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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끄고릴라 May 13. 2023

와인에 초콜릿이 필요한 밤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오늘 같은 날 필요한 용기 한스푼.



엄마와 나는 

한 몸인 줄 알았다.


엄마가 아프면

내가 아프고

엄마가 불안하면

나도 불안함을 느끼는 게

당연한 줄 알았다.


그게 '사랑'인 줄 알았다.




그러나

사실은 그리 건강하지 못한

생각이라는 사실을

이제서야 깨닫는다.


엄마와 나는

태어날 때부터 '다른' 사람이다.

독립된 주체인 것이다.


나의 생각과 의견을

존중받지 못하다 보니

엄마의 뜻에만 따르는

순종적인 아이로 컨셉을 잡았고

나이 마흔이 되도록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생각의 끈을 놓아버린 듯했다.


나는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

나의 외모도

나의 옷 입는 센스도

나의 얼굴을 꾸미는 화장법도

모두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와 너무나 다른 열한 살짜리 딸.

오늘 딸과 대화하다가 울컥하는 순간이 있었다.



"딸아, 너는 좋겠다.

엄마는 어릴 때 너처럼 화장도 해보고 싶고

이래저래 꾸며보고도 싶었는데

무섭고 엄한 할머니 아래서

반항 한번 없이 살다 보니

성인이 되어서도

지금껏 아이라인 그리는 법도 

제대로 몰라서 짱구눈썹을 만들어놓고

자꾸만 자신감이 없어지고

소심해지는 탓에 

자신을 꾸미는 것을 포기했었다.


옷 한 벌 사면

이 옷에는 어떤 신발을 신어야 할까,

어떤 가방을 들어야 할까,

온통 매치가 되지 않아

어색하기 짝이 없도록 코디를 하고

남편에게 핀잔을 듣다 보니

쇼핑에는 관심이 1도 없게 되었지.


그러면서

겉으로는 

나는 옷걸이가 좋고

본 바탕이 예뻐서

여기에 옷도 잘 입고

화장도 잘해봐~

남자들이 부산까지 줄을 서서

안 돼 안 돼~~

그래서 내가 안 꾸미는 거야~!

라며 헛소리를 했지."



상담을 받으면서

내가 나 자신을 꾸미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게 되었고

당장 딸이랑 같이 화장품 가게를 갔다.


딸은 테스트용 화장품들을

색깔별로 다 칠해보고

나에게 어울릴만한 것들을 추천해 주었다.


"에이~ 엄마, 

빨리 지워. 그거 엄마한테 너무 안 어울려.

왜 또 아이라인을 이상하게 만들어놨어!"


화장솜으로 지워도 지워도

기술이 좋아진 건지 새카만 아이라인이

지워지지를 않는다. 

결국 지우기를 포기하고 

거울을 안 보기로 했다. 


"딸아~ 엄마, 이제부터는

잘 못한다고 포기하지 않을래.

계속하다 보면 엄마도 실력이 늘지 않겠어?

그러니까 엄마가 잘 할 수 있도록

응원해 주고 많이 가르쳐 줘.

앞으로 치마도 입고 예쁘게 꾸미고 싶어."





나르 엄마 아래서 돌봄을 받지 못하고 자라

돌봄 중독에 빠진 어린 나를 돌아보며

천천히 충분히 슬퍼하고 가여워하려 한다.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오늘 같은 날은

와인에 초콜릿이 제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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