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봄, 그 어색함에 대하여

퇴직 유감

by 이점록

❙ 일상과 이별


퇴직은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오는 삶의 한 과정이다. 일생 중 가장 큰 변화 중 하나이다. 그래서 삶에 대한 변화와 고민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젊디 젊은 홍안의 청년기부터 정직과 성실을 바탕으로 천직으로 여겼던 긴세월. 희생과 봉사의 발자취는 이제 아련한 추억이 되었다.


33년간 정들었던 때 묻은 제복과 조직이 일순간 '툭'하고 끊어진 기분이다. 몸담았던 직장, 함께했던 동료, 명함, 스스로를 굳건하게 지켜 주었던 분신들이 한꺼번에 사라졌다. 카톡도 덩달아 조용하다.

그러나 이제는 정든 동료들과의 교류도 거의 전무하다. 덜컥 무인도에 덩그러니 내팽개쳐진 내 모습처럼 느껴져 무섬증이 들기도 했다.


"아! 출근하지 않지? 마음껏 자자. 자유를 만끽하자."라며 또 다른 내가 나에게 속삭인다.

가끔 지인들과 통화를 하면서도 "자유인으로 사니까 너무 좋습니다."라며 이중적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왜 이렇게 바쁜지 "백수가 과로사한다"는 말은 남의 말이 아니었다.


퇴직 후 마주하는 고민은 재정적사회적인 문제와 자기 계발에 대한 문제라고 본다. 월급이 줄어들면서 지출 줄이는 등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퇴직 후 갑자기 누구에게도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 되어 소외감마저 느낀다. 보고 싶어도 일방적으로 전화를 하기가 조심스러울 정도이다. 왜냐하면 무슨 부탁이라도 하는 것처럼 비칠수 있기도 하다. 일을 그만둔 후에는 빈둥거리다 자칫 침체의 늪에 빠질 수 있다.


무엇보다도 먼 앞날을 내다보는 혜안이 필요하다. 퇴직금을 통해 본인의 삶의 질을 높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욕심에 휩쓰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 위한 관심사에 눈을 돌렸다. 먼저 지역 단체에 가입하여 봉사활동을 시작하기로 했다. 다양한 분야의 새로운 사람들과 관계가 선행되어야 한다. 좋은 아이디어가 생길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리고 전문기술을 습득하여 역량을 키우는 고민도 해야겠다.




❙ 첫봄맞이


'누구나 퇴직을 하지만 누구나 준비는 하지는 않는다.'

사실 퇴직준비를 못했다. 아니 안 했다. 그럭저럭 지내면 되겠지. 안이한 생각이 지배했다.

"마라톤 선수가 골인지점까지 최선을 다했다"며 스스로 위안을 했었다.

그러다가도 "참 멀리도 달려왔지? 한길만 묵묵히 달려온 게야!" 푸념 섞인 말들도 입속에서 맴돈다.


처음 가는 길 변화를 두려워해서는 안될 일이다. 처음 가는 길 제대로 준비해서 떠나자.

"이제 차근차근 준비를 잘하자."며 채근을 했다. 새봄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아! 새봄이 아니고 첫봄이지?

정년퇴직의 굴레로 이 세상에 나와 인생 2막에서 맞이하는 첫봄이다. '가장 확실한 노후대비는 평생현역'이라는 말이 가슴에 와닿는다.


어쩌면 퇴직자가 가장 우선적인 목표는 재취업이라고 본다. 그래서 경쟁력을 위한 이력서 및 자기소개서를 꼼꼼하게 작성했다. 주요 경력과 자격증, 상훈, 모두 찾았다. 퇴직 전 경찰수련원에서 전직지원교육을 받으면서 중요성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입력 시스템 적응 등 한 3일이 걸려 힘들게 마무리했다. 고용노동부와 한국고용정보원에서 운영하는 W취업 포털에 탑재했다. 구직·구인정보와 직업·진로정보를 제공하는 취업정보 사이트이다.


내 인생에서 경험한 적 없는 첫봄이어서 의미부여를 하고 싶다. 만다라트 계획표에 박혀 있는 버킷리스트를 오늘도 응시한다. 버킷리스트 1호가 완성되었다. '브런치 작가'로서 독자와 소통하고 있음이다. 만약 퇴직을 하지 않았다면 어림없는 일이다. 비로소 행복 쌓기 1단이 완성되었다. 소통과 공감을 통해 경험과 지혜를 나누고 싶다.

움트는 생명.jpg

[ 소생하는 새 생명 ]




❙ 라온지기


'라온'은 즐거운 뜻의 순수 우리말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나를 위한 삶은 아니었다. 이제부터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 이름 모를 새들이 지저귀는 마당으로 나갔다. 심호흡을 해본다. 문득 얼마 전 행사장에서 낭송했던 자작시가 생각나 읊조렸다.


오늘같이 좋은 날


눈 가고 마음 머무는 곳마다

꽃봉오리 탐스럽게 움트는

기다리던 봄이 왔네


또 하나의 길이 열리는 날

어제의 꿈과 오늘의 희망이

오롯이 합쳐지니 해 오름처럼 가슴 벅차다


때로는 빈들에서 흔들리는 꽃일지라도

때로는 구름에 가려진 어두운 길일지라도

때로는 폭풍의 언덕에 서있을지라도


겨우내 움츠린 가슴을 활짝 펴고

옥도 갈아야 빛이 나듯

이제 두 손 마주 잡고 덩실덩실 춤을 추세


하늘과 땅이 그윽하게 웃는 날

늘 오지만 더 안전한 내일로 가는

양지(陽智)에서 양지(養志)하자


시를 읊으니 봄바람이 살랑이며 애무하듯 다가온다. 어릴 적 이맘때쯤 편지글에는 늘 '만물이 소생하는 봄'으로 장식했었다. 새로운 출발과 생명의 시작을 알리는 봄이기 때문이다. 나무와 꽃들은 보란 듯이 움트는 신비한 생명력을 보여준다. 그야말로 봄의 전령사들이 온 땅을 완전히 점령한 모양새다.


"겨울이 없다면 봄은 그리 즐겁지 않을 것이다. 고난을 맛보지 않으면 성공이 반갑지 않을 것이다."

앤 브레드 스트리트(Anne Bradstreet)의 명언이 새롭다.


우리 집 마당에는 산수유나무가 제일 먼저 꽃을 피웠다. 샛노란 꽃이 화사하다. 곧 홍목련, 매실꽃이 "저요" 하면서 차례로 필 것이다. 오가는 사람들의 옷차림은 한결 가벼워졌고, 바람 쐬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나고 있다. 둘레길에서 만나는 분들과 편하게 인사를 나눈다. 마음을 열고 먼저보는 사람이 인사하면 된다.


라온지기가 되고 싶다.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늘리자. 새로운 삶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를 갖자. 어느 분의 말을 인용한다. M본부 출신 김민식 PD 말을 인용 한다. "따삐빠를 하지 말자."이다. 즉 따지지 말고, 삐지지 말고, 빠지지 말자. 참으로 맞는 말이다. 사이가 좋아야 잘 사는 것이다. 퇴직 후의 삶은 나 자신이 직접 만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인생2모작은 속도가 아닌 방향이다.


퇴직은 새로운 시작일 뿐이다.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경험과 가능성을 열어주는 열쇠이다. 이제 긍정적인 태도와 열린 마음으로 새로운 싹을 틔우자. 움트는 꽃봉오리처럼…….

첫봄, 어색함을 익숙함으로 이겨내자. 나는 그리움과 반가움이 머무는 고향벗들의 카톡방을 노크했다. '똑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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