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필요 없는 역사는 없었다." - 학생 A
역사 교사로서 새 학기 첫 역사 수업은 항상 '역사를 왜 배워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열곤 합니다. 학생들은 제가 제시한 유럽이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는 장면을 상상하여 그린 그림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학생들이 발견할 수 있는,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정보를 수집하고 정리합니다. 이후에는 왜 그 정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지 이유를 친구들과 공유하면서 그림에 담긴 의미를 파악하는 과정을 함께 밟아봅니다. 이 과정을 통해 학생들은 서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정보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발견하고,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정보의 중요성을 깨닫기도 하며, 해당 그림에 담긴 메시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자료를 함께 읽으며 나름대로 메시지를 도출합니다. 이 과정을 밟고 나면 교사는 제시된 그림에 담긴 (객관성 및 주관성이라고 알려진) 역사라는 학문의 성격을 이해하는 과정을 거쳐왔다는 점을 알려주면서 역사를 배우는 목적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을 정리하고 공유하는 시간을 갖도록 합니다. 이 같은 과정만으로 역사 학습의 목적을 모두 이해했다고 할 수 없지만 '탐정 놀이'를 하는 기분을 안고 역사 수업의 첫 장면을 바라보는 학생들의 눈빛은 제가 그들이 '사랑스럽다'는 느낌을 들게 하는 데 충분합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학생들이 첫 수업 때의 기분을 여전히 간직하기란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점차 눈이 감기기도 하고 공부해야 할 내용은 많아 부담스러운 이 과목에 흥미를 잃어가는 모습을 보다보면, 교사는 매일매일 진행되는 수업이 '성공'했다기보다 '실패'했다는 기분을 떠안게 됩니다. 그래도 지칠 수 없기에, 제가 학생들에게 매일 이야기하듯 '기분이 태도가 되어서는 안 되'기에 더 열정적으로 수업을 이어나가기 위해 노력합니다. 고맙게도 학생들 또한 교사의 기분을 알아차리는지 최선을 다 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마냥 포기하고 지쳐하고 쓰러지는 무기력한 아이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교사와 함께 힘을 내보려는 아이들이 여전히 더 많기에 교사는 지칠 수도, 지쳐서도 안 되는 힘을 학생들로부터 얻곤 합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으로 인해 대면 수업이 불가능해진 시기가 있었습니다. 이제는 과거형으로 이 문장을 쓸 수 있어서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여느 때와 같이 비대면 수업과 대면 수업을 병행하는 체제를 이어가며 현장에서 아이들을 보고 싶다는 갈증이 깊어지던 때에 세계사를 수강하던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에게 논술 활동을 제시한 적이 있었습니다. 1학기 세계사 수업 때 다룬 주제들과 관련된 논술 주제를 8-10개 정도 제시하고 한 가지 주제를 골라 논술하도록 하는 활동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마치 대학교 학부생 시절의 제가 공부하고 시험을 봤던 방식과 비슷해 당시 학생들이 어지간히 힘들었을 거라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들곤 합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논술문을 찬찬히 읽고 코멘트를 하는 과정에서 눈에 띄는 문장이 있었습니다. "세상에 필요 없는 역사는 없었다." 제가 학생들에게 역사를 배우는 이유, 목적, 목표, 동기 등을 장황하게 설명해왔던 시간이 보상 받는 느낌이랄까요? 이 한 문장을 읽고 난 이후에도 저는 그저 행복하다는 여운에 취해 벗어날 길을 찾지 못했습니다. 유난스럽지요. 이 한 문장이 뭐가 그렇게 대단한가 싶을 수 있겠지요. 하지만 '필요'나 '쓸모'라는 표현은 '역사'라는 학문의 특징이나 성격을 설명하고 소개하기에 참 복잡한 감정이 들게 하는 말들입니다. 역사 공부해서 돈이 되느냐, 사학과 나와서 뭐 해 먹고 살 거냐, 과거의 지나간 일에 연연해 하고 붙잡기만 하면 뭐하느냐, 이미 지나간 일에 쓸데 없이 깊은 생각하는 거 아니냐 등 역사를 사랑해 마지 않았던 제게 던져지는 (어쩌면 당연하지만 무례한) 질문들에 일일이 답을 준비하고 최악의 대화 시나리오를 가상으로 대비하곤 했던 기억들에는 '필요'나 '쓸모'라는 말은 어떻게든 분해되어 다시 조립해야만 하는 대상이었습니다. 그 어려움을 해소시켜주는 간결하지만 단단한 문장이 '세상에 필요 없는 역사는 없었다.'라는 문장이었습니다. 결국 개인의 내밀하고 사적인 인생살이나 인류의 경험의 총체로서의 역사나 필요해서 겪은 과정뿐 아니라 필요하지 않았음에도 겪어가며 쌓여온 이야기이고 내러티브이기에 그 어떤 한 과정도 '필요'나 '쓸모'라는 말로 단절되거나 평가되거나 곡해되거나 폄하되어야 할 마땅한 이유도 근거도 없다는 점을 이야기하기에 저만한 문장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출처 : 구글 이미지>
지금은 역사를 배워야 할 이유에 대해 공감하지 못하는 이들을 일부러 설득하려 하진 않습니다. 노력은 하지만 애쓰진 않습니다. 하지만 저 문장을 저에게 선물해준 학생을 만났을 때는 지금보다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와 당위성을 설명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했던 시기였기에, 한 명의 학생이라도 역사 선생님의 생각과 궤를 같이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행복할 거라는 믿음이 강했기에 유난스럽게도 저 문장에 행복해 했던 시간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이제는 '당위성'을 이야기하려 하지 않습니다. have to나 must를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다만 선생님이 생각하는 역사를 배워야 하는 이유나 역사라는 건 말야-라면서 이야기를 시도해봅니다. 살다보니 어느날 그 역사 선생님이 이야기한 게 이런 뜻이었나보다-하면서 그저 흘러가도 좋기 때문입니다.
이 문장을 만난 이후부터 저는 역사 수업 때 제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제가 살아온 이야기와 닮은 역사적 인물과 사건을 소개하고 그로부터 도출되는 교훈이나 메시지, 그리고 재미와 동기부여를 다양하게 엮어가며 결국 선생님이 살아온 인생이나 과거의 인물들이 밟아온 과정이나 개인이 살아온 생애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는 것이 역사라는 점을 말하면서요. 서로의 생애에 '필요'나 '쓸모'라는 말을 덧붙일 수 없는 것처럼, 각자의 인생살이에 의미 없는 순간이 없던 것처럼, 결국 역사도 '나'의 이야기이자 '너'의 스토리이고 '우리'가 밟아온 과정이기에 작은 것에도 의미를 부여해주고 이름을 붙여주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