쫄보의 미션 임파서블

영화 <미션 임파서블: 파이널 레코닝>

by 청아

미션 임파서블. 이단 헌트의 미션은 세계를 구하는 것이었다.

미션을 이루기 위해 이단은 달리고 또 달린다.

절벽에서 오토바이와 함께 날아오르고,

푸른 하늘 한가운데에서 경비행기에 매달리고,

사각 팬티 한장만 입은 채 북극 바다에서 살아나온다.


이단 헌트는 결국 그의 미션을 해낸다.


나는 미션 임파서블이 개봉했을 때마다 얼른 영화관 관람석에 앉아 이단 헌트와 함께 가서 세계를 구한 후, 뇌 속에 도파민이 흥건해진 채로 돌아오곤 했다.

그러다 영화가 한편 한편 만들어지면서 액션이 어딘지 모를 극한까지 치닫고 또 치닫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제는 재밌고 신난다는 느낌을 넘어서 버렸다. 언제부터인지 쾌감의 호르몬인 도파민 대신 감동의 호르몬인 옥시토신이 분비되고 있었다.

'관객을 위해 이렇게까지 해주다니...'

귀하디 귀한 선물을 받은 듯한 감사함에 가득 차서 영화관을 나왔다. 영화 시작 전에 톰 크루즈가 관객에게 직접 전한 진심이 영화의 모든 장면들 안에 꾹꾹 담겨져 있었다.

이 거대한 액션 시리즈는 톰 크루즈의 미션 임파서블이었다.


톰 크루즈도 그의 미션을 훌륭하게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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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미션 임파서블은 나 자신을 구하는 것이다.


무의식 속에 내면의 모든 것들을 예금하고 출금할 수 있는 은행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 곳에 여러 계좌를 만들어 놓고 있다. 상처 계좌, 감사 계좌, 사랑 계좌, 열등감 계좌 등등.

어느 날 그 은행에서 통지서 한 장이 도착했다.

상처 계좌의 상처들이 한도가 초과되어, 은행에서 나의 유방에 암주머니를 만들어 그 곳에다 상처들을 일부 옮겨 놓겠다고 했다.


미션 임파서블의 시리즈들 모두 도입부에서 이단이 5초 후 자동삭제되는 메세지를 받으면서 그의 미션이 시작되었던 것처럼, 은행의 통지를 받으면서 나에게도 미션이 주어졌다. 당장 상처들을 최대한 우주로 날려보내지 않으면 나의 생명력이 흔들리게 된 것이다.


처음엔 그저 암을 피하려고 시작한 싸움이었지만, 하다보니 나의 진정한 미션은 훨씬 더 근원적인 데에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단이 처음엔 악당들로부터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달렸지만, 달리다 보니 자신의 미션이 사실은 인류 전체가 향후에 어떠한 방식으로 존재해 갈 것인지에 대한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듯이.


나의 미션은 암으로부터 안전해 지는 것이 아니었다.

더 이상 암을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암이 있든 없든 나답게 살아내는 것.

그것이 진정한 자유였고, 나는 그 자유를 통해서만 진짜 나를 구할 수가 있었다.


이단 헌트는 미션을 이루기 위해 지구 끝까지 전속력으로 달려갔고, 나는 나의 미션을 위해 나의 내면으로 발걸음을 천천히 내딛기 시작했다.

이단이 찾는 것이 북극 바다 밑바닥과 저 하늘 한가운데에 있었던 것처럼, 내가 찾는 것도 나의 무의식의 바다 깊은 곳 어딘가와 나의 의식이 펼쳐지는 하늘 높은 곳에 있었다.

이단은 그가 찾던 것들을 모두 찾아왔지만, 나는 아직 못 찾았다. 왜일까.


영화를 보며 깨닫는 게 있었다.

이단 헌트는 절실했다. 영화 초반에는 영화관의 편안한 좌석에 기대어 앉아 달달한 팝콘을 먹으며 액션을 즐기다가도, 영화가 중반을 넘어가면 목숨을 걸고 북극 한가운데의 바다 속으로 뛰어든 사람의 비장함 앞에서 팝콘을 씹는 게 불편해져 손에 쥐고 있던 팝콘을 놓게 될 정도의 그런 엄청난 절실함이 있었다.

나는 암으로부터 안전해지는 데에는 절실했지만, 그 뒤에 있었던 내면의 자유를 향한 나의 미션에 대해서는 이단처럼 절실하지가 않았다.


그래서 두려웠나보다. 절실하지가 않아서.

깜깜한 나의 무의식의 바다 속에서 무엇을 만나게 될지가 두렵고, 너무 하늘 높이 올라가면 되돌아오지 못할까봐 두려웠다.


영화 미션 임파서블의 공식은 어찌보면 간단하다. 지금 하려는 일이 얼마나 위험하고 성공 가능성이 낮은지를 강조해서 보는 이로 하여금 두려움에 몸을 오그리게 하지만, 이단 헌트는 두려움 따위는 느낄 새도 없이 미션을 향해 뛰어드는 것이다. 이단의 초점은 영화 여덟 편을 통틀어 오직 하나에만 맞추어져 있다 - 미션을 성공시키는 것.


나는 이단 헌트가 아니다. 나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을 위하는 데에도 겁을 집어 먹고 발을 띄지 못하는 쫄보다. 그런 나에게조차 이단 헌트가 영화를 통해 메세지를 준 것만 같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나의 미션만을 향해 그저 나를 던져 보라고.

그러면 진정한 의미에서 살아있을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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