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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피 Feb 14. 2023

아버지의 주홍글씨

이혼하면 어때 #20

시대가 변하고 이혼자 500만 시대라지만 여전히 이혼한 남녀에게 보내는 시선은 편견이 존재한다. 이미 내가 이혼했음에도 다른 이혼자를 보는 생각조차 분명 어떤 필터가 있음을 느끼기도 한다.


'분명 겉으로는 멀쩡해도 성격이 문제가 있나?'

'옷은 명품인데 빚은 산더미일지도 몰라.'

'웃는 얼굴로 밤마다 아내를 때렸을지 몰라.'

'저럴 줄 알았어. 분명 바람기가 심각할 거야. 못생긴 놈이 더한다고.'


물론 대놓고 이렇게 얘기를 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자신들의 상상 속에서 아무렇게나 의심을 한다. 그런 가십(gossip)으로 잡담하는 것은 꽤 재밌는 시간을 보낼 수 있기 때문이겠지. 안주거리가 될 주홍글씨의 명찰은 내가 '이'밍아웃을 하는 순간 달게 된다.


그딴 이유는 아니라고 이 놈들아.


이혼하기 전, 직장의 한 동료가 돌싱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그 직원은 나와 친한 사이가 아니었고 나이도 훨씬 많았다.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지만, 업무관계 이외에는 말을 거의 하지 않아 겉모습만으로 어떤 사람인지 내 안에서 짐작할 뿐이었다.


어느 날, 그 직원의 이혼 사실을 알고 그를 보는 내 시선은 아주 조금, 스스로 자각할 수 없는 만큼 변해 있었다. 처음에는 그의 옷차림과 외모, 그가 갖고 있는 물건들에 대한 평가섞인 시선의 변화가 있었고, 챙겨주고 싶거나 돌봄의 관점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시간이 좀 더 지나 그의 생활 습관과 업무 태도 등은 무의식적으로 그의 가족관계가 연관되어, 내가 상상한 이혼한 돌싱남 테두리 안에 가두고 그를 평가한 때가 있었다.

어떤 누구도 내 머릿속을 들여다볼 수 않고, 불편한 느낌을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으니 아무도 내 생각을 알 리 없다.


시간이 지나 내가 돌싱이 되고 그것을 자각했을 때 그때 느낀 불합리한 감정들이 주마등처럼 스치며 나를 부끄럽게 했다.


그래서 나는 이혼의 주홍글씨 명찰을 달기 두렵다.

세상 사람들이 다 색안경과 편견을 갖고 있지 않겠지만, 내 주변 모두 그럴지 장담할 수 없다. 특히 인생의 오점을 남기지 않기 위해 포장해 온 나 같은 사람들은 더욱 두렵다.


남의 상상은 내가 변명할 수 없기 때문에 정당한 이혼조차 기회가 없어진다. 그리고 어쩌면 나 스스로도 부끄럽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이혼한 것은 사실이고 당당할지언정, 그것을 잘했고 떠벌리고 다닐 일은 아니기 때문에.


***


우리 부모님은 내가 33살 즈음에 이혼하셨다. 어머니는 이혼을 결심하기 전, 독립하여 혼자 살고 있는 내게 물었다. 아버지의 외도를 용서 못 하겠다고, 그래서 이혼해도 되겠냐고.


"그냥 이혼해. 그리고 엄마도 엄마 인생 살아. 재산 분할은 유리하게 하고."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그렇게 하라고 대답했고, 어머니의 남은 삶을 응원했다. 그런 결정을 내린 배경 중 가장 큰 이유는 부모님의 경제력이었다.


그때의 부모님은 재산을 분할해도 두 분 다 충분히 자기 인생을 즐기며 마무리할 만큼 부유했다. 부자인 이혼남녀는 주홍글씨의 이혼자 아니라 황금색 돌싱의 명찰이 붙음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가끔 부모님이 헤어지지 않으셨으면 두 분 다 지금처럼 초라하지 않을 텐데 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또, 거기부터 생긴 파장이 내 이혼까지 영향을 준 것도 사실이고.


결혼하고 2년 후 어머니는 모르는, 아버지와 우리 부부의 만남이 있었다.

어느 휴일 점심에 찾아뵙고 오랜만에 인사를 드렸다. 그때 아버지는 소주를 홀로 따라 드시며 당시 아내의 손을 잡고 울먹이며 말씀하셨다.


"니들 결혼에 아무것도 못해줘서 너무 미안하구나. 내가 꼭 재기에 성공해서..."


생전 막내아들인 내게 약한 모습 한번 보인 적이 없는 철기둥 같은 양반.

그런데 나이가 들어서인지, 세월의 거센 풍파를 맞아서인지, 상견례와 결혼식을 포함해 겨우 세 번째 보는 막내며느리에게 눈물을 보이셨다.

저렇게 약한 모습이라니.


"괜찮아. 아빠. 돈은 우리도 충분해. 건강 잘 챙기세요. 술 너무 많이 드시지 마시고."

"미안하다. 정말 미안해."


몇 푼 안되는 돈을 찾아 아버지 양복에 넣어 드렸다.

그 이후 우리 부부는 아버지를 뵙지 못했다. 형과 누나를 통해 아버지의 소식을 듣고 아내 몰래 용돈을 보내는 정도로 관계를 이어갔다.


혹시 당신 탓이려니 하는 마음이 드실지도 몰라, 아직도 아버지에겐 나의 이혼 사실을 말하지 못했다.


이제,

아버지의 주홍글씨 명찰은 내 마음속에서 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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