싶다

돌아오지 않는 다리

by 이점록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건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퇴직을 맞이한 지 100일이 조금 지났다. 오롯이 천직이라는 일념으로 30여 년을 쉼 없이 달려왔다. 멈추니까 비로소 보이는 주변 사람들, 그리고 관계의 물음표들..., 퇴직은 개인의 인생에서 엄청 중요한 전환점이다. 기나긴 노동의 열매를 즐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자아 발견을 위한 여행을 떠나야 한다. 나의 소중한 경력은 나에게 목적과 정체성을 줄 수 있다.


과연 구체적이고 실현가능한 인생 2막은 무엇일까? 누구라도 나와 마찬가지 고민을 할 거라 생각한다. 통계에 따르면 한국인의 경제적 은퇴시기는 72세라고 한다.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그럼 나는 아직 젊다는 뜻 아닌가? 그렇다, 충분히 일 할 수 있는 나이다. 나의 고민은 길어진 100세 시대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리고 그 기간 동안 무엇을 해야 하는가?이다.


대다수 은퇴자들의 착각은 자신이 더 이상 삶에 기여할 수 없다는 잘못된 믿음이다.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공유하거나 다른 방식으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고 본다. 은퇴는 삶의 한 단계에 불과하기 때분이다. 착각의 늪에 빠져 있는지 모르지만, 나는 아직 쓸모 있는 역량과 식지 않는 열정이 있다. 아! 일하고 싶다.


아직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스러움이 싫지 않다. 사뭇 설레임이 남아 있기도 하다. 시곗바늘은 쉼 없이 돌고 또 돌고 있다. 나는 내가 무엇을 즐겼는지,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했는지, 앞으로 무엇을 이루고 싶은 지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다. 사실 녹록지 않은 현실 앞에 내팽겨진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선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작성하기로 했다. 이틀 동안 보충 자료를 찾아 매달렸다.




현실적으로 그동안 같이 일했던 동료들과 연락을 주고받기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사적으로 부탁하는 것처럼 비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과 다시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편하고 동등한 관계, 사람 냄새 물씬 나는 그런 사이가 되기를 원한다. 새로운 추억을 같이 만들고 싶다. 만약 함께 성장할 수 있다면 기쁘고 즐거운 일이 아닐까?


새로운 인생의 여정, 이제 그동안의 동료들과 함께 일했던 시절은 기억의 저편에 남아있다. 그러나 그들은 나의 인생에서 중요한 인연이며 역할을 해주었다. 그들과 함께한 추억은 나의 인생에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감사하며, 그들과 함께 한 기억을 영원히 간직하리라. 그들과 일하는 동안 우리는 서로를 도와주고 지지해 주었다. 가끔은 가정 대소사에 참석하기도 했었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더욱 잘 알게 되었고, 친분을 쌓게 되었다. 하지만 퇴직 후 몇 달이 지난 지금까지 직접 연락을 주고받은 적은 거의 없다. 그들의 삶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즐거운 일들을 겪고 있는지? 모든 게 궁금하다. 아! 보고 싶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 자신에게 물어본다. "이렇게 사는 게 맞는지?" 참으로 혼란스럽다. 서로 불편한 존재일까? 아니면 바빠서? 그동안 동료들과 한솥밥을 먹으며 동고동락하며 지혜를 모아 헤쳐 나왔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현직이 아닌 전직으로 소위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건넌 것이다.

돌아오지 않는 강.jpg (돌아오지 않는 다리?)


얼마 전 모처럼 결혼식장에서 동료 분과 만났다. 반가운 얼굴로 안부를 물었다. 그리고 제일 먼저 물어오는 게 있다.

"뭘 하고 있습니까?" 똑같은 질문들이다.

"자유인으로 잘 살고 있습니다."라며 늘 하듯이 대답한다.

"봄날을 기다리겠습니다." 기대반 우려반 섞인 표정이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뷔페식당은 하객들로 초만원이다. 부지런히 손을 놀리고 있다. 마치 전쟁터 같다. 모름지기 나처럼 퇴직자도 많을 것이다.




우선 가족과 친구들과의 사회적 관계를 발전시키고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겼다. 아직 간절함이 그리 많지는 않다. 그렇지만 세월의 막흐름을 방치해서는 안될 일이다. 먼저 정체성 유지와 나의 관심사를 찾기 위해 지자체 협력단체에 가입하였다. 나는 내가 알지 못했던 새로운 만남이 너무 좋다. 그리고 소통과 공감을 통해 경험과 지혜를 나누고 있다. 나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줄 수도 있을 것으로 여긴다. 물론, 그동안 함께한 동료들과의 관계를 끊는 것은 아니지만……


작가에 도전하여 작가로서 글쓰기를 제대로 시작하였다. 참으로 다행스럽기 그지없다. 퇴직이 아니었다면 마음속에서만 머물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나의 길을 가게 되었다. 매일매일 사물을 바라보는 것이 즐겁다. 그리고 새롭다. 비록 걸작은 아닐지라도 독자를 위한 창작의 고통은 감내하리라. 나만의 이야기지만 우리들의 이야기가 되도록 노력 중이다. 글이란 머리와 가슴이 아닌 마땅히 온몸으로 쓰는 것이라 했다.

작가.jpg (작가의 길)


물론 자기 발견은 지속적인 과정이다. 내 길에 대해 확신이 서지 않는 날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나는 내 길을 찾을 것이라는 신뢰를 주문 외우듯 하고 있다. 결국 인생은 단순한 직업이나 직위 이상에 관한 것이다. 그것은 나를 찾고, 다른 사람들과 연결하고, 경험에서 의미 즉 '목적 찾기'이다.


인생 2막의 시기는 참 모호할 수도 있다. 젊을 때처럼 앞만 보고 달려가기에는 나이가 많다. 그렇다고 자연의 이치에 몸을 맡기기에는 너무 젊다는 생각이 든다. 결코 나 혼자의 생각은 아닐 성싶다. 시작 전에는 늘 망설임과 머뭇거림이 같이 한다. 그럼에도 시작을 해야 하지 않을까? 오늘도 나에게 묻고 또 묻는다.

"일단 시작하라 그리고 계속하라" 맹자의 말이 귀에서 맴돈다.


휴대전화에 보관 중인 추억의 사진들을 꺼내본다. 미소가 머문다. 그리움이 파도친다.

뼈에 사무치도록……,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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