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도망자의 편지

책 <그리고 모든 것이 변했다>

by 청아

아니타 무르자니 님께


재미있게도, <그리고 모든 것이 변했다> 책을 통해 나누어 주신 당신의 임사 체험 이야기 중에 가장 깊은 공감을 느꼈던 부분은, 당신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서는 기적적으로 치유되었던 부분이 아니라 당신이 죽기 전에 약 4년이라는 시간 동안 어떻게든 병을 낫게 해서 살아보려고 처절하게 발버둥쳤던 부분이었어요. 정말이지, 할 수 있는 건 닥치는 대로 모두 시도해 보셨잖아요. 온갖 권위있는 치유 식단들부터 시작해서 갖가지 명상 테크닉들도 익혀서 내면을 정화하고, 티베트와 인도의 구루들을 찾아 먼 길을 나서기까지 그 모든 발걸음이 얼마나 절박하셨을지가 느껴져 눈물이 핑 돌았어요. 살고자 하는 마음이 그토록 컸음에도, 할 수 있는 그 모든 노력을 모두 했음에도, 당신의 림프암은 당신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온 몸으로 번져 갔고 고통은 심해졌죠.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흘러갔던 현실 앞에서 당신은 얼마나 깊은 슬픔을 느끼셨을까요.


저는 2년 전에 초기 유방암 진단을 받은 후, 암이라는 개념 자체에 겁에 질린 나머지, 저의 몸과 마음을 세심하게 돌보기 시작했습니다. 마음 속에서 불편하게 느껴지던 상처들을 용기내어 하나씩 꺼내서 상처를 바라보고 느끼는 저의 시각을 재정리하기도 했고, 이런 저런 방법들로 영성을 발달시키려고 노력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도서관에 가서 음식 치유에 대한 책들을 산더미같이 빌려와서는 노트에 한장 한장 베껴가며 공부하기도 했고, 마침 맨발 걷기를 하기에 좋은 환경이 집 가까이에 있다는 걸 알게 되어 수시로 그 곳에 찾아가 맨발로 땅을 밟았어요. 땀을 내는 운동도 물론 게을리 하지 않았죠. 네 맞아요. 저는 암에게 다시금 붙잡힐까봐 있는 힘껏 도망다니고 있었습니다.


최근에 같은 부위에 암이 재발했다는 사실을 대면하는 건, '암입니다' 라는 진단을 처음 받았을 때보다 스무 배는 더 깊은 공포였습니다. 첫 암 진단 때는 암이 왜 생겼는지에 대해 내가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그래, 나의 하체가 너무 차갑긴 했지. 내 마음 속에 아픈 부분들이 있으니까. 단 음식을 너무 많이 먹어서 몸이 산화되어 있었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을거야.'

암이 생겨난 이유를 안다는 생각은 내가 암을 관리할 수 있다는 안전한 기분이 들게 했습니다. 진단을 받았던 순간에는 많이 놀랐지만 이내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던 건, 아마도 이렇게 암이 내가 내 뜻대로 관리할 수 있는 영역 안에 있다고 느껴서였던 것 같아요.


"암이 재발했습니다."

이 간단한 한마디로 저의 지난 2년간의 노력이 단숨에 '무' 로 돌아간 듯 했습니다. 암으로부터 벗어나려고 있는 힘을 다해 도망쳤지만 결국 암에게 붙잡힌 건지, 아니면 애초에 내가 도망다니는 것과는 무관하게 어차피 일어날 일이었던 건지 알 수 없었어요. 노력해도 안 되는 것들이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기분이 심히 쪼그라들고 더러워졌습니다.


아주 오래 전에 읽어 보았던 아니타 당신의 책을 다시 찾아 읽게 되었던 게 그 즈음이었어요. 당신의 경험은 암의 재발을 대면해야 했던 저에게 깊은 위로가 되었습니다. 당신은 암으로 죽어갔던 당시의 감정에 대해서 자세히 묘사해 놓진 않았지만, 당신이 거쳐갔던 과정 과정에 당신이 느꼈을 절절함이 스며들어 있었습니다. 구워진 고기를 입 안에 넣고 씹으면 고기가 품고 있던 육즙이 입 안을 채우듯, 당신의 경험을 마음으로 베어물자 당신의 감정들이 고기의 육즙처럼 내 안으로 흘러들어 온 것 같았습니다. 그 맛이 내가 느끼던 감정과 같은 종류의 맛이라는 게 나에게는 포근하게 품어지는 듯한 위로였어요.


