며 채근하니, 빌리는 핑계를 대다가 돌연 그러겠다고 하며 전화를 끊는다. 그런 뒤 충동적으로 댄스 수강생인 라일라를 납치하고 만다. 협박과 거친 애원을 해가면서 라일라에게 웬디 발삼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아내 노릇을 요구한다.
빌리의 집은 어색하기 짝이 없다. 5년 만에 아들을 보고도 인사 한번 없이 아내를 부르러 가는 부친. 미식축구에만 열광하며 라일라는 거들떠보지도 않는 모친. 식탁 위 칼날이 자신을 향해있다며 자신을 찔러 죽이려고 그러는 거냐며 고함을 지르는 부친, 거기에 항변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빌리. 그 와중에도 라일라는 아내 역할을 너무나 잘해 낸다. 오래전 가수였다는 빌리의 부친한테 노래를 들려달라고 한다. 그는 수십 년 동안 부르지 않았던 노래를 라일라 앞에서 열창한다. 달콤한 선율에 젖어있던 라일라가 앙코르를 요청하자 부친은 고개를 젓는다. 라일라가 재차 불러 달라고 하자 급기야 고함까지 지른다. 모친은 초콜릿 알러지로 온몸이 퉁퉁 부어올랐던 빌리를 기억하지 못하고 자꾸만 초콜릿을 권한다. 부친은 사진 속 7살 빌리의 품에 안긴 강아지 빙고를 빼앗아 무참하게 내버린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 각자 자신의 아픔 속에 찌들어 가족을 돌아보지 못한다. 냉담하거나 외면하거나 무관심하다가 별안간 자신을 해친다고 오해하며 공격하기만 한다.
빌리는 권총을 지닌 채 스트립쇼 극장을 운영하는 전직 선수 스코트를 찾아간다. 마침내 스코트의 이마에 총구를 들이대려던 순간, 빌리는 상상한다. 스코트를 쏘고 연이어 자신도 쏜다. 주위에 낭자한 피를 본다. 그런 다음 자신의 무덤에 멍하니 앉은 부친과 여전히 스포츠에 열광하는 모친을 상상한다. 모든 게 변하지 않는다. 늘 그 모양 그 꼴이다. 박제된 시간이 숨통을 끊기만 기다린 채 버틸 뿐이다. 그런데 아니다. 모든 게 변한다. 왕년의 선수는 헤픈 호색남이 되어있다. 한때 가수였던 부친은 만성 우울증 환자가 되었다. 모친은 광적으로 스포츠에 집착하며 살아왔다. 또 어떻게 변할 수 있을까? 빌리는 숨죽이고 있던 영혼의 이마가 근질거리는 낌새를 알아차린다.
다음 순간, 빌리는 질펀한 욕정 속에 파묻힌 스코트가 내미는 술잔을 거부하고 클럽을 나온다. 권총은 강물 속으로 멀리 던져버린다.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라일라가 부탁했던 핫초코를 사면서 안면도 없는 손님한테 하트 쿠키를 사주기까지 한다.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일까?
그 직전, 라일라는 태아처럼 웅크린 채 잠이 든 빌리를 보듬으며 설핏 잠이 들었다. 그러다가 시간에 맞춰 클럽에 가려고 나서는 빌리한테 라일라는 말한다. “너를 사랑해. 네가 돌아오지 않으면 너무 슬플 거야.” 이 고백은 범죄자한테 이상한 애정을 느끼는 스톡홀름 증후군일까? 빌리는 눈물을 머금으며 자신을 바라보는 라일라를 기억한다. 자신이 먹지 못하는 핫초코를 오로지 그녀를 위해 사면서 빌리는 환하게 웃는다. 볼링장에서 스트라이크를 막 친 것처럼. 강아지 빙고를 품에 안은 일곱 살 빌리처럼. 깊이 박힌 상처를 벗어던지고 마치 새롭게 태어난 것처럼. 세상에 그것이면 족하다는 듯이.
* 호모 룩스(HOMO LUX)는 빛으로서의 인간을 일컫습니다. 라틴어로 인간이라는 ‘호모(HOMO)’와 빛인 ‘룩스(LUX)’가 결합한 단어입니다.
* ‘호모룩스 이야기’는 치유와 결합한 시사와 심리, 예술과 문화에 대한 에세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