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번째 만남: 도도새 --- 4

by Sia

엄마도 맞을만하지 않냐고 했다. 그동안 속으로 수백 번도 더 엄마를 죽이지 않았냐고 했다. 라는 갑자기 침묵을 지킨 채 엄마를 노려보았다. 야! 하고 소리를 지르면서 내리치라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먼저 엄마를 치면서 야! 라고 했다. 한번 해보라며 바타카를 건넸다. 라는 약간 주저하면서 그렇게 했다. 더 세게! 더 많이 세게! 라고 내가 주문을 했다. 라는 대여섯 번은 조심스럽게 휘두르다가 점점 강도를 높여갔다. 더, 더 세게 내리쳤다. 소리도 더 크고 더 빠르게 이어졌다.


야! 야! 야! 야! 야! 야! 야!야!야!야!야!


라는 죽을힘을 다해 내리치고 있었다. 라의 얼굴이 흠뻑 젖었다. 땀도 눈물도 함께 나고 있었다. 눈을 감으려고 해서 뜬 채로 하도록 했다. 자칫하면 다칠 수도 있었다. 의자가 나가떨어질 것 같아서 의자 등받이를 내가 잡고 있었다. 혼이 빠져나갈 정도로 몰입해서 의자를 치고 있는 라. 쌓였던 울분과 서러움과 억울함의 덩어리를 울컥울컥 쏟아내고 있었다. 산의 정상에 거의 이르렀다고 여겨졌을 때, 라를 불렀다. 그리고 잠시 호흡을 고르도록 했다. 마지막으로 소리치면서 다섯 번만 더 바타카를 내리치자고 했다. 지금까지 가져왔던 온갖 감정들을 이 다섯 번으로 결판내자고 했다. 물론 이것 가지고 다 해소될 수는 없다. 부정감정들은 갈수록 쌓일 수밖에 없다. 이 다섯 번으로 해결하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해소하는 실마리가 될 수는 있다. 헝클어진 응어리가 풀어가는 시작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라는 있는 힘껏 내리치면서 외쳤다.


야! 야! 야! 야! 야!


실제 하지 않는 산, 신비롭고 영험한 눈이 덮인 설산의 정상에 드디어 도착했다. 라는 숨을 몰아쉬며 몸을 반으로 접었다. 다리에 얼굴을 파묻은 채 서 있었다. 편안하게 자리에 앉으라고 했다. 숨 고르기를 할 시간을 주었다. 물도 마시도록 했다. 라는 땀과 눈물이 범벅된 얼굴을 티슈로 닦았다. 그런 다음 맞은편에 앉은 엄마를 바라보라고 했다. 엄마의 표정을 보라고 했다.


-고개를 숙이고 있어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있어요. 풀이 확 죽었어요.


엄마한테 하고 싶은 말을 해보라고 했다. 라가 입을 열었다.


-도대체 왜 나한테 그렇게 괴롭힌 거야? 내가 딸이긴 해? ...... 아무 말도 없어요. 그냥 고개만 숙이고 있어요.


라한테 일어나라고 했다. 중립의 자리에 오게 해서 엄마 자리를 가리켰다. 저 자리에 앉으면 엄마가 된다고 했다. 그리고 자리에 앉게 하고, 나는 라의 자리에 앉아서 라가 되겠다고 했다. 엄마가 된 라는 고개를 숙이고 앉아있었다. 나는 그런 엄마를 노려보며 분노에 차서 말했다.


-도대체 왜 나한테 그렇게 괴롭힌 거야? 내가 딸이긴 해?

엄마가 된 라는 고개를 더 숙였다. 그리고 들릴 듯 말 듯 한 소리를 내면서 입술을 달싹거렸다.


-말해봐! 도대체 나한테 왜 그랬는지? 그럴 거면 왜 나를 낳았어?

내가 라가 되어 따졌다.


-나도 그렇게 컸단다. 네 할머니한테서. 나도 모르게 자꾸 그렇게 된다.

엄마가 된 라가 말했다.


-엄마는 잘못했어! 괴물 같았어! 아니, 괴물이야!

라가 된 내 말에 엄마가 된 라가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맞아. 엄마는 괴물이야. 괴물......

다시 라가 된 내가 말했다.


-미안하지도 않아? 한 번도 미안하다고 하지도 않았잖아!

