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그대로

4. 감정의 파도는 해일처럼 나를 삼킨다.

by 이헨

나는 화를 잘 내는 편은 아니었다.

누가 실수를 해도

누가 나를 불편하게 해도

"그래, 처음이라 그럴 수도 있지"

"내가 익숙하니까 조금 더 하면 되지"

늘 그렇게 넘겼다.

그래서인지 내 감정의 파도는 항상 느릿하게 몰려왔다.


그날도 그랬다.

같이 협업해야 하는 일이었고 상대는 처음 맡는 일이었다.

나는 익숙했고 잘 할 수 있는 있었다.

그래서 처음엔 당연히 '내가 조금 더 해야지' 하고 시작했다.


그런데 일이라는 건 결국 쌓이기 마련이다.

내가 대신해준 일이 한두 개가 아니었고

그 사람은 실수를 해도 당황하지 않았다.

미안한 기색도 크지 않았다.

오히려 자꾸만 자기 입장을 설명하려 했다.

"제가 원래 이런 쪽은 잘 몰라서요."

"사실 저 이런 식으로는 안 해봐서요."


그 순간, 내 안에 있던 감정의 뚜껑이 열렸다.

분노는 말없이 찾아오지 않았다.

그날은 정말 해일처럼 나를 덮쳤다.


화가 나는 걸 넘어서

이 상황이 너무 억울하고

왜 나만 참고 있어야 하나, 왜 나만 책임져야 하나,

왜 저 사람은 당연하게 그 자리에 앉아 있나.

그 모든 감정이 한꺼번에 올라와 나를 흔들어댔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침묵 속에서 이를 꽉 깨물었고

말 한마디라도 하면 터질것 같은 상태로

그 하루를 견뎠다.


분노가 지나가고 나면 후회가 올 줄 알았는데

그날은 오히려 속이 쓰렸다.

내가 이 정도로 감정이 무너질 만큼 지쳐 있었구나

는 생각이 더 컸다.



요즘 나는 감정을 미리 살핀다.

이게 또 해일처럼 몰려오기 전에

물결이 조금이라도 일렁일 때

나 자신을 돌아본다.


그리고 그 물결 속에서

"나 너무 참았다"는 나를 꺼내 안아준다.


이해는 늘 좋은 미덕이지만

내가 무너지고 나서야 비로소 멈추는 이해는

너무 늦은 감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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