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여행 D+1
카풀해주는 친구 B를 기다리며 커피를 샀다. 꾸준히 영어공부를 해왔지만,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아이스가 Ice가 아닌 Iced라는 건 주문하면서 알았다. 메가커피의 키오스크가 몹시 그리웠다.
컵 홀더도 Holder가 아닌 Sleeve, 다른 게 참 많다. 그래도, 맥락적 이해를 서로 하다 보니 소통에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B와 함께 뉴헤이븐 한인 교회로 이동했다. 가는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며 친분을 쌓았다. 친구의 친구를 만나는 건 늘 새롭고 떨리는 일이다.
한인 교회에 도착해 친구의 친구들도 소개받았다. 예배를 마친 뒤에는 다 같이 점심을 먹었다. 이방인들을 반겨주시는 분위기가 무척 인상 깊었다.
포교의 말씀도 하셨지만, 장기간 머무르는 경우 마음 붙일 곳으로 교회를 찾아도 된다는 말씀도 해주셨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종교를 갖는 것도 괜찮겠다 생각이 들 정도(?)로 편안했다.
점심은 우뭇가사리로 된 묵밥을 주셨다. 무료함을 달래려 일상을 나누다, 아침에 다녀온 동네에 대해 얘기하니 다들 친구 Y와 표정이 같아졌다.
다시 한번 안전에 대한 당부를 들었고, 앞으로의 여행에 대한 조언들을 해주었다. 첫 주차 평일에 머무를 뉴욕에서 가보면 좋은 곳들을 잔뜩 추천받았는데, 일정에 맞으면 가봐야지.
특별했던 부분으로, 한국어 예배와 영어 예배를 동시에 진행하고 각각의 담임 목사님이 별도로 계셨다. 미국에서 나고 자란 2세, 3세들을 위해 진행된다는 부연설명을 들으니 더욱 따뜻하게 느껴졌다.
미국에 머무르는 동안 교회는 매주 들렀고, 마지막 주차에는 Six Flags라는 놀이공원에 다 같이 놀러 가기로 했다.
교회에서 담소를 나누다, 시내로 나와 빙수를 먹었다. 차가 있는 B 덕분에 편하게 이동했다. 일전에 차창이 부서졌던 도난 사고가 일어나기도 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는데, 더더욱 차를 운용하는 게 대단하게 느껴졌다.
이후 각자의 일정으로 자리를 떴다. 나는 캠퍼스 투어의 시작으로 예일대학교 부설 미술관을 관람했다. 무료로 입장이 가능했는데, 미술관 안에는 예일대 학생들과 가족들이 감상하고 있었다.
노출 콘크리트로 건축한 이 건물은, 루이스 칸이라는 건축 대가의 손을 거쳤다고 한다.
유명한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들, 크고 웅장하면서 관리 상태도 훌륭한 작품들이 흐드러지게 많아 눈이 돌아갔다. 대학교 미술관이 이 정도라면, 뉴욕에서 가게 될 미술관들은 얼마나 더 장관이 펼쳐질까?
옥상층에 다다르니, 유리로 된 천장에서 내리쬐는 햇빛이 작품과 어우러졌다. 작품들도 12시 방향에는 하늘이 그려진 작품들을 배치해, 실제로 작품에 햇빛이 생생하게 표현되는 듯 보였다.
자연광은 형광등에겐 없는 자연친화적 분위기를 한껏 더했다. 아마, 작품을 감상하는 시간에 따라서도 차이를 주는 포인트가 아닐까?
이후에 예일대 기념품 가게에 들렀다. 친구가 이것저것 추천을 해주었고, 나도 관심 있게 들여다보았지만 그다지 매력적인 제품들이 보이지 않았다. 돈 걱정을 하나 걱정해 주길래, 내게 가치 있는 물건이 없다고 답했다.
기념품보단, 친구 Y와 나 모두 좋아하는 서점에서 눈이 반짝였다. 비인기 서적이겠지만, 1달러에 고서적을 구할 수 있는 서점은, 오래된 종이의 텁텁함마저 향긋하게 느껴졌다.
친구 덕분에 좋은 책을 선물 받았고 돌아가서 잘 읽어보리라 다짐했다. (사실 아직까지 읽을 책 순위에 밀려있다.)
물건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으로, 기념품에 크게 관심이 없는 편이고, 돌아가서도 그 사람들에게 내가 다시 돌려준다고 한들 기념품을 준다고 한들 그 사람들이 사용할까 싶기도 하다.
