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꼬솜 Jun 22. 2024

건널목 씨처럼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를 읽고

   어떻게 내게 왔는지 모를 김려령의 <<그 사람을 적이 있나요?>>  2011년 초판으로 나왔고, 내가 갖고 있는 건 2014년 9쇄 판이었다. 뒤늦은 책장 정리 때, 삐져나온 청록색 소형판 아이, 색이 바랬고, 오래된 냄새가 나던 아이. 자리만 차지하고 안 보는 다른 책과 함께 버릴까 하다가, 문학동네가 책이니, 버리더라도 읽고 나서 버릴까 싶었다.

  조반 전, 말라버린 눈에 인공 눈물을 넣고, 초점 맞추는 늙은 눈에 돋보기를 씌워 읽을 준비를 마친 내게, 오 명랑은 이야기 듣기 교실로 초대했다. '잘 듣는 아이가 말도 잘한다!'며. 돋보기를 썼는데도 초점이 안 맞아 양미간을 찌푸리며 이야기를 들었다. 군데군데 밑줄 친 부분만 먼저 발췌를 해볼까.


- 햇병아리 작가 주제에 알토란을 낳는 씨암탉 작가라도 된 양 거드름을 피웠더랬다. (p.37)

- 좋은 사람이란 그런 거야. 가만히 있어도 좋은 에너지를 뿜어내는 사람. (p. 70)

- 아무리 지어서 써도 불현듯 나오는 문장까지는 지어서 못 써요. 몸에 박힌 말이 툭 나와 버린 거니까. 저한테 아저씨는 그런 문장 같은 분이에요. 너무 깊게 박혔거든요. (p. 75)

- 속상하고 서운한 눈에서 흐르는 기쁨의 눈물이라니. (중략) 노인이 흘리는 눈물은 농이 짙은 눈물이다. 살아온 세월 동안 물기는 날아가고 진액만 남아 버린 눈물. (p.103)

- 목울대가 울렁거렸고 쥐가 난 것처럼 손이 저렸다. (p.111)

-엄마 아빠가 띵똥 초인종을 누르는 순간 무서움이 싹 가시잖아. 부모는 그런 존재야. 그런 부모가 태석이와 태희에게 사라졌어. (p.118)

- 꺽꺽 토할 정도로 울었어. (p. 131)

- 놀리고 놀려도 달려와 혼내 줄 부모가 없다는 걸. (중략) 무조건 자식편인 부모가 있는 집. (p. 132)

- 울음을 꾹꾹 참느라 엄마는 말을 잘근잘근 씹는 것처럼 입술을 몇 번이나 꼭꼭 오므리면서 말했어. (p.141)

- 건널목이 있는 도로는 왠지 마음이 놓이잖아. 도로에서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니까. (p. 147)

- '어머니'라는 단어는 왜 그렇게 뜨거운지, 자꾸 눈물을 만들었다. (중략) 안 유명하면 어때? 누가 뭐래도 난 글 쓰는 게 즐거운 작가인걸! (중략)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 (p.156)


- 작가의 말 중에서

우리 그래도 덜 힘들게 덜 아프게 덜 무섭게 그 시가를 건널 수 있도록 서로에게 작은 건널목이 되어 줄 수는 있습니다. 친구라도 좋고 이웃이라도 좋습니다. 먼저 손을 내밀어도 괜찮고, 누군가 먼저 내민 손을 잡아도 괜찮습니다. 우리 그렇게 살았으면 합니다.


   밑줄 친 부분만 다시 읽어보니, 이 책이 구슬프게 들렸다. (사실, 그리 구슬프지만 않다. 참 귀엽고 사랑스러운 구성을 가진 책이다.) 내면 아이가 흘렸던 농도 짙은 진액보다 더 진한 눈물이 저 표현들을 끌어왔을까. 표피에 생긴 얇은 생채기가 아니라 몸속 깊이 박혀 툭 나올 수 조차 없던 상처로 얼룩졌던 아이가 모아낸 문장일까.

   맘 속에 담아뒀던 이야기를 꺼내야 다음 이야기를 할 수 있다던 오 명랑. 이 책을 좀 빨리 읽었더라면 어땠을까. 화해를 빨리 할 수 있었을까. 작년에서야 보냈다. 근 삼십 년 가까이 화해하지 못하고 보내지 못했던 뜨거운 단어인 '어머니'를 말이다.

    하나뿐인 내 아이의 내면 아이도 나와 같은 모습이었을까. 4개월 전에 독립한 아이, 이제 아이 물건 조차 집에 없지만, 세상의 무서움을 가시게 하는, 무조건 내 편인 엄마로 남기를 바란다. 누군가에게 기꺼이 건널목이 되어주거나, 손을 내어주거나 잡아 줄 수 있는 따순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바란다.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 버린 건널목 씨처럼. 태희가 그토록 찾던 따순 사람처럼.

매거진의 이전글 이제 다음 손님은 없다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