그렇게 두려움이 어느 정도 다독여지고 나니까 비로소 나의 진짜 마음을 알아갈 수 있었습니다. 처음 암이 생겼다는 걸 알게 된 순간부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다시는 암에 걸리지 않기'가 내 삶의 유일무이한 목적점으로 설정되어 있었습니다. 당신의 책을 읽으면서 굵직한 징 소리와 함께 머리 속에 현타가 찾아왔습니다. 그것은 바로, 암에 다시 걸리지 않겠다가 목적이 되는 한, 나의 마음은 죽는 순간까지 끝나지 않는 암과의 술래잡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암이 아니라, 그 지독한 술래잡기가 나의 삶을 망가뜨릴 게 분명해 보였습니다.


그러면 이제 나는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지? 앞으로의 일상을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야 하지? 암이 생길지 안 생길지 모르는 이 불확실성을 어떻게 대면할 수 있지? 무의식의 바다 속에서 어슬렁 거리는 커다란 상어 한마리 같은 이 죽음에 대한 공포는 어떡하지? 하루 벌어 하루 살아가는 사람처럼, 하루치의 생명을 그 날 그날 받아다가 하루씩 살아가는 건 왠지 불안하지 않을까? 내 삶이... 뭐가 되는 거지?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전에는 해본 적 없는 생소한 질문들이 소화가 안 되어 뿜어지는 독한 설사처럼 내 안에서 쏟아져 나왔습니다. 아아... 답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질문이 있어야 하긴 할 테지만, 수많은 질문만 던져 놓은 채 답을 기다리는 상태를 견디는 것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아니타 당신은 책을 통해서 나의 여러 질문들에 대해 명료한 하나의 답을 제시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깨달았다. 지금까지 그 지난한 삶 동안에 내야 해야할 일은 기실 단 하나 뿐이었다는 것을. 그것은 내가 결함이 있다는 그 어떤 느낌이나 판단 없이 그저 내가 되는 것이었다.
.....
나는 그것이 진실로 삶의 유일한 목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자기 자신이 되는 것, 자신의 진실대로 사는 것, 본디 제 모습인 사랑이 되는 것.
- <그리고 모든 것이 변했다> 중에서 -


이 부분을 내 일기장의 표지에 적어 놓고 매일같이 여러번 읽었습니다. 반복해서 읽으면 읽을수록, 당신의 말이 진정한 진실처럼 느껴졌어요. 나는 암으로부터 도망다니는 삶을 꿈꾸고 싶지 않았습니다. 내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서 원한 것은 자유로움 이었어요. 그 어떤 두려움이나 상처에도 왜곡되지 않은 진정한 내가 되어서 가장 나다운 삶을 살아가는 그런 자유요.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나서 나는, 당신이 말한 것처럼, 나 자신이 되어 나 자신의 진실대로 살아가는 그런 삶을 앞으로의 나의 삶의 목적으로 정했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어요. 암에 대한 두려움이 내 안에서 점점 힘을 잃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나의 내면의 등대가 지난 2년 동안 '암' 을 비추다가, 서서히 방향을 틀어 나 자신을 비추는 것 같았어요. 등대의 빛이 옮겨 가면서 암에 대한 두려움이 있던 자리는 어둠이 되었어요. 존재하긴 하지만, 어둠 속에서 별 힘을 발휘하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아직 완전히는 아니지만 나름대로의 편안함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당신이 죽고 나서 영의 상태가 되어 느꼈던 그 진짜 자신을 나도 느껴 보려고 하루에 열 시간씩 명상을 하기도 했어요. 그걸 느끼는 순간, 지금 내가 겪고 있는 혹은 앞으로 겪게 될 모든 문제들이 그야말로 한 방에 해결될 것 같았거든요. 당신이 그랬던 것처럼요.


하루 종일 명상에 집중해서 영적인 폭발을 시도하며 낑낑대던 나를 두 어달 지켜보던 남편이 조언을 해주었어요. 나의 성향과 특성상, 나는 그렇게 한 방에 모든 걸 깨달아 버리는 스타일은 아닌 것 같다고요. 그래서 매일 나 자신에 대해서 조금씩 더 알아가면서 영적인 깨달음을 얻는 방향으로 시도해야 할 것 같다고요.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매일 나의 마음을 담은 에세이들을 쓰면서 등대의 빛을 나의 가슴에다 조준해 보려구요.


오늘도 나 자신이 되고 나 자신의 진실대로 살기 위한 하나의 발걸음을 이 곳에 이렇게 내딛어 봅니다.

오늘 딛는 이 한걸음은 당신이 당신의 경험을 책을 통해서 나눠준 덕분이에요.


감사와 사랑을 담아,

나 자신의 진실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한 영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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