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번째 만남: 도도새의 기도 --- 2

by Sia

교회를 열심히 다닌 것도 아니다. 기도한 것도 아니다. 지극하게 신을 믿고 섬기지도 않았다. 그런 내게 나타난 기적을 무엇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그저 은총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그게 나한테 쏟아진 하얀 물감일 것이다. 검은 물감을 퍼붓는 존재는 분명한데 하얀 물감을 붓는 존재는 뚜렷하지 않다. 3차원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말하지 말아야 할까? 비트겐슈타인식대로 하자면, 말할 수 없는 것은 침묵해야 할 테지만, 나는 고백하고 싶다. 누군가를 통해서 또는 무언가를 통해서 깨닫고 일어나는, 그 하얀 물감을 부어주는 존재는 신이라고.


신이 작업하면,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아무런 관련이 없는 듯한 한 사람의 언행도, 우연히 만난 온갖 만물들도 영향을 준다. 태연하게 있는 듯한 산과 들과 바다와 하늘도 내게 말을 걸어온다. 한자리에 붙박인 채 소명을 다하고 있는 나무도 마찬가지다. 개와 고양이, 온갖 동물들도 동참한다. 별과 달도 그렇다. 메시지와 신호를 주지 않는 존재가 없다. 틱낫한의 시 ‘서로 안에 있음’처럼, 모든 것이 서로 안에 있다. 신은 보이는 것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낸다.


에너지가 갑자기 변하는 것이 아니어서 여러 숱한 과정을 통과해 내야 한다. 그러는 동안 점점 영혼은 아름답게 성장해 나간다. 그렇지만 너무나 힘든 과정이기도 하다. 주어진 고통을 피할 수도 없다. 그저 맞닥뜨린 채 앞으로 나갈 뿐이다. 다만, 죽지 않고 살아있어야 한다. 아주 오랫동안 내 화두는 이것이었다. ‘주어진 목숨대로 살아가기’. 이 지극히 평범한 것이 내게는 엄청난 인내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장애를 입거나 병약하고 심한 노화가 진행되어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이들을 진정 존경한다.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 깊이 존경한다. 단 하루도 이 화두를 놓은 적이 없다. 그러다 보니, 치료사가 되었다.


나는 라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다른 어떤 말이 더 필요할까.


-도도새 덕분에 버텨냈어요. 그래서 행복합니다.


라가 말했다. ‘행복’이라니! 그 처참한 상황에서 ‘행복’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지만 절묘하게도 어울린다. 도도새가 제대로 활약한 것이다. 이렇게 라처럼 나만의 새를 잘 활용한 이는 사실 드물다. 프로그램에서 ‘나만의 새’라고 하니, 이름과 이미지를 정하긴 하되 돌아서면 잊어버리기 일쑤다. 게다가 평소에 ‘나만의 새’를 잘 불러내지도 않는다. 과제를 내줘도 건성으로 하는 이도 많다. 대부분 그저 상상이라고 치부하기도 한다. 어떤 학구적인 이는 자아의 또 다른 이미지일 거라고 결론 내리기도 한다. 그게 아니다. ‘나만의 새’는 살아 움직이고 있다. 마음의 중앙, 빛 안에서 항상 우주의 에너지를 듬뿍 받으며 살고 있다. 혹은 신의 에너지를 받으며 기운차게 살고 있다. 해서 ‘나만의 새’는 결코 사라지거나 약해질 수가 없다. 천사처럼, 항상 변함없이 따뜻하게 품어주기 위해 존재하고 있다. 가장 절박한 순간에 이렇게 나만의 새의 도움을 받는 것은 그야말로 귀한 체험이다.


작년이었다. 어머니 밥을 차려드리고 서둘러 강의를 위해 학교 갈 채비를 서둘러야 했다. 나는 밥도 먹지 못한 채 집안을 동동 뛰어다녀야 했다. 그러다가 주방에서 발을 헛디뎌서 바닥에 무릎을 찧으며 자빠졌다. 순간 서러움이 북받쳐왔다. 내가 하는 집안일의 대부분은 어머니를 챙겨드리는 것이다. 시간이 촉박해서 정작 나는 아무것도 안 먹고 출근하기 일쑤였다. 갑자기 눈물이 터졌다. 그저 서럽고 아팠다. 그때, 갑자기 방울새가 날아왔다. 내 등을 어루만지며 “많이 아프지? 참 많이 애쓴다.”라고 했다. 나는 눈물을 씩 닦으며 일어났다. 일부러 부르지도 않았는데 나만의 새가 찾아온 것은 처음이었다. 그런데 라한테 지금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이다!

