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Collage 10화

모든 것, 모든 곳, 한꺼번에.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감상평

by HONG

나는 사실 모녀관계가 중심에 있는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사실 가족에 관련된 모든 서사를 의식적으로 멀리했다.

내게 있어서 가족이라는 존재는 영화 속 '베이글'에 가깝다.

'엄마'라는 모든것을 나의 어떤 베이글 위에 올려놓았고, 그 다음엔 '아빠' 더 나아가서 '가족'까지

모든 것이 의미 없다고 결국 그 모든 사랑은 학습된 허상이라며 나만의 블랙홀을 만들었다.

어떤 날엔 그 블랙홀이 나를 한줌의 먼지도 남지 않게 삼켜버리곤 했고,

어떤 날에는 블랙홀에서 빠져나와 나의 '에브리띵 베이글'을 집어먹으며 허무함을 곱씹었다.

수십억개의 우주속에서 여전히 나에게 공백으로 남아있는 어떤 선 위에 모든 사건과 사람을 무의미하게 줄세우기를 해보다, 조부 투바키가 말한 것 처럼, '우리를 더욱 허접쓰레기로 만들 발견'을 반복하며 살아온 기억이 있다.

내 자신 혹은 누군가에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수억개의 선택들을 가만히 누워서 생각해본다.

하나의 결론이 떠오른다.


"다 부질없는거면, 아무것도 이뤄내지 못한 괴로움과 죄책감이...
사라지잖아. 빨려 들어갔네 모두 베이글 속으로"


허무주의는 전염된다. 이젠 서로의 이마에 원이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하며 모든 행동과 선택을 깎아내리기 바쁘다.

어서 베이글 위로 너의 모든것을 올려놓으라 종용한다. 그리고 영화는 말한다.


내가 유일하게 아는 건 다정해야 한다는거야.


극 중 후반에 웨이먼드는 모두에게 외친다.

"다들 혼란스럽고 무서워서 싸우려는 건 이해하지만,
나도 하루 종일 무슨 일이 일어나는건지 모르겠다...(중략)
지금 상황에서 내가 아는건 친절해지는 것뿐이다.
특히나 혼란스러울땐 친절함을 보여달라"


갈등과 혼란의 이유는 어쩌면 '정답'이 없어서 생긴다.

근본적으로 '정답'은 없기때문에 해결할 수 도 없다.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갈등과 혼란, 그리고 두려움을 동반한다.

이 모든 것이 결국 서로를 공격하는 것으로 해결하고 싶어한다.

결국 그럼에도, 그들에게 맞서 '다정함'이라는 투쟁이 어쩌면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을 이 영화는 보여준다.

에블린은 계속해서 '조부 투바키'와 '조이'를 다른 존재라고 인식하고 행동했다.

세탁소에서 조이를 가르키며 "너 거기 있는거 다 알아"라고 말하며 다그치기도 했다.

그리고 그 장소에서 똑같이 에블린의 아버지는 에블린에게 "넌 내 딸이 아니야"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인 에블린은 더이상 자신을 자랑스러워하지 않아도 된다며 아버지에게 말한다.


"그런데 제 딸은 고집불통에 우왕자왕하고 엉망이에요. 엄마랑 똑같이.
이제야 깨닫지만 엉망이라도 괜찮아요. 얘도 저처럼...
그 부족함을 메워줄 다정하고 인내심 많고 너그러운 사람을 우주가 보내줄 테니까.
아버지, 얘는 벡키예요. 조이의 여자친구."


이 영화를 보고 난 뒤, 나는 나의 블랙홀을 똑바로 마주할 용기가 생겼다.

내가 누군가의 '엄마'가 된다면, 또 친구나 다른 사람에게 '가족'같은 존재가 된다면

나는 그 한 줌의 시간을 소중히 여길 수 있는 준비를 해야겠다.

그래서 나의 공백을 다정함으로 가득 메꾸고 누군가에게 나눠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완벽하지 않아도, 다정할 수는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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