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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아리 Jul 02. 2024

점심시간 좀 그만 왔으면 좋겠어

직장인에게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시간은 언제일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점심시간을 떠올릴 것이다. 해가 뜨기도 전에 출근해서 해가 지고서야 퇴근하는 근무 시간 동안에 유일하게 공식적으로 쉬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답답한 사무실에서 벗어나 맞이하는 바깥 공기는 너무도 상쾌하다. 그래서인지 많은 직장인이 출근과 동시에 점심 메뉴를 고민한다.



[ 식사 전 ]

달콤해야 할 점심시간은 나에게 씁쓸하기만 하다. 12시만 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점심시간이 두렵다. 음식에 제약이 많은 나에게는 메뉴를 고르는 일부터가 고통이다. 혼자 도시락을 싸서 다닐지 생각해 봤지만, 동료들과 술자리도 가지지 않는 나로서는, 점심시간만큼은 함께 보내야 했다.


점심 메뉴를 고민하는 직원들 입에 짜장면, 닭볶음탕, 마라탕, 햄버거 등 이름만 들어도 군침이 도는 메뉴들이 오르내린다. 내가 먹는 메뉴는 항상 정해져 있다. 컨디션이 괜찮으면 국밥을 먹으러 가고, 속이 안 좋으면 회사 앞 김밥집에서 비빔밥을 포장해 온다. 처음엔 사장님께 비빔밥에 고추장 빼고 달라고 했는데, 그러면 무슨 맛으로 먹냐는 사장님 말씀에, 그냥 받아 와서 내가 빼고 먹는다. 아무것도 모르는 동료들은 나를 약 올릴 때면 “나는 김밥집 갈게, 너네끼리 먹으러 가.”하며 내 성대모사를 한다.


그러면서도 꿋꿋하게 한식을 외치는 내가 안쓰러워서였을까, 감사하게도 직원들은 내 선택을 많이 존중해 줬다. 그래도 괜히 머쓱한 나는 “건강하게 먹으면 다들 좋아…”라며 소심하게 덧붙였다. 대신 어쩌다 점심에 외부 일정이 있는 날이면 ‘오늘은 나 없는 날이니까 자극적인 거 먹고 와. 내일이면 다시 건강한 음식 먹어야 하니까!’하고 선심 쓰듯 말했다.


그래도 나만의 비밀 노하우가 있다. 여름엔 더우니까, 겨울엔 추우니까- 하는 핑계를 대며 배달을 유도하는 것이다. 눈이 오면 눈 오니까, 비가 오면 비 오니까- 하는 핑계도 댔다. 눈비가 오면 배달이 늦어진다는 건 나도 알고 너도 알지만, 동료들은 그냥 속아 주었다.



[ 식사 중 ]

배달을 시키지 않더라도, 큰 건물에 있는 식당을 가는 거라면 그나마 나은데, 건물 밖에 화장실이 있는 식당에 가면 식사 시간 내내 신경이 쓰인다. 한 숟갈, 한 숟갈 입에 음식을 넣을 때마다 장 컨디션을 체크한다. 조금이라도 많이 먹었다가는 배에서 바로 신호를 줄까 봐 최대한 천천히 조금씩 먹는다.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다가 남들보다 빨리 식사를 마친다. 사람들은 ‘벌써 다 먹은 거야?’, ‘쟤는 말랐어도 저렇게 조금 먹는데, 나는 이래서 살을 언제 빼냐~’ 하며 부러워한다.


그날도 점심시간이 되자 동료들이 “너 또 순한 거 먹자고 할 거지? 네가 먹자는 거 먹을 테니까 얼른 메뉴 정해.”라며 농담인 척 배려를 건넸다. 오후에 출장이 예정되어 있어서 굶을까 했지만, 동료들의 말이 고마워서 근처에서 덮밥을 먹자고 했다. 불안한 마음에 계속 고민했지만 웃고 떠들다 보니 어느새 식당에 도착했고, 얼떨결에 메뉴를 주문했다. 밥을 어찌저찌 먹는다 해도, 뒷일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수다 떠는 동료들 몰래 카운터로 향했다.


“아직 주문 안 들어갔으면 취소해도 되나요?”

그리고 자리에 돌아와서 머쓱하게 웃고 있다가 동료와 눈이 마주쳤다.

“무슨 할 말 있어?”

“미안한데 밥 안 먹고 싶어져서 너네끼리 먹어, 헤헤.”

“아 뭔데~ 네가 덮밥 먹자며어어어!”

예상한 반응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자리에 나 대신 머쓱함을 두고, 어이없어하는 시선을 뒤로 한 채 등을 방패 삼아 회사로 돌아왔다.


