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번째 만남: 도도새의 기도 --- 1

by Sia

아홉 번째 만남: 도도새의 기도



라는 지각을 했다. 그것도 이십 분이나. 풀이 죽은 모습으로 들어왔다. 눈을 마주치지 않고 고개를 숙였다. 문자로 늦겠다는 소식을 전해왔지만, 이미 약속 시간을 넘기고 보낸 메시지였다. 황급히 들어온 라는 늦잠을 잤다고 했다. 간밤에 잠을 못 자다가 새벽 세 시가 넘어서야 겨우 잠들었다고 했다.


-엄마 발작이 너무 심했어요. 어디론가 나가고 싶을 정도였는데 꾹 참았어요. 알바해서 번 돈을 다 주지 않았다고 난리를 부렸어요. 무조건 봉투째로 갖다 줘야 했다며 고함을 질렀어요. 돈은 내가 벌었는데... 오랜만에 헤어숍에 가서 볼륨매직을 했거든요. 그 돈만 빼고 다 갖다 드렸어요. 엄마가 제 머리칼을 잡고 흔들었어요. 머리도 아프고, 마음도 아프고. 아무리 엄마의 속마음은 아닐 거라고 생각해도, 이건 아니었어요. 엄마가 발작하면 울다가 지쳐서 잠이 들곤 했는데 어제는 아무리 울어도 잠이 오지 않았어요. 이렇게 사는 게 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고. 다시 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릴까, 이런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어요. 심상 시치료 프로그램을 하면서 그런 생각을 내렸거든요. 처음에 약속한 대로 자살 생각은 하지 않겠다는 것을 잘 지켜왔어요. 그런데 어제는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요. 선생님한테 전화할 생각도 했는데, 새벽이어서 엄두가 나지 않고. 그냥, 확 죽어버릴까? 이렇게 중얼거렸어요. 그때, 도도새가 날아왔어요. 갑자기요. 제가 부르지도 않았는데 말이에요.


“힘들지? 마음이 많이 다쳤구나. 나도 함께 마음이 아파.”

도도새가 그렇게 말하면서 저를 안아줬어요. 도도새가 말하기 전에는 분에 겨워서 울었는데. 눈물의 의미가 달라졌어요. 도도새가 고마워서 눈물이 났어요. 이런 고운 새가 내 마음에 살고 있는 게 신기하고 감사해서 울었어요. 세상에서 가장 악독한 년이라고 퍼붓는 엄마의 욕도 잘 들리지도 않았어요. 새벽 세 시가 되어가는 시간이었는데요. 엄마는 한번 발작하면, 서너 시간은 기본이거든요. 그렇게 도도새한테 안겨서 겨우 잠들 수 있었어요. 아침에 깨어났을 때 시계를 보니, 아! 지각이구나! 싶어 황급히 일어났어요. 씻고 나올 준비를 하다 보니 문자도 늦게 드렸네요. 죄송합니다.


그, 어처구니없는 발작의 폭우를 나도 숱하게 겪어왔다. 중학교 1학년 때였다. 종이 승차권을 사서 버스를 타고 다녔던 시절이었다. 일요일 오후에 보니, 승차권이 하나도 없었다. 어머니한테 그 사실을 알리고 돈을 달라고 하자 난리가 났다. 용돈을 주면 도대체 어디에 쓰냐며 고함을 지르다가 급기야 욕을 해대기 시작했다. 세상에서 가장 악랄하고 미친년, 돌안년, 화냥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패악질을 해댔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욕을 끌어모아 쏟아붓듯 했다. 이상한 것은 그 욕이 그 순간 내 가슴이 팍팍 박혀대는 거였다.


그때, 아버지 사업이 파산한 지 일 년이 채 되지 않을 때였다. 넓은 집에서 살다가 13평 좁은 집에서 네 식구가 같이 살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머니는 갑자기 급변한 가정 형편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다. 그 화를 단단히 내게 풀고 있었다. 마치 내가 아버지 사업을 망하게 한 원인이라도 된다는 듯이. 한 해 일찍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바람에 그때 나는 13살이었다. 그 아이가 어떤 엄청난 잘못이라도 저지른 듯이 욕을 해댔다. 나는 승차권이 없으니 돈을 달라는 말을 한 것이 전부였을 뿐이었다. 좁은 욕실 거울을 바라보며 어머니가 하는 욕을 따라 하고 있었다. 악독한 년, 미친년. 돌 안 년. 죽일 년. 족히 두어 시간 넘게 쏟아지는 욕설을 들으며 나는 나도 모르게 그 욕을 세포 깊숙이 주입하고 있었다.


