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

넷플릭스 시리즈 <흑백 요리사2>

by 청아

*스포일러 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흑백 요리사> 는 위와 아래를 세워두었다. 미슐랭에서 스타를 받았거나 그에 준하는 인정을 받은 소수의 셰프들에게는 하얀 옷을 입혀 윗칸에 세워 놓았다. 나름대로 성공적이지만 미슐랭에서 별은 받지 못한 다수의 셰프들에게는 검은 옷을 입혔다. 하얀 옷을 입은 영광스러운 이들은 위에서 내려다보았고, 검은 옷을 입은 이들은 밑에서 올려다보았다. 이 구도가 이 시리즈의 시작점이었다.


갈라진 백수저와 흑수저가 각각 팀을 이루어 벌인 전투에서 흑수저 팀은 맥없이 무너져 내렸다. 백수저 셰프들은 100명의 대중 심사단 앞에서는 자극적인 소스를, 10명의 셰프 심사단 앞에서는 프랑스풍의 정교함을 꺼냈다. 백수저 셰프들의 노련한 판단력은 흑수저 셰프들 앞에 보이지 않는 선을 그었다.


팀전 이후, 거의 백수저들만 남은 생존자들 사이에서도 다시 선이 그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대회의 마지막 디쉬가 테이블 위에 놓였다. 최강록 셰프님의 깨두부 요리였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담담한 빛의 국물 속에 빛나는 깨두부와 최강록 셰프님이 좋아하는 몇 가지 재료들이 정갈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나를 위한 요리'의 주제로 만든 깨두부 국물에 그때껏 갈라져 있던, 아니 갈라지려 애쓰던 모든 셰프들이 조용히 녹아들었다.

게을러지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게 해준 깨두부,

우동 가게에서 남은 닭뼈를 어떻게 할까 하다가 구워서 국물에 끓였던 기억,

파를 듬뿍 넣어서 해장했던 기억,

그리고 주방에서 수고한 자신에게 위로라고 하면 생각나는 소주 한 잔...

요리에 담긴 것들 하나하나가 기억을 불러왔다. 그 자리에 있던 셰프들 역시, 각자의 여정 속에서 비슷한 감각을 지나왔을 테니까.


그의 요리는 셰프들 모두의 요리였고,

그의 이야기는 셰프들 모두의 이야기였다.


"그냥 저는 특별한 요리사는 아니고요, 모든 요리사들이 주방에서 티 나지 않게 하고 있는 일들을 그냥 반복하고 있는데, 저도 그중에 한 사람입니다."


나는 너와 다르다고, 내가 너보다 우월하다고, 그걸 제발 좀 알아달라고 외치는 절박한 아우성에 마음이 오버쿡된 조림요리처럼 조려지는 것 같았다. '나는 다른 셰프들과 같다'는 최강록 셰프님의 덤덤한 고백이 피로해진 마음을 깨두부 요리 속 호박잎의 깊은 풍미로 감싸주었다.


아 맞다. 그랬지.

나와 같은 길을 걷는 사람들은, 내가 두려움으로 쳐내야 할 이들이 아니었다.

이 길에서 나는 수고로움과 격려를 함께 지나왔다. 좌절도 상처도 있었다. 걷고 있는지도 몰랐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출발점에서 한참 멀리 와 있던 순간도 있었다. 가려던 길이 막혔을 때에야 비로소 보이던, 옆으로 난 오솔길도 있었다.

그리고 이 길을 걷는 또 다른 이들도, 각자의 방식으로 비슷한 감각을 지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그들은 내 마음을 위협하는 사람이 아니라, 내 생각과 느낌을 알아볼 사람들이다. 내가 걷는 이 길의 가치를 가슴으로 이해할 사람들이다.

그들이 곧 나였고, 나는 곧 그들이었다.


"음식을 하는 수많은 고수 분들도 계시고, 시작하는 분들, 엄청나게 노력하시는 분들, 각자 다 잘하는 음식들이 있고, 그 음식으로 생계를 이어가시는 분들도 계시고, 내 이야기 말고 음식 하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면서 내가 이 이야기를 마무리하면 좋겠다."


그의 이야기는 오늘도 음식을 만들어내고 있을 셰프들 모두의 이야기이면서,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하루를 끓이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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