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번째 만남: 사랑해, 갓 태어난 라! --- 2

by Sia

-시를 읽으면서 슬펐는데, 오히려 홀가분하다니 신기했어요. 나 같으면, 제일 아래 두 줄을 이렇게 썼을 것 같아요. ‘서글프고 또 서글퍼라. 태어나기도 전에 죽을 뻔했다.’ 그런데 시인은 반대로 생각했군요. 아마도 자신을 없애려고 한 어머니를 용서했겠지요. 그래야지 이런 시가 나올 수 있겠지요. 아무래도 제가 생각했던 글은 판에 박은 거라서 분명 재미가 없겠어요. 서글픔을 홀가분으로 바꾸는 시인의 지혜가 부럽습니다. 저도 생각을 바꿔서 마음을 변화시키고 싶어요. 하나의 생각에만 고정되지 않고요. 그게 가장 부럽습니다.


인상 깊은 단어는 ‘홀가분하여라’입니다. 제가 그동안 아주 많이 자살을 생각해 오고 시도해 왔다고 했잖아요. 그때, 저는 원한, 원망, 분노들이 오래 섞여서 고약한 냄새를 풍기듯이 오만상을 다 찌푸렸거든요. 삶은 지옥이고, 죽음은 지옥 불에 들어가는 것이고요. 살아도 불행, 죽으면 더 불행이라고만 여겨왔어요. 그런데 시인은 삶이 홀가분하다고 말하니, 놀랍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런 경지에 오를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을까? 오래전부터 나도 부러워했다. 인생을 그저 평탄하게 사는 게 아니라 초월한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는 것 말이다.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평탄한 인생이란 없다. 누구나 굴곡이 있고, 뜻한 대로 되지 않을 때도 많다. 단 한 번의 좌절도 없이 살아온 인생은 없다. 그런 무수한 우여곡절 속에서도 여유를 가진다는 것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닐 것이다. 내공이 대단한 이들만이 그럴 수 있을 것이다. 나 같은 별 볼 일 없는 사람은 늘 전전긍긍하고 불안에 빠져서 살뿐이다. 그런 내가 불쌍해서 늘 울고 싶었다. 그러다가 나이를 먹을 만큼 먹고, 마음을 하늘에 자주 보내다 보니 신기하게도 조금씩 그게 가능해졌다. 홀가분한 삶! 초연한 삶! 그렇다고 내가 도인이 된 것은 아니지만.


그러니 누구나 가능할 수 있다. 하늘에 마음을 둔다면, 자주 하늘의 에너지와 합친다면, 이 세상 밖에서 나를 바라본다면,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마음에서 세상을 바라본다면, 나와 세상을 움직이는 신을 알아차린다면, 신의 섭리를 그저 받아들인다면, 내가 어쩔 수 없는 일은 그저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둔다면, 욕망의 소용돌이에서 자주 빠져나온다면, 일이 일어나는 대로 지켜보며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내가 이해하지 못할 거대한 계획안에 내가 숨 쉬고 있다는 것을 수용한다면, 내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나은 방법을 신이 알고 인도하고 있다는 것을 믿는다면, 될 일은 되고야 만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그러면 선물처럼 이 감정을 오롯이 받게 된다. 이 멋진 홀가분함!


라한테 지금, 이 순간, 현재의 내가 갓 태어난 나한테 메시지를 보내보자고 했다. 이왕이면 긍정의 메시지를 보내자고 했다. 그러니까 23살의 라가 갓난아기인 라한테 보내는 긍정 메시지다. 그렇게 쓴 글을 바로 앞에 갓난아기인 내가 있다고 상상하며 읽게 했다.


“안녕, 라야. 너무나 예쁘구나! 사랑스러운 라야!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을 축하해. 엄마도 아빠도 속으로는 사랑하고 축하하는 마음이 가득할 거야. 그런데 사는 것이 힘들어서 마음껏 축하하고 기뻐할 수 없었던 걸 거야. 엄마, 아빠의 몫까지 합해서 축하하고 사랑해! 이렇게 세상에 태어나서 고마워. 이제 아주 먼 길, 고통과 분노의 가시밭길을 걸어야 하겠지만, 내가 이렇게 응원하고 있을게. 도도새도 함께 지지하고 있어. 넌 혼자가 아니야. 혼자라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혼자가 될 수 없어. 도도새도 스무 살을 훌쩍 넘긴 나도 이렇게 함께 할 거니까. 힘든 과정 뒤에는 귀한 성장이 있을 거야. 무슨 말을 해도 어렵겠지만, 그래도 영혼으로 듣고 있을 거라고 믿어. 사랑해. 라야. 이렇게 태어나서 기뻐!”