고개를 들며 라가, 아니 라의 엄마가 말했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아서도 미안해. 나도 모르게 자꾸 그렇게 된단다. 미안해.


나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게 했다. 라는 라의 자리에 가고 내가 엄마 자리에 앉았다. 나는 고개를 숙인 채 라가 했던 말부터 시작했다.


-나도 그렇게 컸단다. 네 할머니한테서. 나도 모르게 자꾸 그렇게 된다.

라는 억울함이 묻어난 목소리로 따졌다.


-그렇다고 그러면 안 되잖아. 엄마는 괴물 같았어. 나를 딸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러면 안 되는 거였어!

라가 야무지게 따졌다.


-미안하다. 정말 미안해,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아서도 미안해. 나도 모르게 자꾸 그렇게 된단다. 미안해.

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엄마를 노려보고 있었다. 라와 나, 아니 라와 라의 엄마 역할을 하는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렇게 일 분 남짓 흘렀다. 라는 차마 다 털어놓지 못하는 엄청난 이야기를 담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윽고 라가 말했다.


-엄마는 용서해 줄 수가 없어. 나한테 우울증이 생기게 했잖아. 그런데 엄마도 우울증이나 뭐 그런 비슷한 정신적 문제가 있겠지. 엄마를 용서해 줄 수는 없지만, 미워하지 않으려고 해. 나도 살아야 하니까. 앞으로 그러지 말라는 말도 안 할 거야. 또 그럴 거니까. 평생 엄마는 엄마가 한 짓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나겠지. 이제는 엄마 때문에 내 영혼을 갉아먹는 짓은 하지 않을 거야. 엄마 때문에 자살하려고 하지 않을 거야. 나를 자꾸만 많이 괴롭히면, 집을 나가서 살 거야. 이제 엄마를 미워하는 것은 그만하려고 해. 엄마는 엄마 인생을 살아. 나한테서 신경 좀 끄고!


-미안해. 미안하다. 정말 미안해.

나는 라의 눈을 바라보며 계속 이 말을 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간절했고, 아팠다.


-진정으로 하는 말인지 모르겠지만, 그래. 미안하다는 말 받을게. 정말 나한테 미안한 짓을 많이도 저질러왔어!

라가 엄마인 내게 말했다.


-고맙다. 사랑해. 내 딸.

울면서 간신히 속삭이듯 라한테 고백했다. 라는, 흠칫 놀라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입을 닫고 있었다. 내가 다가가서 안아주었다. 갑자기 라가 울었다. 엉엉 소리를 내면서 울었다. 한동안 그렇게 울고 있었고, 나도 울었다. 나도, 라도 북받치는 감정으로 울고만 있을 뿐이었다.

족히 오 분은 지났으리라. 나는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포옹했던 팔을 풀었다. 티슈로 라의 얼굴을 닦아 주었다. 그리고 다시 중립의 자리에 서서 말했다.


-이제, 엄마를 보내줄까요? 라가 결정하세요.

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라의 엄마를 향해 말했다.


-오늘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어요.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그리고 치료실 문을 일부러 소리 나게 열고 잠시 뒤 닫았다. 엄마는 가셨다. 이제 마음을 추슬러야 할 때가 되었다. 원래 예정했던 나만의 새를 과거로 보내는 일은 다음 회기 때로 미뤄야 했다. 한 회기당 두 시간 안에 진행해야 하는데, 벌써 두 시간 반이나 흘렀다.


오늘 여섯 번째 만남이니, 계획했던 회기의 절반을 해낸 것이다. 참여 소감을 물어보니 라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오늘이 몇 달, 아니 몇 년이 된 것만 같아요. 갑자기 시간이 휘리릭 빨리 감겨서 지나가 버린 것만 같아요. 새로운 경험이었고, 마음 깊은 곳까지 길이 뚫린 듯이 시원한 느낌입니다.


라한테 과제를 제시했다. 힘이 되는 말을 하루 세 번 하는 것은 같았다. 그리고 또 하나, 손에 쥘 수 있는 크기의 돌멩이를 손에 잡고 느껴지는 것을 한 줄 이상 적어오자고 했다.


라가 돌아서면서 말했다.


-선생님, 죄송해요. 제가 그만두려고까지 해서요. 저를 올바르게 잡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라의 등을 토닥토닥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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