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서 음식은 먹거리를 넘어 그 나라의 문화나 정체성을 엿볼 수 있는 창입니다. 코펜하겐은 이러한 측면에서 미식가들에게 매력적인 여행지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지난 20여 년 동안, 이 도시는 전통과 현지 식재료에 대한 깊은 존경, 그리고 대담한 혁신을 더해 세계적인 미식의 중심지로 발전해왔습니다. 오늘날 코펜하겐은 전 세계 여행객들에게 맛있는 경험을 선사할 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와 지속 가능성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 도시의 음식 문화는 창의성과 사람, 그리고 환경에 대한 강한 책임감 속에서 전통과 혁신을 조화롭게 아우르고 있습니다.
덴마크의 음식 문화에 큰 변화를 가져온 것은 2000년 뉴 노르딕 운동(New Nordic Cuisine)입니다. 뉴 노르딕 철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클라우스 마이어(Claus Meyer)는 덴마크 요리의 정체성을 되살리기 위해 지역성, 지속가능성, 그리고 재료의 순수성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이러한 철학은 노르딕 요리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2004년, 코펜하겐에 모인 마이어와 13명의 셰프들은 '순수성, 신선함, 단순함, 윤리' 등 10가지 원칙을 담은 뉴 노르딕 키친 선언서(The Nordic Kitchen Manifesto)를 발표합니다. 이 선언서는 셰프들이 현지 재료를 사용하고 자연과 다시 연결되며 노르딕 전통을 새로운 방식으로 기념할 것을 강조합니다. 선언문에서는 노르딕 셰프인 우리는 이제 훌륭한 맛과 독특한 개성을 지닌 뉴 노르딕 키친을 만들어 세계 최고의 요리와 당당히 견줄 수 있는 때가 왔다 밝히고 있습니다. 이 선언은 뉴 노르딕 요리의 대중화를 이끄는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뉴 노르딕 요리의 대중화 중심에는 레스토랑 노마(Noma)가 있습니다. 클라우스 마이어와 셰프 레네 레제피(Rene Redzepi)가 공동 창립한 이 레스토랑은 뉴 노르딕 원칙을 구현하며 뉴 노르딕 요리를 세계적으로 알리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노마는 현지의 식재료와 제철 메뉴를 새롭게 해석하여 파인 다이닝을 재정의하고 'World' Best Restaurant'에 5번이나 선정되는 등 수많은 찬사를 받았습니다. 노마의 성공은 뉴 노르딕 요리를 세계적인 미식 트렌드로 변화시켰고 스칸디나비아를 넘어 여러 나라의 셰프와 레스토랑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한때 덴마크의 음식 문화는 오픈 샌드위치, 핫도그, 독한 술로만 알려졌습니다. 과거의 코펜하겐 음식은 유럽 전역으로 수출되던 저렴한 가공 돼지고기가 주를 이루었고 음식 평론가 안드레아 페트리니(Andrea Petrini)는 코펜하겐 도심에서 형편없는 프랑스나 이탈리아 요리 외에 진정한 덴마크 음식 문화를 찾아보기 어려웠다고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코펜하겐은 뉴 노르딕 운동의 원칙이 꽃피고 발전한 혁신적인 미식의 중심지로 거듭났습니다. 처음에는 지역과 계절, 지속 가능성에 중점을 두었던 뉴 노르딕은 현재 식물성 요리, 유기농 재료, 내추럴 와인, 사워도우 베이킹과 같은 다양한 접근 방식을 포용하며 성장해 왔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미니멀한 인테리어, 오픈 키친, 공용 테이블 같은 요소가 코펜하겐 레스토랑의 공통된 특징으로 자리 잡으며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식사 경험을 가능하게 하고 있습니다. 뉴 노르딕 요리 철학은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은 물론, 일상적인 카페와 빵집, 채식 기반의 버거 가게, 그리고 활기 넘치는 시장까지 폭 넓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심지어 덴마크의 대표적인 길거리 음식인 핫도그 가판대까지 그 여파가 미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지속가능성의 개념은 현지 농산물을 사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고 지속 가능한 선택을 ‘더 맛있고 쉽게’ 즐길 수 있도록 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급격한 변화가 있었지만, 덴마크 사람들은 여전히 그들의 뿌리를 잊지 않고 있습니다. 훈제 순록고기, 주니퍼 소스, 산자나무 디저트와 같은 뉴 노르딕 요리가 인기 있지만 여전히 덴마크의 전통 요리인 돼지고기 로스트 플레스케스텍(flæskesteg), 튀긴 돼지고기 스텍트 플레스크(stegt flæsk), 절인 붉은 양배추 뢰드콜(rødkål), 덴마크 미트볼 프리카델레(frikadeller), 라이스 푸딩 리센그로(risengrød), 그리고 오픈 샌드위치 스뫼레브뢰드(smørrebrød)는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요리입니다.
이렇게 이 도시의 미식 풍경은 전통과 미래 지향적인 아이디어를 완벽하게 결합하여 전 세계에 울림을 주는 역동적인 음식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현재 코펜하겐은 26개의 미쉐린 스타와 7개의 미쉐린 그린 스타를 보유한 세계적인 미식 중심지로 자리 잡았습니다. 코펜하겐의 미식 혁신은 덴마크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면서도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