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말아톤>
초원이 다리는 백만불짜리 다리.
들어도 들어도, 들을 때마다 또다시 가슴이 뭉클해진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말아톤> 에서 조승우 배우님이 연기했던 자폐성 장애를 가진 초원은 달리기에 남다른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5살의 지능을 가진 청년 초원은 목표고 뭐고 아무런 생각 없이 그저 달리기만 했다. 초원이의 삶에서 생각에 관한 대부분의 것들은 엄마와 코치가 담당해 주었다.
다른 이가 대신 생각해 주기 어려운 것들도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속도 조절이었다.
'땅' 소리와 함께 초원이는 있는 힘껏 냅다 달리다가 매번 힘이 다 빠져버려 중간에 지쳐 쓰러졌다. 아스퍼거 (자폐의 일종) 인 나에게는 초원이가 달리다가 헉헉대며 쓰러지는 모든 장면들이 나 자신의 다큐멘터리같이 느껴졌다.
나에게는 '유두리', '센스', '조절'... 이런 것들이 도대체 없다.
무엇이든 조절을 잘 할 수 없는 나는 되도록이면 나만의 원칙이나 방향을 정해서 살아간다. 그날 그날의 나의 구강 상태에 따른 적절한 양치를 할 수 없으니, 나의 양치 루틴을 정해 놓고 매일 변함없이 따른다. 아침 식사 메뉴는 항상 똑같이 야채스프, 달걀 하나, 식빵 두 조각이다. 매일 같은 메뉴를 먹는 게 지겨울 것을 대비해서 주말 아침의 메뉴는 따로 정해 놓았다. 그것 또한 유두리가 아닌, 루틴이다. 그 밖에도 명상 루틴, 운동 루틴, 독서 루틴... 내가 조절을 하지 않아도 일상에 무리가 없도록 이런저런 루틴을 만드는 건 남편이 상당 부분 도와주어서 가능했다.
나는 속도나 페이스를 조절한다는 게 정말로 어렵다. 그래서 무언가를 하겠다고 하는 순간부터 초원이가 달리는 것과 똑같은 모습으로 나도 그저 달린다. 그것만을 생각하며 잠도 안 자고 마음 속을 달리다가 힘이 다하면 지쳐 나가 떨어진다. 열심히 달리다가 중간에 쓰러지는 초원이가 바로 나다.
어느 날 저녁이었다. 과자 봉지들을 뜯어서 과자들을 쌓아놓고 영화를 보던 중이었다. 과자를 아작아작 씹어 먹으면서 영화를 즐기는 그 맛이 어찌나 쏠쏠하던지, 나는 의자 위에서 한 다리는 양반 다리를 하고 다른 한 다리는 무릎을 세워놓은 구수한 자세로 앉아 행복에 젖어 있었다. 그러다 뭔지모를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고개를 돌리니, 영화도 안 보고 과자도 먹지 않은 채 신기함 반과 걱정 반이 뒤섞인 표정으로 가만히 나를 바라보고 있던 남편과 눈이 마주쳤다. 언제부터 그런 눈빛으로 나를 관찰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시계가 똑딱거리듯 과자를 집어 먹고 있었던 것이다. 과자 한 조각을 입에 넣고 정확히 세 번 딱 딱 딱 씹고 나서 삼킨 후 다음 과자 조각을 입에 넣고 다시 딱 딱 딱, 그 다음 조각도 딱 딱 딱... 페이스 같은 건 없었다. 과자를 모두 먹어치울 때까지 동일하게 반복될 리듬이었다. 일단 '좋다' 고 느끼면, 그대로 밀고 나가는 것 외에는 생각하기 어렵다.
"허 참, 어떻게 그래... 배가 부른지 안 부른지 얼른 느껴봐."
"어어어..."
그제야 배가 불룩해진 걸 느꼈다. 꽉 찬 배가 '그만 좀 먹지'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글을 쓰면서 살아가겠다는 방향성을 잡은 순간 내 안에 일종의 '땅' 소리가 울렸다.
'그래 이거야. 이게 나 자신으로 살기 위한 길일지도 몰라. 해보자!'
나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설레임과 행복감에 젖어 이것저것 마구마구 쓰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이번에도 역시 허덕거리는 나를 발견했다. 나의 내면의 상태나 속도는 느끼지 못한 채 나의 마음이 한참 먼저 뛰어나가 버렸다. 나 자신을 느끼는 감각도 둔하고, 발걸음을 어떤 속도로 어떻게 내딛어야 할는지에 대해 그 어떤 생각도 할 수 없고, 융통성도 없는 탓이다.
"어어어..."
"초원이 다리는?"
초원이 엄마는 초원이 스스로가 답을 하도록 한다.
"백만불짜리 다리"
자폐성 장애를 가진 초원은 일반적인 기준에 맞는 달리기 자세로 달리는 것도, 속도 조절을 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마라톤 코스를 달리는 동안 길 위에서 일어날 그 어떤 돌발 상황에도 대응하기 어려웠다. 이 절대적인 하자로 인해 후려쳐지는 초원이 다리의 값은 과연 얼마일까.
그럼에도, '백만불짜리' 라는 말에 이유를 알 수 없이 달궈진 가슴이 응답한다.
그거 백만불짜리 맞다고.
초원이 다리의 값은 초원이 스스로가 매긴다. 달리기는 초원이가 다른 누구도 아닌 초원이 자신으로 살게 해주는 통로였기 때문에, 초원이에게 다리는 백만불짜리가 맞았다. 달리는 동안 느꼈을 자신만의 세계 속에서, 세상이 말하는 '장애' 나 '하자' 라는 개념은 있을 수 없었을 것이었다. 그저 자신으로서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기쁨만이 있지 않았을까.
지금 이 순간, 나로 하여금 이 글을 쓰게 하는 나의 마음도 초원이와 함께 달린다. 초원이가 누렸을 기쁨을 나도 누린다. 마음이 좀 앞서가면 어떤가. 조절을 못해서 지치면 좀 어떤가. 앞서간 마음을 따라가면 되고, 지치면 쉬었다가 다시 일어나면 된다. 글을 쓰는 이 시간 나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다면 세상이 말하는 하자는 내 세계에도 없을 것이다.
나의 마음은?
백만불짜리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