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

책 <무탄트 메시지>

by 청아

책 <무탄트 메시지>를 읽는 동안, 나는 이 책의 저자가 되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사막 한가운데에서 참사람 부족과 함께 뜨거운 모래를 맨발로 지근지근 밟으며 걸어가고 있었다. 그들이 입으라고 준 헝겊 조각을 몸에 걸쳤다. 머리는 며칠 동안 안 감았는지 이제는 셀 수도 없어 떡질대로 떡졌다. 피부는 온통 그을려 더는 벗겨질 것도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발바닥의 통증을 참으며 한 걸음씩 내딛었다. 자연이 허락한 오늘의 식사 메뉴는 뱀이다. 어제는 갖가지 종류의 벌레들을 잡아먹었다.

입가 양쪽에 힘이 꾹 들어갈 만큼 강도 높은 불쾌감이 네 달에 걸친 여행 내내 따라다녔지만, 역설적이게도, 내면의 짐과 두려움으로부터는 점점 해방되며 깨끗해져 갔다.


그렇게 참사람 부족과 함께 걸어가는 내내 한 질문이 내 마음에서 걸리적거렸다.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


사십년이 넘도록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이토록 캐캐묵은 질문에 정작 나 자신의 답을 내놓은 적이 한 순간도 없는 것 같았다.


아주아주 많은 돈을 가지고 근사하게 살고 싶다.

상위 1%의 아름다운 외모를 뽐내며 살고 싶다.

다른 이들보다 뭐든 뛰어나다는 걸 인정받으며 살고 싶다.

보다 많은 이들의 진심 어린 관심과 부러움을 받으며 살고 싶다.

.....


시험을 볼 때마다 미리 공부해 두었던 답들을 고르고 적어냈던 것처럼, 나의 리스트에는 사회가 답이라고 알려준 것들뿐이었다 - 타인들보다 우월하고 특별해지는 것.


당연한 듯 원해왔던 많은 것들을 수년에 걸쳐 가만히 앉아 바라보고 있다가, 꽤나 길게 늘어진 이 리스트의 내용들 중에 나의 내면에서 '좋아요' 버튼을 누른 아이템은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어떻게 살고 싶은가의 리스트는 마음이 향하는 종착지이면서 그 종착지에 닿기 위해 내가 그려갈 인생의 지도다. 놀랍게도 그 종착지는 나의 종착지가 아니었고, 지도는 여기저기 왜곡되게 그려져 있었다.


이 리스트는 나의 것이 아니었다.


'이까짓 거, 버리자.'


생명줄 같았던 리스트를 꼭 붙들고 있던 두 손에서 힘을 빼는 동시에 빈손으로 허우적댈 게 뻔했는데도, 나의 마음 깊은 곳에서 '좋아요' 버튼이 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자의 몸에서 나는 악취가 너무 심해 주변의 동물들을 괜히 흥분시켜 피해를 주게 되자, 참사람 부족은 저자를 얼굴만 바깥에 내놓도록 한 상태에서 몸 전체를 잠시 동안 땅에 묻는다. 땅 속에 묻힌 몸의 독소를 땅이 흡수해 준다.


이 부분을 읽었을 때, 나는 책을 잠시 옆에 내려놓고 누웠다. 나 또한 온몸이 땅에 묻혀 있는 상상을 해보았다. 지금까지 고집해 왔지만 사실 나와는 맞지 않았던 가치들을 땅에 묻었다. 비교당할 때 느꼈던 아픔들도, 어쩌다 느끼던 우월감도 모두 땅에 묻었다. 남들보다 뛰어나고 달라야 한다는 삶의 목표가 나를 얼마나 억누르고 피로하게 해왔는지 느껴보았고, 내가 깔깔깔 웃고 있던 순간에서마저도 속으로는 특별하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원하지 않는 삶을 원하려는 노력은 괴롭지 않은 듯 하면서도 심히 괴로웠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 살고 싶단 말인가.'


나는 다시 책을 집어들고 책의 저자가 되었다. 참사람 부족은 나에게 길잡이가 되어 보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부족을 이끌고 걸어 나갔다. 50도에 이르는 땡볕 속에서 이틀 내내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했고, 물이 있는 것 같아 다가가 보면 매번 신기루였다. 3일째에 접어들었을 때는 극심한 탈수 증세 속에서 죽어가고 있었다.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게 해달라는 간절한 기도를 했을 때, 응답이 주어졌다.


참사람 부족의 관점에서는 모두가 하나이고, 그래서 모두가 한 몸인 것처럼 완벽하게 어우러졌다. 잘난 사람, 못난 사람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모두가 저마다의 고귀함과 타고난 역할들이 있다는 데에 모두가 기뻐했다. 서로를 그저 있는 그대로 사랑할 뿐이었다.


그들이 그렇게 살아가는 모습이 나에게는 어색하게 느껴졌다. 내가 자라온 사회에서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총점이 가장 높은 학생은 잘났고, 총점이 그보다 낮은 학생은 낮은 점수만큼 못났다고 배웠다. 학교는 석차라는 채찍을 마구 휘둘러 댔다.

너의 잘났음을 증명하기 위해 힘껏 달려라. 이것이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학교의 답안이었다.


그 채찍이 사회에서도 그대로인 걸 보면 학교의 답안은 동그라미였다. 너와 나의 위아래를 구분하는 줄서기가 끝도 없이 이어져, 내 마음속에는 일종의 계급표가 생겼다.

이런 삶을 살아가는 나는 생명력을 점점 잃어가고 있었다.


나의 내면에서 정말로 다른 사람보다 잘난 걸 원할까. 정말로 나의 관심이나 재능보다 점수가 되는대로 나의 일을 찾기를 원할까. 내가 진정 원하는 게 다른 이들의 우러름일까.

혼란스럽긴 하지만, 그렇다고 이 모든 걸 내려놓는다는 건 어쩌면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 만큼의 어마어마한 결단일 것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책을 읽는 내내 참사람 부족이 살아가는 방식에 깊이 공명하고 있었다.

우주의 흐름에 기꺼이 발맞추어 함께 걷고,

자신의 내면에 진지하게 귀 기울이고,

아무런 두려움도 열등감도 없이 '나는 돌 수집가요.', '나는 꿈을 붙잡는 사람이요.'라는 진실을 말하며,

남보다 잘나져서가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전보다 나아졌다고 느낄 때 이를 모두가 존중하고 축하해 주는 그런 삶.

지금의 나의 삶과는 너무나 멀리 있는 듯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한 번도 꺼진 적 없이 내 안에 작은 불씨처럼 조용히 있어왔던 것 같은 그런 삶이었다.


그날 밤, 단조로운 풍경이 이어지는 캄캄한 사막에서 나는 세계가 살아나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내가 마침내 두려움을 극복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침내 내가 원하던 삶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나는 느꼈다.


나는 저자와 함께 캄캄한 사막에 누웠다. 책이 몇 페이지 안 남은 걸 보면 참사람 부족과 함께하는 여행이 끝나가는 모양이었다.


왜인지 모르겠다. 진정한 나를 잃는 것보다, 사회가 심어준 열등감을 내려놓는 일이 더 두렵다.


나로 살아간다는 건, 가장 원하는 일이면서도 가장 두려운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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