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째 만남: 사랑해 --- 2

by Sia


케빈 컨(kevin kern)의 ‘return to love’를 배경으로 해서 틱낫한의 시 ‘서로 안에 있음’을 낭송해 보자고 했다.



서로 안에 있음


틱낫한


해가 내 안으로 들어온다

구름과 강과 더불어 내 안으로 들어온다

나 또한 강으로 들어간다

구름과 강과 더불어 해로 들어간다

우리가 서로 안에 들어가지 않는

그런 순간은 없다

그렇지만 내 안으로 들어오기 전,

해는 이미 내 안에

구름과 강과 더불어 내 안에 있었다

강으로 들어가기 전

나는 이미 그 안에 있었다

우리가 서로 안에 들어가 있지 않는

그런 순간은 없었다

그러니, 알아다오

네가 숨을 멎는 그 순간까지

내가 네 안에 들어있음을



이 시를 지은 틱낫한(1926년 10월 ~2022년 1월)은 베트남의 승려이자 시인이다. 서로 안에 있다는 제목이 이 시를 내용을 아우르고 있다. 해가 구름과 강과 더불어서 내 안으로 들어온다. 나도 강으로 들어가고 구름과 강과 더불어 해에게로 들어간다. 우리가 서로 안에 들어가지 않는 순간은 없다. 그렇지만 이렇게 내 안으로 들어오기 전에도 해는 이미 내 안에 있었고, 구름과 강과 더불어 내 안에 있었다고 한다. 강으로 들어가기 전에도 나는 이미 강 안에 있었다고 한다. 우리가 서로 안에 들어가 있지 않은 순간은 없었다. 도대체 무슨 말인가. 해, 구름, 강은 그냥 보이는 풍경 속에 있지 않은가. 풍경 안으로 들어가다니, 그 풍경들이 내 안으로 들어오다니. 한술 더 떠서 내가 그 풍경들 속으로 들어가다니! 그것도 내가 이미 그 안에 있었다니, 도대체 무슨 말인가? 마지막 연이 궁금증을 해소하는 단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알아다오 / 네가 숨을 멎는 그 순간까지 / 내가 네 안에 들어있음을’. 이쯤 되면, ‘나’는 단순한 육체를 가진 누구를 말하는 것이 아닐 것 같다. 숨을 멎는 그 순간까지도 ‘나’는 당신의 안에 있다. 도대체 ‘나’는 누구일까?


-이 시는 굉장히 어렵군요. 어려운 단어가 하나도 없는데도 어려워요. 서로 안에 있다는 것은 눈에 보이는 걸 의미하는 게 아닌 것 같아요. 눈에 보이지 않는 것, 그런 세계를 말하는 것 같은데...... 굉장한 의미가 있는 것 같은데도 잘 들어오지 않네요. 그러면서 또 곰곰이 생각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인상 깊은 구절이나 단어를 말해보자고 했다. 라는 ‘숨을 멎는 그 순간’이라고 했다.


-참, 많이 상상해 봤어요. 숨을 멎게 될 때요. 아프지는 않을 것 같은데, 허전할 것 같아요. 아니, 서러울 것 같아요. 뭔가 해내야 하는데 하지 못한 것이 있어서요. 그게 물질은 아닌 것 같아요. 마음에서 마구 얽혔던 것들 같아요.


‘해내야 하는데 하지 못한 것’을 게슈탈트 심리학에서는 ‘미해결 된 과제’라고 한다. 얽히고설킨 것들은 좀처럼 풀리지 않는다. 응어리진 채 오랫동안 살아가게 된다. 앙심이나 원한, 억울함이나 분노 등등 미해결 된 과제는 부정감정과 연결된다. 더 시간이 지나면 그런 감정들은 슬픔이나 아픔, 괴로움으로 굳어진다. 마음에 커다란 돌덩이를 넣고 살아가는 셈이다. 다 잊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마음 깊숙이 가라앉아 있을 뿐이다. 무거운 돌덩이가 저절로 사라질 리가 없다. 어떤 계기로 내면을 들여다보다가 깜짝 놀라고 만다. 이렇게 무거운 돌덩이가 마음 안에 있다는 것이 믿을 수 없을 정도다. 서둘러 외면하면서 다짐해 본다. 내면을 바라보는 짓 따위는 하지 않겠다고. 고통 대신 즐거움을 추구하면서 살아가야겠다고. 그렇게 살면 잘 사는 것이라고 여기지만, 사실은 아니다. 오랫동안 자신 안에 있었던 흉측한 돌덩이의 존재를 결코 잊을 수가 없다. 잊는 척만 하는 것이다. 자신의 어느 부분을 극도로 혐오한 채 자신을 온전히 사랑할 수도 없다. 그러니, 미해결 된 과제는 해결할 수밖에 없다.