경계성 인격 장애자한테서 살아남는 방법은 한마디로 현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격 장애자와 함께 감정을 비비대서는 안 된다. 감정의 분리에 도움이 된다면 물리적인 환경으로 분리할 필요도 있다. 게다가 긍정 에너지를 적극 받아들여야 한다. 그 에너지를 차곡차곡 저축해야 한다. 그래야 요긴할 때 나를 건져낼 수 있다. 그렇게 살아나갈 지혜를 터득하면 삶을 극복하는, 성공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하필이면 인격 장애자가 내 가족이고, 떨어져 살 수 없는 처지가 된 것도 신의 뜻일 것이다. 나를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영혼 성장을 위한 신의 멋진 설계일 것이다.


-지금 해도 되나요? 오늘은 눈을 뜨자마자 에너지가 되는 말을 할 수가 없었어요.


라가 말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라가 팔을 엇갈리게 가슴께에 모아서 토닥이면서 말했다.


-괜찮아. 잘했어. 잘할 거야.

나도 덩달아 함께했다. 우리는 세 번을 그렇게 반복했다. 마친 뒤 서로 눈을 마주치면서 웃었다.


케빈 컨(kevin kern)의 ‘Sundial Dreams’을 배경음악으로 해서 이문재 시의 ‘오래된 기도’를 낭송해 보자고 했다.



오래된 기도


이문재



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기만 해도

맞잡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기만 해도

노을이 질 때 걸음을 멈추기만 해도

꽃 진 자리에서 지난 봄날을 떠올리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음식을 오래 씹기만 해도

촛불 한 자루 밝혀 놓기만 해도

솔숲 지나는 바람소리에 귀 기울이기만 해도

갓난아기와 눈을 맞추기만 해도

자동차를 타지 않고 걷기만 해도

섬과 섬 사이를 두 눈으로 이어주기만 해도

그믐달의 어두운 부분을 바라보기만 해도

우리는 기도하는 것이다

바다에 다 와가는 저문 강의 발원지를 상상하기만 해도

별똥별의 앞쪽을 조금 더 주시하기만 해도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해도

나의 죽음은 언제나 나의 삶과 동행하고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인정하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고개 들어 하늘을 우러르며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기만 해도



이 시를 쓴 이문재 시인은 1959년 경기도 김포에서 태어났다. 1982년 ‘시운동 4집’에 시를 발표하면서 시인으로 활동했다. 경희대학교 후마니칼리스 교수로 재직하면서 2022년 유심 작품상을 비롯해서 많은 문학상을 수상했다.


-기도가 특별한 것이 아닌가요? 그런 줄로만 알았는데요. 이 시는 뭔가 다른 말을 하고 있네요.


라가 말했다.

이 시의 제목부터가 다른 말을 하고 있다. ‘오래된 기도’는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가? 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기만 하도 맞잡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기만 해도 기도라고 한다. 노을이 질 때 그 아름다움에 빠져 걸음을 멈추며 풍광으로 들어가기만 해도 꽃이 진 자리에서 화사했던 봄날을 떠올리기만 해도 기도라는 것이다. 음식을 음미하면서 오래 꼭꼭 씹기만 해도 한 자루의 촛불을 밝혀 놓기만 해도 바람이 솔숲과 부딪히면서 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만 해도 갓난아기의 해맑은 눈동자를 들여다보기만 해도 자동차의 속도에 편승하지 않고 걷기만 해도 기도라는 것이다. 섬과 섬 사이를 보며 눈으로 이어 주기만 해도 미처 보이지 않는 달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믐달을 바라보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라고 한다. 종착지인 바다에 다 와가는 저물어 가는 강의 맨 처음, 발원지를 상상하기만 해도 떨어지는 별똥별의 앞쪽이 어디인지 상상하며 주시하기만 해도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살아가고 있는 이 순간에 죽음이 바로 옆에서 같이 가고 있다는 너무나도 평범한 진리를 인정하기만 해도, 고개를 들어 하늘을 우러르며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그러니 기도는 천천히 느끼며 삶을 마시는 것이다. 기도는 삶 속에서 살아 숨 쉬면서도 삶을 뛰어넘게 하는 것이다. 기도는 보이는 것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제가 하나 더 붙이고 싶은데요. ‘도도새를 떠올리기만 해도, 도도새가 찾아오는 것만 해도, 도도새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라고요.


