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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아리 Jun 28. 2024

출장이 왜 이렇게 많은 거야

끝이 안 보이는 고통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결국 인사이동을 신청했고, 새로운 팀으로 발령받았다. 감사하게도 새로운 팀의 동료들은 정말 좋았는데, 출장이 매우 잦았다!



Episode 1

출장 가는 날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마음이 오르락내리락한다. (이 글에서는 △▽로 표시했다.)


그날도 출장 갈 생각에 며칠 전부터 걱정하고 있었다. 동료들과 아침에 회사에서 만나서 같이 출발하기로 했다. 출발하기로 한 시간이 다 됐는데, 동료들이 잠깐만, 잠깐만 하면서 출발할 생각을 않는다. 나름대로 최적의 컨디션을 세팅해 놓고 기다리고 있는데 계획에서 조금씩 멀어질수록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 ▽


지금이라도 출장을 못 간다고 할지 심각하게 고민했는데, 막상 출발하니 잠잠해졌다. 다행히도 호텔에서의 일정이라 곳곳이 넓고 쾌적한 화장실로 가득해서 마음이 놓인다. △


현장에 도착해서 미리 점심을 먹기로 했다. 호텔 안에만 있을 줄 알았는데, 마땅히 식사할 곳이 없다며 밖으로 나가자고 한다. 계획에 없던 이동이라 다시 불안해진다. ▽


감사하게도 바로 옆에 있는 백화점 푸드코트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화장실 넉넉한 백화점이 바로 앞에 있었다니. 완전 럭키잖아? △


밥을 먹고 행사장으로 돌아왔다. 나는 등록 데스크에서 입장을 확인하는 역할을 맡았다. 혼자 등록 데스크를 지켜야 해서 자리를 비울 수가 없다. 행사가 시작되어 발길은 줄었는데, 하필 내가 화장실 간 사이에 손님이 오면, 내내 자리를 비우고 있었다고 오해할까 봐 화장실을 갈 수가 없었다. ▽


별 탈 없이 행사가 끝났다. 저녁은 호텔 내에 있는 뷔페에서 먹기로 했다. 동료가 룸으로 예약했는데 소통에 문제가 있었는지 홀에 앉아야 한다고 했다. 그것도 화장실 바로 앞. 동료는 실수에 자책하는 듯했지만 나는 오히려 좋았다. △


맛있는 음식이 가득했지만, 집에 갈 걱정에 많이 먹지 못했다. 밥 먹자마자 이동하고 싶지 않았지만, 동료들이 빨리 집 가서 쉬고 싶대서 나도 바로 집에 가기로 했다. 그나마 밤이라 빨리 집에 도착하겠거니 했는데 차가 너무 막힌다. 하필 음주 측정 중이다. 노래라도 듣고 싶은데 핸드폰 배터리도 없다. 젠장. ▽


남들이 보기에는 호텔 뷔페 먹는 부러운 출장이겠지만, 그 하루에도 나는 수시로 안도하고 괴롭기를 반복해야 했다. 정말이지 지랄맞기 짝이 없다.



Episode 2

원래 출장이 이렇게 많았나? 아니면 몸이 안 좋아서 많게 느껴지는 건가? 팀원들은 2주에 한 번꼴로 출장을 갔다. 내가 출장에 빠지는 날에는 팀원들이 “도와주러 안 오냐~ 서운하다.”라며 진심인지 농담인지 모를 말을 건넸고, 그럴 때마다 마음이 무거웠다.


그래도 한 달에 한 번은 동행했는데, 출장 가는 날이면 고민이 가득했다.

점심을 먹고 출발할까, 아니면 아침만 먹고 도착해서 점심을 먹을까? 사무실에서 동료들과 같이 이동할까, 아니면 집에서 혼자 바로 갈까? 지하철을 탈까, 아니면 택시를 탈까?

온갖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가면, 도착했을 때는 힘이 하나도 없다. 몸이 안 좋은데도, 농땡이 피운다느니, ‘아침에 사무실에선 멀쩡하더니 여기 오니까 갑자기 아픈 척 한다’라느니 할까 봐서 꾸역꾸역 일했다. (물론 팀원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냥 혼자 마음이 불편했다.)


어느 날은 새로운 미션이 추가되었다. 바로, 옆 팀 인턴들 데리고 다녀오기! 다른 동료들은 먼저 출발하고, 나는 후발대로 인턴들을 데리고 행사장으로 가기로 했다. 짐을 챙겨서 회사 로비에 모였다. 행사장까지는 택시로 1시간 정도 걸리는데, 병아리 같은 인턴들과 이동하다가 중간에 배가 아파서 내린다고 하기에는 너무 수치스러울 것 같았다. 결국 인턴들에게 따로 택시를 태워 보내 줄 테니 먼저 가라고 했다. 동료에게 연락해서 인턴만 먼저 보내겠다고 하고, 인턴에게는 동료 번호를 주며 도착하면 여기로 전화하라고 했다. 택시를 부르고 기사님께 인턴들의 위치를 전달하며 픽업해 달라고 했다. 여러모로 피곤했다. 곧바로 택시를 한 대 더 불러서 탔다. 그리고 택시에 타자마자 바로 잠들었다.




Note.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나만의 출장 루틴을 만들었다.   

전날부터 식사를 조절하고, 오후 출장이라면 점심 거르기

중간에 내려서 화장실 들를 시간까지 계산해서 소요 시간보다 일찍 출발하기

출발 직전에 화장실에 들러서 장 상태 점검하기

이동 시간이 길다면 미리 지사제 먹기

동료들과 같이 이동하는 게 불편한 날에는 차멀미 핑계를 대며 혼자 대중교통 이용하기

이동 수단에 탑승하면 배에 핫팩을 올린 채 눈 감고 있기

이런 루틴을 다 지키다 보면 이동하는 것만으로도 기진맥진해진다.


@Roger Victor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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