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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피 Feb 10. 2023

딩크부부로 살아보니

이혼하면 어때 #19

조금 후회가 된다.


결혼해서 자식을 낳지 않은 것이 잘한 일일까.

나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그 사랑의 주체가 바뀔 것 같은 묘한 두려움. 그렇다고 나르시시즘(Narcissism)까진 아니고.


살아오며 내 아이를 만들고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했다. 마치 신이 준 큰 축복을 누리지 못하는 기분이랄까.

젊고 건강한 시절엔 딩크부부로 살았고, 이제는 중년의 돌싱이 되었으니 기회도 없을 것 같다.


전처도 아이를 갖는 것에 부정적이었다.

그녀는 아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고, 임신과 출산을 통해 급격히 노화되거나 망가지는 육체를 두려워했다. 하지만 그건 표면적인 이유고, 진짜 이유는 부부관계의 확신이 부족했던 것이라고 (이제서야) 어렴풋이 느끼고 있다.


서로에 대한 확신으로 결혼식장에 들어갔고 결실을 맺음이 당연한데, 살면서 우리는 그것을 피하고 거부했으니 이혼하는 수순은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이혼 전 언젠가, 평소와 다른 질문을 던졌다.


"오빠. 혹시 애 갖고 싶은 생각은 없어?"

"갑자기?"


짐짓 모르는 척, 대화의 공을 다시 넘기는 나.


"정말 육아를 혼자 하겠다는 확신이 들면 말해줘."

"그냥 생기면 낳지 뭐."


진지한 전처의 물음에 싱긋 웃으며 장난처럼 대답했다. 스스로 가임기 연령의 막바지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얼렁뚱땅 생기면 낳자는 대답을 했는데, 그것은 부정의 의미로 받아들일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분명 내게 주는 메시지는 알고 있었다. 육아를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할 수 있냐는 물음. 지금처럼 가정보다 회사를 우선순위에 두지 말고, 모든 취미와 경제적 자유를 포기한다는 맹세. 결국 그녀가 바라는 대답을 주지 못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대화 이후 더이상 2세를 논하지 않았다.


나 또한 그녀와 백년해로할 자신이 없었던 걸까?

나는 그녀를 사랑했고 미래를 의심하지 않았다. 곁에 없으면 죽을 것 같은 사랑은 아니지만, 함께 늙어가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불꽃처럼 타오르고 애절한 사랑이 아닌, 잔잔하고 배신하지 않는 사랑. 가끔 마음속으로 '생사의 갈림길이면 내가 대신 죽어야지' 같은 유치한 상상을 하곤 했다. 그런 상상으로 그녀와의 관계를 확인했고 내 옆에 그녀가 있음을 만족했다. 물론 이런 유치한 상상은 입 밖에 꺼내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2세를 만들 확신이 없었다.

현실은 아기가 성장해서 성인이 되기까지 소비되는 비용을 계산했고, 그 비용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가치를 비교했다. 그것은 비교불가의 성질이지만 계속 우리는 그 두 가지, 비용과 행복을 저울질했고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그러던 중 고양이 '유리'가 내 곁에 나타났다. 아이를 대신한 유리에게 내 모든 애정을 주었다.

유리가 언젠가부터 내 아이가 되었고, 같이 숨 쉬고 있음이 행복이었다. 그렇게 유리 때문에 주기만 해도 괜찮은 사랑을 배웠다. 그전까지 믿지 않았던 그런 류의 사랑. 그것을 유리 때문에 알았고, 세상의 모든 부모가 이런 비슷한 종류의 마음일 거라 생각했다.


주기만 해도 행복한 사랑, 바라는 것 없어도 억울하지 않은 애정.

그런 사랑을 알게 된 후 조금 더 사랑하는 법을 알게 된 것 같다.


딩크로 살았던 부부생활이 정말 옳은 결정이었을까.

지금도 그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앞으로도 잘 모르겠지.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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