대부분 미해결 된 과제는 인간관계에서 이뤄진다. 갈등과 불통으로 인해 부정감정에 사로잡힌 채 굳고만 것이다. 고인 물이 썩듯이 마음에 고인 감정들도 역한 냄새를 풍긴다. 깊은 마음에 존재하는 영혼은 그걸 알고 있다. 영혼의 중심점은 우주의 에너지 또는 신과 합일을 이루고 있다. 신이나 우주의 에너지는 경계가 없다. 나와 네가 하나고 세상과 우주와도 하나다. 구름, 강, 해와 나가 하나이고 서로 안에 있다. 3차원적인 시각에서 보자면, 분명한 한계를 지을 수밖에 없다. 4차원 이상의 시각에서는 단지 무경계인 에너지 흐름이 있을 뿐이다. 서로 안에 있을 수밖에 없다. 인간은 신비롭다. 육체는 다분히 3차원이지만, 영혼은 4차원 이상이다. 3차원과 4차원 이상이 함께 어우러진 존재가 인간이다. ‘4차원 이상’이라고 하는 이유는 이론 물리학자들이 밝힌 11차원이 있기 때문이다. 초끈이론과 M-이론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우주를 이루고 있는 공간이 11차원의 초공간 속에 존재한다고 보았다. 이 과학자들은 자연에 존재하는 다양한 입자나 물질은 끈이나 막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들이 진동하는 패턴에 따라 각기 다른 모습으로 보일 뿐이라고 한다. 흔히 볼 수 있는 것만 보고 보이지 않는 것은 염두에 두지 않는다. 하지만 우주가 그렇듯이 보이지 않는 것은 무한대로 펼쳐져 있어서 감히 볼 수 있는 것과 비교할 수도 없이 강력하게 존재하고 있다.


에너지도 그렇다. 인간을 이루는 비물질인 영혼도 에너지다. 에너지는 경계가 없다. 단지 흐르고 번져갈 뿐이다. 숨이 멎는 순간, 영혼은 육체를 떠난다. 마치 옷을 벗듯이. 아무런 미련 없이 꽃이 땅에 떨어지듯이. 한껏 고운 빛깔로 물든 단풍잎이 떨어지듯이. 그렇게 육체를 벗어난 영혼은 가야 할 길로 갈 것이다. 육체가 사라지면 영혼도 사라진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비웃겠지만, 생각해 보자. 육체는 눈에 보이기 때문에 육체의 기능이 멈추면 당연히 없어진다. 영혼은 처음부터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은 존재가 사라진다니? 그야말로 얼토당토않은 말이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보이지 않아서 잘 모르겠고, 알고 싶지도 않다고. 알거나 모르거나 간에 영혼은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고통 속에서 성장하고, 위기 속에서 극복하면서 영혼이 자라나는 방향으로 안내하고 있다. 마지막 때가 되면,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영혼의 메시지를 받아들이는 이는 편안하게 눈을 감는다. 그러지 못할 때, 미해결 된 과제가 불거져 나와서 여간 불편한 게 아니게 된다. 뭉쳐진 감정으로 온갖 상념 속에 시달린 채 눈을 감는다. 영혼의 중심은 이미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그렇게 아는 대로 실천하지 못할 때 영혼은 온전해지기 힘들게 된다.


‘영혼의 중심’이라는 말이 이상하게 여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 영혼의 가장자리도 있고, 중심자리도 있냐고 반박할 수도 있겠다. 인간의 마음을 원이라고 볼 때, 원의 중점이 바로 영혼의 중심, 심지라고 할 수 있다. 중심 이 외는 모두 가장자리다. 흔히 영혼이 타락했다고 할 때, 영혼의 심지가 아니라 가장자리를 일컫는다. 영혼의 심지는 결코 타락할 수가 없다. 태어난 그대로 존재한다. 죽음 이후의 세계에서도 이 심지는 그 자체로 옮겨 간다. 누구나 다 똑같은 심지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만의 개성에 따라 다르게 드러난다. 통합 예술·문화 치유인 심상 시치료에서는 이 심지를 ‘빛’이라고 한다. 각자 개성에 따라 자신만의 빛깔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죽음은 육체를 과감하게 버리고, 영혼만으로 4차원 이상의 영역으로 가는 것이다. 영혼의 가장자리는 버리고 중심만 가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심지를 비롯해 영혼을 이루는 모든 것이 가는 것이다. 심지를 포함해서 한통속이 된 영혼의 태에 따라 맞는 코드대로 접합하게 될 것이다. 마치 자석에 끌려가듯이 아주 자연스럽게 사후세계로 갈 것이다. 그곳이 어떤 곳이건 간에 결국 영혼의 수준 자체가 갈 곳을 결정 내리게 될 것이다.


