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째 만남: 사랑해
-돌멩이를 만난 건 운명이었어요. 알바를 마치고 집에 막 도착했을 때였어요. 달이 은은하게 비추고 있었어요. 아파트 옆 화단에 얌전히 있던 돌이었어요. 온통 하얗고 조그마했어요. 손으로 집어 올리니, 돌멩이가 깜짝 놀라는 듯했어요. 손으로 쓰다듬으면서 집으로 왔어요. 목욕을 시켜주고 닦이고 나서 책상에 앉아서 돌멩이를 바라봤어요. 군데군데 움푹 들어간 상처가 많은 돌이었어요. 험난한 생을 살아왔을 거라고 짐작했어요. 얼마나 많은 일을 겪고 부딪히면서 살았는지 모서리가 하나도 없었어요. 아주 둥글고 단단하고, 씩씩했어요. 돌멩이와 마주한 채 말을 나눴어요. 고생 많았구나. 여기 온 것을 환영해! 돌멩이가 답했어요. 고마워. 나를 데리고 와줘서. 너도 나처럼 둥글둥글해질 거야. 내가 응원할게. 날마다!
라는 가방에서 티슈에 싼 돌멩이를 꺼냈다. 보여주려고 들고 왔다고 했다.
-‘반려석’이라는 말도 있겠지요? 이제부터 이 돌멩이가 제 ‘반려석’이에요! 돌멩이가 나를 응원해 준다니, 멋진 일이에요.
라는 방긋 웃었다. 둥그스름한 미소였다.
-괜찮아, 잘했어, 잘할 거야는 매일매일 하루 세 번씩 했어요. 한 번도 빠지지 않고요. 이제 아침에 눈만 뜨면 그 말을 하고, 자기 전에도 하는 습관이 붙은 것 같아요. 그 말 덕분인지 어제 알바하는 식당에서 실수를 좀 했는데 잘 버텨냈어요. 손님이 주문하는 것을 잘 알아듣지 못하고 다른 것을 갖다 드렸거든요. 그래서 혼이 났는데도 속으로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하며 저를 지지해 주었어요.
그런 라한테 박수를 보내주었다. 실수할 때 대부분 자신을 호되게 나무란다. 혹독하게 자신을 꾸짖고 때리다 못해 자책감에 빠지게 된다. 흔히 타인에게는 관대하고 자신에게는 엄격하라고 한다.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고 자신을 몰아붙이곤 한다. 그것이 자신을 관리하고 조절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여기기도 한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긴장 속으로 몰아넣게 되면 점점 자신감이 없어지고 실수가 더 잦아진다. 잘못한 것을 무조건 괜찮다고 하면, 실수를 허용하는 꼴이 아니겠냐고 우려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은 아니다. 실수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한, 실수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간절해진다. 실수를 알아차리는 순간, 책망의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안 그래야겠다는 생각은 나중에 들기 마련이다. 당장 지금, 이 순간에는 당황하는 마음이 앞선다. 그때, ‘괜찮아’라고 하는 것이 바로 위로와 격려다. 그 말을 누군가에게 듣고 안심하기를 기다리려면 절묘한 타이밍을 놓치기 쉽다. 상대방은 그 말을 해주지 않고, 나는 그 말을 듣고 싶다. 어긋날 수밖에 없는 숱한 사유로 인해 격려의 기회를 놓치고 만다. ‘괜찮아’라고 내가 듣고 싶을 때 스스로 그 말을 해준다면, 정말 괜찮아질 것이다. 그렇게 말한다고 태만해지는 것이 아니다. 그 말로 인해 위축된 마음이 기지개를 켜는 것이다. 실수투성이의 삶을 수정해 가려는 용기도 낼 것이다.
라한테 저번 시간에 미처 하지 못한 것을 할 순서라고 했다. 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번 시간에 했던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의 ‘기억이 나를 본다’라는 시를 기억하는지 물어보았다. 라는 강렬한 시이니 당연히 기억한다고 했다. 지난 시간에 그 시를 통해 너무나 가까이 있는 기억의 숨소리를 과거에서 한 장면 찾아내었다고 했다. 라가 맞다며. 공책을 펼쳐서 적은 글을 바라보았다. 이제, 여기로 가보자고 했다. 라는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며 알겠다고 했다.
눈을 감은 채 복식호흡을 해보자고 했다. 라는 익숙한 듯 길고 편안하게 숨을 내쉬고 들이마셨다. 온몸을 이완하고 나서 마음속으로 도도새를 불러보게 했다. 도도새가 지금, 라의 앞에 나타났다. 다음 순간 세 번을 세면 도도새는 라의 과거 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도도새가 절실했던 과거의 한순간 속으로 도도새는 날아갈 것이다. 하나, 둘, 셋. 도도새는 내 과거의 한순간에 있다. 언제인가? 몇 살 때인가? 어떤 상황인지 주위를 둘러보자. 어떤 느낌인지 있는 그대로 느껴보자. ...... 과거의 순간 속에서 나를 찾아보자. 도도새는 내 옆에 바짝 다가가고 있다. 과거의 나한테 다가가서 도도새는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다. 무엇이라고 하는지 들어보자. 나도 덩달아 거기에 답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과거의 나와 도도새가 대화를 주고받는 것을 들어 보자. ...... 자연스럽게 대화를 마무리하고 있다. ...... 이제 대화를 마무리하고 세 번을 세면, 도도새는 지금, 현재, 이 순간의 마음으로 돌아오고, 눈을 뜨면 된다. 하나, 둘, 셋.
라는 눈물을 글썽거린 채 눈을 떴다. 뭔가 복받쳐오는 것이 있는 듯했다. 그저 침묵을 지키고 있어서 깰 수가 없었다. 일이 분쯤 지난 다음 라가 입을 열었다.
-공책에 적은 작년으로 날아간 게 아니었어요. 도도새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으로 자살하려고 했을 때로 갔어요. 어떻게 죽을지도 모른 채 무조건 죽고 싶다고 되뇌고 있던 순간으로 갔어요. 방안에 혼자 누워 있었어요.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어요. 모든 피가 밖으로 다 빠져나가 버린 듯했지요. 도도새가 다가와서 그냥 안아줬어요. 도도새한테 푹 파묻혔어요. 얼마나 포근하던지요! 도도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저도 그랬고요. 그런데 이미 제 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어요. 도도새가 제 마음을 안다는 사실도 제가 알았고요. 그렇게 안고 있다가 선생님이 마무리하라고 할 때, 도도새가 포옹하던 팔을 내리면서 말했어요. “사랑해.”
너무나 놀라워서 나는 얼음이 되고 말았어요. 그토록 진심이 담긴 사랑 고백을 처음 들었거든요. 눈물이 났어요. 이 사랑을 얼마나 내가 그리워했었는지 그제야 알았어요. 그러니까 내가 죽고 싶었던 것은 그동안 사랑이 없어서라는 사실을 지금, 이 순간에 깨달았던 거예요. 도도새의 말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어요. 그래도 도도새는 따뜻한 눈빛으로 내게 인사를 했어요.
라가 말했다. 해맑아진 얼굴이었다. 사실, 나도 놀랐다. ‘사랑해’라는 말을 듣는다는 것을 특별한 경험이었다.
-그래서 제가 지금까지 안 죽고 살아있나 봐요. 숱하게 자살을 꿈꿨지만요. 도도새의 사랑 덕분에요.
라가 눈빛을 빛내면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