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생각 - 큰 파장
사람 사이의 오해는 사소한 가정(assumption)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연인이 일로 바쁘다 보니 연락이 뜸해질 때, 종종 "사랑이 식은 건가?"라는 생각에 사로잡힐 수 있다. 또는 내가 직원에게 일을 맡겼는데, 자꾸 마감 시간을 넘기거나 피드백을 주지 않는 경우 “이 사람이 나를 무시하나?”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처음엔 그냥 넘기지만,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면서 작은 짜증들이 쌓여 결국 큰 불만을 터뜨리게 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러나 막상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다른 업무에 몰두하거나 단순히 의사소통 과정에서 놓친 부분이었을 뿐이란 걸 알게 되어 마음이 민망해질 때가 있다.
우리는 매일의 일상생활에서 다양한 assumption (가정과 추정)을 하며 살아간다. 가정은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완전하게 파악하지 못한 상황에서도 빠르게 판단하고 행동하도록 돕기 때문에, 이를 통해 효율적으로 시간을 관리하고 감정적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게 해 준다. 만약 우리가 매번 모든 것의 정확한 이유를 파악하려 한다면, 상황은 복잡해지고 일상생활의 속도와 여유도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가정은 양날의 검과 같아서, 잘못된 가정은 오히려 예상치 못한 문제를 만들어낸다.
때로는 친구가 전화에 답하지 않으면 '바쁘겠지'라거나, 동료가 대화 중에 눈을 피하면 '날 무시하나?'라는 생각을 갖게 될 수 있다. 단순히 "바쁘겠지"라는 가정이 "날 싫어하는 걸까?"로 변질되고, 감정의 오해로 이어지며, 결국 관계의 틈새를 넓힐 수 있다. 이처럼 assumption, 즉 가정은 우리 삶 속에서 순간순간 떠오르는 생각들이지만, 잘못된 가정은 복잡한 결과를 낳을 때가 많다. 마치 가벼운 바람이 거대한 파도를 일으킬 수 있는 것처럼, 작은 assumption 하나가 인간관계의 판도를 크게 흔들 수 있다.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상황을 우리 인간이 갖고 있는 자기 확증 편향(self-confirmation bias) 즉,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념이나 의견에 부합하는 정보는 쉽게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은 정보는 무시하거나 회피하려는 인지적 경향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 편향은 사람들이 자신의 기존 신념을 강화하고 유지하기 위해 선택적으로 정보를 처리하게 하며, 이로 인해 객관적인 판단이 어려워지게 하는 성향이다.
잘못된 가정을 만들어내는 또다른 요소는 과거의 경험이나 감정적인 상처이다. 예전에 누군가에게 실망했던 경험이 있다면, 그와 비슷한 상황이 올 때 과거의 기억이 지금의 상황에 덧입혀진다. 가령, 실연의 경험이 있는 사람은 연인이 조금만 달라 보여도 "또 상처받을 것 같아"라는 가정이 떠오른다. 무의식적으로 과거의 아픔이 현재의 상황을 왜곡시키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따라서 누군가가 의도하지 않은 행동에 내가 가정한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그 사람과 내 생각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하나 더 생기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쉽게 어떤 상황에 의미를 부여하고 자신의 경험이나 감정으로 해석해 버린다. 이런 가정이 쌓이고 쌓이면 결국 현실과는 거리가 먼 '자기만의 진실'이 되고, 우리는 그 진실 안에서 허우적거리게 된다. 남이 내 생각을 읽고 내 마음을 다 이해해 주길 바라면서, 정작 우리는 타인의 의도를 증명 없이 판단해 버리는 셈이다. 위의 상황에서 친구의 무관심으로 보였던 행동이 실은 그 친구가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어서일 수도 있고, 동료의 무표정한 태도가 실은 고민에 빠져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인간관계는 과학의 영역과는 다른 복잡함과 미묘함이 얽혀있다. 우리가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내는 가까운 가족이나 급우들 또는 동료들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사실 이 모든 오해는 결국 소통 부족과 잘못된 가정에서 비롯된 결과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과 추정 대신 솔직한 대화와 관찰을 선택하는 것만이 오해를 줄이고 진정한 이해로 가는 유일한 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진정한 인간관계를 위해서는 상대의 이야기를 가정이나 선입견 없이 경청하고,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또한, 상대의 상황을 존중하며 더 넓은 관점에서 바라보는 습관을 기르는 것도 중요하다.
다음번에 어떤 가정을 하려 할 때, 그것이 가져올 무게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그 작은 assumption이 우리에게 미치는 무게는 가벼워 보일지라도, 그것이 쌓였을 때의 결과는 예상치 못한 무거움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