그때, 방울새는 없었다. 아니, 방울새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나만의 새’ 존재를 알아차린 것은 치료사가 되어서였으니까. 그렇지만, 방울새는 시간의 한계를 받지 않는 존재이니, 그 시간으로도 갈 수 있다. 울다가 지쳐서 거울을 보며 어머니가 쏟아내는 악다구니와 욕을 그대로 따라 하는 13살의 나한테 방울새는 다가간다. 찬찬히 내 얼굴을 쓰다듬어 준다. 내 등과 가슴을 어루만져 준다. 멍들고 아프고 무너져가는 나를 안아준다. 방울새가 하나하나 몸짓할 때마다 빛 가루가 사위에 흩날린다. 내 머리 위에, 어깨 위에, 가슴 위에 빛이 흩뿌려진다. 아무 말도 없이 나를 포근하게 안아준다. 나는 연분홍빛 토실토실한 방울새의 몸집과 꼬리에서 나오는 오색찬란한 빛을 홀린 듯 바라본다. 어머니의 말을 따라 하던 내 입술이 일시 정지한다. 놀란 입을 하 벌린 채 그 아름다움 안으로 들어간다. 방울새는 내게 속삭인다.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이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긍정의 말들도 마찬가지였다. 내게 긍정은 어울리지 않았다. 나는 내팽개치고, 업신여기고, 조롱당해야 마땅했다. 그 반대는 어색했고, 내 것이 아니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아름다움들은 나하고는 상관없다고 여겼다. 욕에 찌들고 폭력에 절인 상태로 오랫동안 그렇게 살아왔다. 철마다 피어나는 꽃이 아름답다는 것을 깨달은 것도 서른 살을 넘기고 나서였다.


내가 나한테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것은 감히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런 마당에 아이를 낳고 길렀으니 어떠했겠는가. 사랑한다는 말도 다정한 보살핌도 없었다. 딴에는 안아주고 얼러주기도 했지만, 지금의 마음 같지는 않았다. 나는 세상에 없는 듯 살았다. 겉껍데기는 인간의 육체를 했지만, 유령이었다. 마음은 곯을 대로 곯아서 온전한 마음을 낼 수가 없었다. 깃발에 펄럭이는 것처럼 숱하게 마음이 흔들려댔다. 죽은 것처럼 살았다. 이미 죽은 사람처럼.


훗날 결혼한 딸이 아이를 낳고 나를 원망했다. 이렇게 예쁜 아이를 보고 어떻게 직장을 다닐 수 있었어? 나를 다른 사람한테 맡기고! 굶지 않으려면 직장을 다녀야 했다. 아이 아빠는 당시 학생이었는데, 늘 술에 절여 살았다. 간혹 막노동해서 번 돈도 제대로 가지고 오는 날이 드물었다. 대부분 술로 날렸다. 그러니 나는 아이를 낳은 지 보름 만에 퉁퉁 부은 발을 억지로 신발에 쑤셔 넣고 직장을 구해서 일하러 갔다. 생활은 고되었지만, 딸을 사랑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자신이 없다. 나도 나를 사랑하지 않았는데 과연 딸을 온전히 사랑했을까? 딸의 말은 아니기도 하고 맞기도 하다. 사랑하고 싶었는데 사랑할 마음이 되지 않았다. 주어졌으니까 마지못해 헤쳐나가야 했고, 그게 당장 급했다. 여유 있고 느긋하게 아이를 돌보고 따뜻하게 안아주지 못했다. 늘 시간에 쫓겨서 다녀야 했고, 여러 뒤치다꺼리를 해야 하니 쉴 틈이 없었다. 거기에다가 나는 늘 공부에 허기져 있었다. 그렇게 원했던 국문학을 하느라 방송대를 다녔지만, 공부가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에너지는 떨어지고, 되는 일은 없고, 아이 아빠는 언제 폭력을 휘두를지 알 수 없었다. 하루하루가 불안하기만 했다. 공중에 매단 줄을 타는 기분이었다. 그 줄은 언제 끊어질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엄마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잖아!