-너무 치장하는 말을 한 건가요? 꽃다발 같은 말을 해주고 싶었어요. 제가 좋아하는 분홍 카네이션 꽃다발 같은 말요. 꽃말이 ‘당신을 열렬하게 사랑합니다’이거든요. 아, 참. 이것도 있어요. ‘어머니의 사랑!’ 갓난아기는 어머니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클 거예요. 엄마는 사랑이 뭔지도 모르면서 아기를 대할 거고요. 엄마도 그 엄마한테 그렇게 자랐으니까요. 간섭하고 따지는 것을 사랑이라고 잘못 알면서 컸으니까요. 그래서 진정한 엄마의 사랑을 아기한테 주고 싶어요.


지금의 기분을 물어보았다. 라는 쑥스러운 듯 웃었다.


-참, 신기한 것이... 제가 지금 스물세 살이기도 하고, 이제 막 태어난 아기 같기도 해요. 스물세 살인 내가 아기한테 보내는 메시지 같기도 하고, 내가 아기여서 미래의 나한테 받은 메시지 같기도 해요. 최근에 하도 사랑이라는 말을 스스로 하고, 또 들으니, 과연 나한테 한 게 맞나?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요. 그래도 놀라워요. 그렇지만 포근합니다. 내가 나한테 감사해요. 이런 느낌을 내가 가져도 되나요?


그 어떤 느낌이든 안 되는 것은 없다. 느낌에 정답이 있을 수 없으므로.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에 대해 의문을 가지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리고 너무나 잘하고 있다고 엄지를 들어보였다. 라는 환하게 웃었다.


눈을 감고 복식호흡을 해보자고 했다. 온몸과 마음을 이완하도록 했다. 그런 다음, 상상해 보자고 했다.


나는 내가 태어나던 때를 알고 있다. 온갖 섭리와 갖은 순리로 이 세상에 나왔다. 이제, 세 번을 세면 내가 태어나던 순간으로 가서 나를 만날 것이다. 하나, 둘, 셋! 지금 막 내가 세상에 나왔다. 현재의 나는 갓 태어난 과거의 나에게 다가간다. 가까이 다가가서 긍정의 메시지를 전한다. 나는 지금 무엇이라고 전하고 있는지 그대로 들어보자. ...... 지금, 이 순간, 이 느낌을 그대로 간직한 채 세 번을 세면 눈을 뜨면 된다. 하나, 둘, 셋!


라가 눈을 떴다. 세상에 태어나서 첫눈을 뜨던 때처럼. 나를 보며 방긋 웃었다. 세상을 향해 처음으로 보내던 웃음처럼.


-그저 안아주었어요. 온 마음을 기울여서 안아주었어요. 그리고 속삭여주었어요.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라야, 사랑해.

라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이 눈물은요. 사랑해가 어색해서, 내 것이 아니어서 흘리는 것은 아니에요. 그냥, 감사해서 흘리는 거예요. 신이 있다면, 신한테 감사하고 싶어요. 그리고 태어난 나한테도요. 이렇게 살아오고 버텨내고 어쨌든 안 죽고 살아있는 지금의 나한테도요.


나는 티슈를 건네지 않았다. 라가 조금 더 울도록 내버려 두었다.


-벌써 여덟 번째 군요. 시간이 엄청나게 빨리 흘러가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시간이 안 가서 지겨웠거든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시간이 달려가고, 저도 그 속도를 조화롭게 유지하며 달리고 있는 것 같아요. 오늘은 나한테 ‘사랑해’라는 말을 제일 많이 한 날로 기억될 것 같아요.


나도 라한테 “사랑해요 라”라고 했다. 라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그러고는 종이 위에 재빨리 적었다.


“사랑해요. 선생님, 고맙습니다.”


다음 주까지 해올 과제를 내주었다. 도도새 메시지는 한 번 이상 듣고 적어오기, 에너지 말은 날마다 하루 세 번 해오기. 라는 분명 잘해 올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나는 라한테 쉼 없이 응원의 에너지를 보내면서 다음 만남을 기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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