‘네가 숨을 멎는 그 순간까지 내가 네 안에 들어있음을’이라는 구절에서 ‘내’가 누구인지 물어보았다. 라는 모르겠다고 했다. ‘영혼’이라고 생각해 보라고 했다. 라는 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을 작별하기 직전에 이른 나를 상상해 보자고 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그 미래의 나, 삶을 마무리하기 직전의 내가 지금, 현재, 이 순간의 나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적고 읽어보라고 했다. 라는 한참 동안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침묵했다, 그러다가 결심이라도 한 듯 빠르게 써 내려갔다.


“라야. 안녕? 나는 생의 마지막 순간, 육체를 벗어나기 직전인 영혼이야. 지금까지 살아오느라 애 많이 썼다. 많이 힘들고 아팠지? 그런데 지금 나는 아주 편안하고 가볍단다. 너는 꼭 해야 할 것을 해결하게 될 거야. 지금 당장은 그러지 못하지만, 분명히 그걸 해결하고, 평안한 마음이 될 거야. 그래서 지금의 내가 있는 거야. 천천히 가도 되지만, 걸음을 멈추지는 말아라. 잘하지 못해도 되지만, 아예 안 하지는 말아라.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마음의 돌덩이가 밖으로 빠져나올 거야. 라야, 언제나 변함없이 널 응원하고 있을게. 사랑해!”

라는 상기된 얼굴로 읽었다. ‘사랑해’라는 부분에서 살짝 떨기도 했다.


-사랑한다는 말이 나왔어요. 참, 어이없게도요. 라가 웃었다.


그건 참으로 멋지고 아름다운, 빛나는 말이라고 했다. 어이없다니, 그 말이 더 어이없다고 했더니, 라가 더 크게 웃었다.


눈을 감고 복식호흡을 하면서 온몸과 마음을 이완해 보자고 했다. 그리고 떠올려보자고 했다. 나는 영혼의 중심, 핵심, 심지이다. 그 어떠한 일을 겪고, 어떠한 고통과 아픔과 좌절, 분노를 겪어도 결코, 빛바래지 않는 한결같은 영혼의 중심이다. 이 영혼의 중심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변하지 않는다. 영혼의 중심, 핵심, 심지는 신 또는 우주의 에너지와 이어져 있다. 그 사실을 나는 알고 받아들인다. 나는 지금 영혼의 중심을 느낄 수 있다. 어떤 느낌인지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이 순간의 이 느낌을 그대로 간직한 채 눈을 떠보자고 했다.


-원의 중앙을 떠올렸어요. 중앙에 아주 환한 옥빛이 빛나고 있었어요. 너무나 아름답고 환한 빛이 사방을 가득 채우고 있었어요. 제 안에 빛이 있다니, 신기하고 신비롭습니다.


이번에도 라는 제대로 해냈다. 실은 내담자마다 다르다. 눈을 감은 채 아무 느낌도 이미지도 떠오르지 않는다고 하는 이도 있다. 그럴 때조차 느낄 수 있도록 만드는 장치가 있다. 눈을 뜬 채 상상해보게 하는 것이다. 인간의 상상력은 엄청나다. 그저 상상만 해도 인간의 뇌는 그렇다고 믿어버리는 특징을 갖고 있다. 그렇게 이미지를 상상하면서 얘기를 나누다 보면, 떠오르게 되는 작용이 일어난다. 눈을 감고 하는 심상 시치료 기법을 이렇게 융통성 있게도 진행할 수 있다. 라는 눈을 뜬 채 상상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되었다. 유난히 감성과 감수성이 풍성하기 때문일 것이다.


-저번 시간에 사이코드라마인가요? 그 과정을 했을 때요. 엄마가 저한테 미안하다고 했는데요. 저는 그냥 그 말을 받는다고만 했지 용서한다고는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용서를 하면 마지막 순간에 편안하게 눈을 감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오늘, 갑자기 들었어요. 용서라면 치를 뜰만큼 싫은 데도요. 미래의 내가 현재의 나에게 분명 해결할 거라는 암시를 줬거든요. 그게 용서인 것 같아요. 하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에요.


그저 묵묵히 라의 말을 들어주었다. 이번 회기 참여 소감을 묻자 라가 웃으면서 말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로 간 도도새가 저한테 한 말이 ‘사랑해!’였는데, 삶의 마지막 날의 내가 지금의 저한테 하는 말도 ‘사랑해!’였어요. 묘하게 통하고 있어요. 저는 아직 저를 사랑하지 않는데, 왜 다들 사랑한다고 할까요? 그게 궁금해요.


그 궁금은 참, 멋진 의문이었다. 도대체 사랑하지 않는데 왜 사랑한다는 말이 마음에서 일어날까? 라는 돌아가서 생각하고 또 생각할 게 틀림없다. 나는 흐뭇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다음 시간까지 과제는 ‘나만의 새’ 도도새의 메시지를 하루 한 번, 날마다 듣고 적어오는 것. 그리고 에너지가 되는 세 가지 말, ‘괜찮아. 잘했어, 잘할 거야’를 하루 3번 하는 것이다. 라는 치자꽃처럼 웃으며 치료실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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