그 말은 맞지 않는데, 동시에 그럴 수도 있었다.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없었으니까. 그래서 아냐, 나는 너를 사랑했어. 단 한 번도 그러지 않은 적은 없었어! 라든가, 그런 여유가 없었어! 라는 식의 변명조차 할 수 없었다. 정직한 반응은 그저 이러했다.


미안하다. 정말 미안해. 내 딸아.


그랬다. 그 말밖에 할 수가 없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은 하루아침에 되지 않았다. 방울새를 부르고, 마음이 하늘에 자주 올라가서 하늘 기운을 받는 것을 수년씩은 해야 가능한 일이었다. 그것은 태어나서 줄곧 들어왔던 어머니의 말과 행동 때문이었다. 그게 뭐 그렇게 대수라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정말이지 큰 영향을 끼친다. 인간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게 말과 행동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그게 부정으로만 치닫게 되면, 부정에너지가 형성된다. 가까운 이한테 그 에너지가 고스란히 파고든다. 그걸 이미지로 떠올려본 적이 있다.


탄생의 순간을 하얀 물감이라고 상상해 보자. 살아오면서 겪는 온갖 부정적인 에너지를 검은 물감이라고 여겨보자. 검은 물감이 조금 떨어진다고 하얀 물감의 색이 갑자기 검정으로 변하는 것은 아니다. 충분히 많은 양의 하얀 물감이 있다면, 검은 물감은 떨어진 표가 잘 나지도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계속해서 검은 물감이 떨어진다면, 하얀 물감은 그 자리를 내어주고 만다. 검은 물감이 자리 잡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급기야 검은 물감이 더 많은 강도로 쏟아지게 되면, 하얀색은 변할 수밖에 없다. 검은 물감의 공략이 더욱더 박차를 가한다면, 하얀 물감은 이제 흔적을 찾을 수 없게 변하고 말 것이다. 마치 처음부터 하얀 물감이었다는 것이 의심스러울 정도일 것이다. 이제 검은 물감의 천지가 된 것이다.


그렇게 바뀐 검은 물감에 하얀 물감이 몇 방울 떨어진다고 달라지지 않는다. 떨어진 하얀 물감을 검은 물감이 냉큼 달려들어 삼켜버리기 때문이다. 하얀 물감이 계속 떨어진다고 해도 검은 물감은 코웃음 칠 것이다. 뭐, 이 정도야. 간지러운 정도네! 올 테면 와봐! 어림없다는 듯 검은 물감은 건재할 것이다. 무수한 달걀로 바위를 치듯이 꾸준하게 하얀 물감이 떨어진다고 해도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아주 조금씩 흰색의 자국이 생기게 된다. 그제야 검은 물감은 아량이라도 베풀 듯이 한자리를 내주기도 한다. 그래 봤자지 뭐! 네까짓 게! 이렇게 비웃으면서 말이다. 워낙 강세인 검은 물감 때문에 눈으로 보이는 변화를 찾기는 힘들다. 애초에 하얀 물감에서 검은 물감인 상태로 변하게 했던 검은 물감의 양과는 비할 수 없을 정도의 하얀 물감을 투입해야 한다. 그 양의 수십 배, 수백 배의 하얀 물감이 들어가서 마침내 검은 물감을 뒤엎는다고 해보자. 얼마나 많은 각고의 노력과 수고를 들여야 할까!


이런 과정이 치유다. 치유는 단순히 누군가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고 달래주고 편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다. 기분 좋게 달콤하게 해주는 것도 아니다. 스스로 부정 에너지에서 긍정 에너지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해주는 것이 치유다. 검은 물감에서 하얀 물감으로 변하도록 일깨워주는 것이 치유다. 알기 쉽게 비유해서 그렇지만, 검은색을 싫어하고 하얀색을 좋아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단지 에너지를 색깔로 빗대어서 표현한 것뿐이다.


