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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예정 May 21. 2023

'간이역' 역사 교사가 사랑하는 문장들 #04

"학생은 평생을 건 약속이다." - 알랭 드 보통

  매년 찾아오는 스승의 날이면 저도 모르게 가슴이 벅찹니다. 아이들이 교실과 복도에서 전하는 축하 인사와 자기의 마음을 한 글자 한 글자 담은 소중한 편지와 롤링 페이퍼, 칠판 가득 채워 웃음 짓지 않을 수 없게 하는 메시지들 속에서 마음껏 행복하고 감사한 하루를 만끽하죠. 물론 매년 돌아오는 스승의 날에 학생들이 교사들을 챙겨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고 있진 않습니다. 조용히 지나갈 수도 있고, 아이들이 미처 준비해주지 못했을 수도 있으며, 스승의 날이라고 제가 '반드시' 축하를 받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의 수상한(?) 움직임이 조회 시간부터 관찰되지 않으면 포커 페이스를 유지하고 마음의 고요를 찾아 아무렇지 않은듯, 프로페셔널하게 수업과 업무를 이어가면 되는 것이죠. 그런데 너무 고맙게도, 아이들은 만난지 100일도 되지 않은 저에게 축하한다는 마음을 담은 인사를 꼭 전해주곤 했습니다. 올해도 아이들이 전해준 고마운 마음들을 가득 안고 퇴근하면서 '부끄럽지 않은' 교사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콧노래에 담아 흥얼거렸습니다.



  스승의 날이라고 이름 붙인 이 날이면 교사로서 저는 생각이 많아집니다. 매년 스승의 날이면 뉴스 헤드라인에 관련 뉴스가 조금씩 올라오기 때문이죠. 축하 인사를 전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실린 기사가 나오기도 하지만 '교권 침해', '매년 그만 두고 싶어하는 교사의 수 증가', '명예 퇴직', '퇴색된 스승의 날' 등 교사로 하여금 힘이 조금은 빠지는 기사들도 눈에 밟힙니다. 평소에도, 종종, 때때로 올라오고 쏟아지는 소식이긴 하지만 스승의 날에 이와 같은 뉴스를 접할 때면 씁쓸한 마음이 드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스승의 날과 관련된, 좋은 말과 축하한다는 식의 이야기만 보고 듣기 위해 뉴스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기에 마음 속 어느 한 켠에서는 저의 다짐과 저의 실제 모습이 얼마나 떨어져 있는가를 객관화하기 위해 노력하며 마음을 다잡으려 하는 편입니다. 그러면서 지나간 학생들을 떠올리기도 하죠.


  매년 수많은 아이들과의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면서 흐릿해진 기억 속에 남은 학생들이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유독 생각나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역사 교사가 되고 싶다며 사학과, 역사 교육과에 진학해 공부하는 아이들, 역사 시간에 배운 지식과 관점을 바탕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다양한 매체를 통해 기록하고 싶다며 미디어 커뮤니케이션학과에 진학한 학생, 유치원 교사를 하며 여전히 고민을 이야기하고 근황을 전하는 아이도 있고 사업을 하면서 열심히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학생도 있습니다. 생각해보니 한 마디 문장으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참 많은 아이들을 만났네요. 제가 그 아이들에게 나름대로, 이런저런, 영향을 끼쳤을 것을 생각하니 '학생은 평생을 건 약속'이라는 말의 무게를 다시금 실감하게 됩니다.



  헤어진 학생들은 어엿한 성인이 되어 각자의 자리에서 떳떳하게, 치열하게, 행복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을 것입니다. 제가 아이들을 응원하기 위해 버릇처럼 했던 말들 중에 '쌤이 응원하는데 뭐가 걱정이니? 쌤이 든든하게 지켜줄게!'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아이들에게 했던 말을 저는 그 아이들의 후배들에게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졸업하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을 아이들에게 했던 말을 지키기 위해서, 지금의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서, 그리고 교사로서의 다짐을 지키기 위해서 약속으로서의 학생들에게 전한 말이니 반드시 지키겠다는 다짐으로 가득한 제 메모지를 보며 마음으로나마 아이들에게 안부를 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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