또 어떤 날은 몸이 안 좋아서 밥을 안 먹겠다는 나를 위해 동료들은 곰탕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지도를 보며 망설이고 있는 나를 향해 동료는 “6분밖에 안 걸리는데 멀어?”라며 순수한 물음을 던졌다. 그 앞에서 차마 화장실이 없으면 30초도 불안하다는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민망하기도 하고, 동료의 마음이 고마워서 밥을 먹으러 갔다.


식당에 도착해서 재빠르게 화장실을 스캔했다. 큰 규모에 비해 화장실은 가게 안에 딱 하나뿐이었다. 남녀공용, 그리고 우리가 먹는 자리 바로 앞. 화장실이 멀어서, 혹은 줄이 길어서 늦었다는 핑계도 대기 어려워 보였다.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화장실을 들를지 말지 고민하는 사이, 동료들이 식사를 마치고 일어나자고 했다. 불안했던 나는 속이 안 좋아서 좀만 앉아 있다 갈 테니 먼저들 가라고 했다. 다행히 식당에 손님이 없어서 사장님께 양해를 구하고 6인석에 혼자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 자리를 비워 둔 채 화장실을 가도 될지 고민하고 있으니, 혼자 있는데도 가슴이 막히고 속이 쓰렸다. 용기 내서 간 화장실은 잠금장치가 허술해서 세게 당기기만 해도 열릴 것 같았다. 이러나저러나 불안해서, 결국 그냥 사무실을 가기로 했다.



[ 식사 후 ]

식사를 하는 것도 문제지만, 식사를 다 마치고 나서도 문제는 발생한다. 밥 먹다 말고 화장실에 간다고 하는 건 수치스럽지만, 밥을 다 먹고 화장실에 간다고 하는 것도 난감하다. 특히 둘이 먹을 때면 상대에게 계산하라고 하는 것처럼 보이거나, 내가 계산하러 갔다 오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식사를 마치고 장소를 옮기기 전 화장실을 들렀는데, 그 사이에 친구가 결제해 놓은 적도 있었다. 내가 결제를 떠넘겼다고 오해한 듯했지만, “내가 배가 아파서” 어쩌고 하면서 해명을 하기엔 너무 구질구질해서 그냥 커피를 사는 걸로 마무리했다.


회사는 야속하게도 점심시간을 1시간 반이나 준다. 넉넉한 시간만큼이나 사람들의 마음도 여유롭다. 밥을 먹으면 바로 장운동이 시작해서 내딛는 걸음걸음이 아슬아슬한데, 동료들은 배가 부르니 산책 좀 하자며, 느릿느릿 걷는다. 밥 먹고 카페를 들르는 건 필수다. 예쁜 카페들은 야속하게도 죄다 작고 아담하다. 속이 안 좋은 탓에 카페인, 아이스, 탄산, 과일, 우유 등을 모두 제외하고 나면, 먹을 수 있는 거라곤 따듯한 캐모마일뿐이다. 저렴하기라도 하면 괜찮은데, 티백 담근 물 주제에 비싸기까지 하다. 그냥 사무실에 가겠다고 하면 사람들은 운동 좀 하라며 타박한다. 어휴, 똥쟁이가 되느니 차라리 게으름뱅이 소리를 듣고 말지.




동료들의 배려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 배려에 의해 차마 거부할 수는 없게 된 불편한 경험들이 쌓이고 나니, 밝고 에너지 넘치던 시절의 나를 잃어버린 것 같았다. 아무 걱정 없이 웃고 다닐 때도 있었는데, 아픈 뒤로 항상 긴장한 채로 예민해 있었다. 바지에 안 싼 것만으로도 잘했다며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싶지만 그러기엔 너무 지쳐버렸다.




Note.

나름대로 식당을 고르는 팁이 있다. 식당을 찾는 게임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급똥을 참을 수 있는 시간을 최대 3분 정도로 잡으면 거리로는 200m쯤 된다. 신호등이 있다면 거리는 더 줄어든다. 게임을 세이브하듯이, 중간에 화장실이 보장된 카페나 건물이 있으면 그 지점부터 다시 200m를 센다. 화장실이 한 칸뿐이거나, 키를 들고 가야 하는 화장실은 다른 사람이 쓰고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계산하지 않는다. 바로 뛰어 들어갈 수 있도록 오픈된 화장실에 칸이 여러 개인 경우에만 세이브를 찍는다. 거기에 자극적인 메뉴만 파는 식당은 제외하고, 화장실이 너무 먼 식당을 제외하면 갈 수 있는 식당이 몇 개 없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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