부정의 분위기에서 긍정을 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저 부정에 휩쓸리고 만다. 거기에서 빠져나와 긍정으로 돌아가는 것을 ‘회복 탄력성’이라고 한다. 그것도 억지로 부자연스럽게 할 수는 없다. 긍정 에너지가 자연스럽게 형성되고 삶의 방식이 그렇게 이뤄져야 한다. 마음 건강을 잘 유지하는 이는 회복 탄력성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부정적인 상태로 오랫동안 머물렀던 이는 회복 탄력성이 약하기 그지없다. 그것은 완고한 태도, 고집불통인 모습, 자기만의 생각에 빠지는 아집, 자신의 말이 오로지 맞다고 여기는 독단, 타인의 말을 무시하고 업신여기는 마음, 자신이 결정한 것에 반대하면 참지 못하는 화, 이런 상태로 인해 드러나게 된다. 심지어 이런 부정에너지가 흘러넘치게 되면 결정적으로 자신에게나 타인에게 해를 끼치게도 된다.


나도 그랬다. 누군가를 해치는 범죄를 일으킨 것은 아니지만, 나를 해하려고 했다. 해침의 극단적인 경우는 자살이다. 얼마나 무수히 자살을 생각해 왔는지 모른다. 아침에 눈만 뜨면, 다시 살아야 하는 하루가 펼쳐진 것에 절망했다. 밤에 자기 전에는, 내게 억지로 살게 한 날에 대한 원망이 가득했다. 그렇게 원망과 절망을 오가며 오랫동안 살아왔다. 그런데도 그 와중에 방울새가 존재했다. 내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순간에도. 무수한 검은색 가운데 하얀 물감이 떨어지고 있었다.


처음으로 자살을 생각했을 때가 라처럼 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별것 아니었지만, 내게는 심각했다. 몸이 약한 언니한테만 보약을 챙겨주었던 어머니. 내가 다가가면 손사래를 쳤다. 그 약이 결코 먹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소외되는 것 같아서 견딜 수 없었다. 이래도 살아야 하나? 내가 죽으면 어머니가 뉘우치겠지? 좀 잘해 줄 걸 하며 후회하겠지? 담벼락에 기대어 그 생각을 하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런 생각을 처음으로 했던 것이 이상하고 기괴했다. 나중에는 너무나 많이 자살생각을 하다 보니, 자살은 나와 하나가 된 것 같았다. 스무 살이 되기 전에 반드시 죽고 말 거라고 다짐했다.


결정적인 것은 아이를 낳고 대여섯 달이 지난 다음이었다. 아이 아빠는 폭력을 예사로 행하고, 보이는 여자마다 추태를 날리곤 했다. 어머니를 피해서 독립하려고 결혼했는데, 이건 숫제 부정의 덤터기를 뒤집어쓴 거였다. 농약상에서 텃밭에 뿌린다며 제초제를 샀다. 슈퍼에서는 소주 한 병을 샀다. 제정신으로 제초제를 마실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 일단 술을 마신 상태에서 제초제만 마시면 끝나는 거였다. 얼마나 간단한가. 소주와 제초제. 그렇게 순서대로 마시면 드디어 이 빌어먹을 세상과 작별이닷!


잠든 아이를 아이 아빠 옆으로 보내고 방문을 닫았다. 못 먹는 술을 병째로 들이켰다. 순식간에 소주 한 병이 몸속으로 들어갔다. 갑자기 방바닥이 수직으로 세워졌다. 그렇게 느꼈지만, 사실은 내가 바닥에 꽈당 하고 넘어진 거였다. 그 상태에서 제초제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 순간, 갑자기 눈앞에 뭔가가 나타났다. 너무나 선명하고 뚜렷한 그 존재는 ‘십자가’였다.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였다. 수십, 수백 개의 십자가가 내 앞에 있었다. 멀리, 가까이에서 모여든 십자가는 크기마저 제각각이었다. 십자가마다 빛을 내뿜고 있었다. 눈부신 무수한 십자가들. 나는 황홀경에 빠져서 그저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십자가들에 둘러싸인 채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눈을 감은 채 십자가를 느낄 뿐이었다. 눈을 감아도 보이고, 떠도 보였다. 제초제를 향해 뻗은 손의 힘이 풀리고, 긴장된 마음도 풀렸다. 그렇게 한숨 잘 자고 일어났다. 눈을 뜨자마자 제초제를 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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