우와! 역시, 라의 감수성이란! 우리는 함께 손뼉을 치며 웃었다. 인상 깊은 구절을 말해보자고 했다.


-“나의 죽음은 언제나 나의 삶과 동행하고 있다는 / 평범한 진리를 인정하기만 해도”라는 부분이에요. 사실, 참 많이 죽고 싶었는데, 죽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때가 되면 죽는다는 사실이 문득 생각이 났어요. 언제, 어떻게 죽을지는 모르지만, 죽을 거라는 사실. 그러니 일부러 애쓸 필요가 없겠구나 그런 생각이 지금 들었어요. 이런 생각이 든 지금도 그러니까 기도하는 거군요.


그러니까 기도하는 것이 맞겠다. 시인의 표현대로 라면, 삶을 고스란히 느끼고 있다면 그것은 바로 기도하는 것이다. 이 기도는 그야말로 오래전부터 인간의 마음속에서 아름다운 에너지로 존재해 왔다. 그러니 긍정 에너지의 결정체가 기도인 셈이다.


늘 마음속에 품으면서 염원을 오롯이 담은 기도를 적어보자고 했다. 라는 그런 게 없었다고 했다. 그럼, 지금 정하면 된다고 했다. 잠시 머뭇거리다가 드디어 라가 적기 시작했다.


“마음의 중심인 빛을 느끼고 누리면서 나누는 빛나는 삶이 되는 것이 제 간절한 기도입니다.”


빛을 느끼고, 누리고, 나누는 빛나는 삶! 너무나 멋진 기도문이다. 이제, 이 기도의 에너지를 마음으로 체험해 보자고 했다.


두 눈을 감고 복식호흡을 하게 했다. 온몸과 마음을 이완하게 한 뒤 떠올려보자고 했다.


나는 이 땅을 살아가고 있는 동안 늘, 호흡하는 순간순간마다 마음 깊이 간직하고 품는 기도가 있다. 일상생활을 하면서 언제나 늘 품기를 작정한 기도이다. 이 기도는 신 또는 우주의 에너지한테 바로 전달되는 기도이다. 멈추지 않고 숨 쉴 때마다 하는 기도여서 내가 미처 떠올리지 않아도 내 영혼이 알고 드리는 기도이다. 이 기도를 품는 순간 동시에 이 기도가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오로지 감사드릴 뿐이다. 지금, 마음속으로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 느낌을 그대로 간직하며 눈을 떠 보자.


-마음의 빛이 있어요. 살아서 움직이고 있어요. 빛이요. 느끼고, 누리고 이제 나누기 위해 문을 열고 나오려고 하는 것만 같아요. 감사드립니다. 오로지 감사드리라고 하셔서, 그렇게 했습니다.


라의 얼굴이 빛을 받아서 환해졌다. 오늘 처음 들어설 때와 확연하게 얼굴빛이 달라졌다. 그 말을 했더니 라가 웃으면서 말했다.


-저도 그렇게 느껴져요. 이곳이 하얀 마음으로 바꿔주는 마법 학교인 것 같아요. 마음이 환해졌습니다.


다음 시간까지 해올 과제를 알려주었다. 힘이 되는 메시지, ‘괜찮아, 잘했어, 잘할 거야’는 여전히 하루 3번 해오면 된다고 했다. 단, 나만의 새인 도도새가 직접 나를 안아주면서 ‘괜찮아, 잘했어. 잘할 거야’를 하는 것을 경험해 보라고 했다. 그리고 하나 더,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아침에 눈 뜨자마자, 밤에 잠자기 직전에 날마다 해오자고 했다. 라는 잘 해오겠다고 했다.


-엄마가 발작하기를 바라지 않으며, 눈치 보며 살았던 삶이 현명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오늘 프로그램하면서 비로소 깨달았어요. 내 잘못과 상관없이 어머니는 혼자서 발작한다는 사실도 다시 깨달았어요. 엄마가 어떻게 해야 내가 행복한 게 아니라, 내 행복은 내가 만들어가는 것, 선택해야 하는 것도 깨닫게 되었어요. 그래서 엄마와 감정을 분리할 수도 있고, 엄마가 울부짖고 욕을 해도 나는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어요.


밝은 목소리로 라가 말했다. 경쾌한 발소리를 내며 라는 계단을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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