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
우리는 종종 낭만이 사라진 시대에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바쁜 일상과 물질적 성취가 삶의 우선순위를 차지하면서, 그 속에 숨겨진 따뜻한 정과 낭만은 잊혀진 듯하다. 하지만 그 낭만이 정말 사라진 것일까? 아니면 우리가 그것을 바라볼 여유와 마음의 창을 닫아버린 것일까?
사실 낭만이라는 것은 특별하거나 거창한 순간이 아니다. 일상 속에서 우리의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일 때 비로소 드러나는 여유로운 감정이다. 아침에 뜨는 해를 바라보거나, 한 잔의 커피를 음미하며 잠시 머무는 순간처럼, 빠르게 흐르는 시간 속에서도 마음을 잠깐 내려놓을 때 우리는 그 순간에 스며든 낭만을 느낄 수 있다. 한때 우리는 그 마음의 여유를 사람들 사이에서 주고받기도 했었다. 같은 동네 사람들과 따뜻한 인사를 나누고, 손님이 오면 차 한 잔을 건네며 삶을 공유했다. 그 사소한 순간들 속에서 우리는 사람 사이의 정과 따뜻함, 그리고 낭만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더 안정적이고 확실한 삶을 추구하면서 점점 눈에 보이는 것들에 더 집착하며 살아가고 있다. 안정된 직장, 편안한 집, 멋진 차, 값비싼 물건들이 우리의 삶에 행복과 안정감을 줄 거라 믿고 있지만 어느 시점에서 우리는 이런 물질적 소유는 잠시 동안의 기쁨만을 줄 뿐, 마음속 깊은 곳을 채우지는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물질이 줄 수 있는 행복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새로 산 고가의 물건이나 눈에 띄는 외적 성취는 처음에는 설렘과 기쁨을 주지만, 그 만족감은 시간이 지나면서 빠르게 사라지곤 한다. 새 차를 구매한 날의 설렘이나 좋은 집으로 이사했을 때 느끼는 안락함은 한동안 삶을 편안하게 해 줄 수 있지만, 시간이 흐르면 그 가치는 익숙함 속에 무뎌지고 우리의 행복을 지속적으로 충족시키지는 못한다.
이와 달리 마음이 주는 행복에는 한계가 없다. 한적한 산책로에서 마주한 노을, 사랑하는 사람과 나누는 진솔한 대화,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처럼 사소한 순간들은 우리에게 설명할 수 없는 깊은 기쁨을 선사한다. 마음이 주는 행복은 우리 삶의 순간순간을 채우며 그로 인해 생기는 여운은 오랫동안 우리의 삶에 깊은 의미와 기쁨을 남기게 된다.
물질로는 환산할 수 없는 이러한 경험들은 마음의 갈증을 해소해 주는 진정한 힘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깊은 만족감은 결국 우리 내면에 자리한 마음의 여유에서 비롯된다.
진정한 행복은 마음속 깊이 숨 쉬고 있다. 낭만은 멀리 있지도, 크고 대단한 것도 아니다. 한가로운 오후에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며 느끼는 편안함,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걸으며 나누는 소소한 대화 속에서 느껴지는 온기, 그리고 나 자신에게 주어진 작은 여유를 감사하는 마음, 이 모든 것이 낭만이다. 우리의 마음속에는 이미 수많은 낭만의 씨앗들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을 알고 있지만 우리는 그것을 일깨울 시간과 여유를 찾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을지도 모른다.
바쁘게 흘러가는 생활 속에서 우리는 마음의 여유를 자주 잃곤 한다. 시간은 종종 우리의 등을 떠밀고, 무심코 지나쳐 버린 작은 감정들을 기억 속으로 묻어버리곤 한다. 하지만 잠시 멈추어 서서 나의 주변을 정성스럽게 돌아보면, 늘 지나쳤던 풍경과 사람들이 마음에 새롭게 다가올 것이다. 그것은 물질이나 성과와는 무관하게, 우리 내면의 여유로움이 저절로 살아나는 것이기에 더 소중하게 다가온다.
우리가 마음을 따라가는 길이 비록 더딜지라도, 그 길 끝에는 조금 더 따뜻하고, 조금 더 풍요로운 기쁨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