하물며 친구가 사주겠다고 까지 말했지만, 소유하는 걸 좋아하지 않고, 친구의 귀한 돈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물건의 용도를 옳게 사용할 주인이 나타나는 게 거국적으로 좋지 않을까.
캠퍼스 투어의 마지막으로 도서관에 방문했다. 탁 트인 개방감과 마치, 다른 세상에 온 듯한 황홀감. 이곳에서 죽을 때까지 책만 보더라도 좋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학교라는 느낌이 가득했다.
투어를 마친 후, 담소를 나누다 캠퍼스 밖 공원을 지나는데 찌린내와 매캐한 냄새가 앞을 막았다. 양 옆에 벤치는 노숙자들이 자리 잡았고 이곳이 같은 동네가 맞나 싶을 정도로 갑자기 음산한 뒷골목 같은 분위기에 사로잡혔다.
마을 주민들끼리 카니발 하는 공간을 지나쳤다. 그냥 지나쳤다. 서로 눈짓을 주며 이 공간을 벗어나자는 신호를 하며 친구의 숙소로 움직였다. 이곳에서 들은 안전 수칙 중 하나는, 사람이 많이 모인 곳은 사고가 나기 쉽다는 것이다.
게다가, 지내는 하루 남짓한 시간 동안 시차적응 문제인지 머리가 어지러웠다. 두개골이 지끈거리고 컨디션이 나빠졌는데, 특정한 골목을 지나면 증상이 해소되었다. 뒤늦게 알았는데, 향에 민감하다 보니 다른 사람이 피우는 대마초 냄새 때문인 듯했다.
지독한 냄새는 역겨웠고, 왜 저런 걸 돈 주고 할까 싶었다. 쑥 태우는 냄새라고들 하던데, 쑥이 아니라 쓰레기를 태우는 것 같았다.
궁시럼 대며 걷다 보니 멈춰 선 횡단보도에 동양인은 나와 친구뿐이었다. 주변은 온통 현지인들이었는데, 뒷골이 스산한 느낌이 들었다. 건장한 남성 2명이 돌아다니지만, 이곳은 총기가 합법인 미국. 더 조심해서 돌아다녀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
자신을 과시하며 큰 소리를 내거나 경적을 울리는 오토바이, 자동차를 지나 친구집 근처 피자집에 갔다. 샘플링 맥주와 피자를 먹었다. 특색이 정말 강했다.
알게 모르게 쌓여왔던 긴장감이 풀리고 혀 끝에 색다른 감각이 느껴지니 이제야 여행 왔다는 실감이 났다.
친구 말로는 이곳이 3대 피자집 중 하나라고 한다.
도우도 쫄깃하고 향신료도 훌륭했다. 고수를 먹지 않았는데, 특유의 향이 다른 향신료와 어우러져 장점은 더하고 단점은 상쇄되었다. 정말 맛있었다.
온 시점도 훌륭했다. 테라스부터 실내까지 탁 트여 에어컨이 없었는데, 선선한 가을 날씨였기에 덥지 않았다. 차도 근처라 조금 시끄러웠지만, 뭐 그 정도는 감안할 정도의 맛이었기에 괜찮았다.
훌륭한 식사를 마치고, 자리를 옮겨 좀 더 대화를 나누기 위해 친구 집 2층 응접실에 들렀다. 친구가 간직해 둔 와인을 가져왔고, 치즈를 먹으며 그간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친구가 보관해 둔 맛있는 와인과 함께 먹게 되었는데 치즈 한 조각을 먹음에도 불 먹으면서 이 와인을 즐기는데 이 순간 자체가 무척 무척 훌륭해 무척 무척 행복하고 훌륭하게 느껴졌다.
정말 좋았다. 그렇게 즐거운 대화와 즐거운 이제 과정을 겪으면서 내일이 조금 두렵게 느껴진다고 해야 될까?
지금 이 글을 적고 있는 오늘이 나에게는 셋째 날 입국하고 나서 셋째 날인데 이제 진짜 여행다운 여행, 여행스러운 여행, 혼자 돌아다녀야 되는 여행이 되었다.
정말 이역만리 멀리 있는 이 미국 땅에서 내가 혼자 잘 지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 못 지낼 건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고.
잘 지내면 되지. 그리고 일단 해보자. 나아가 보자. 그리고 위험한 덴 가지 말자. 밤늦게 돌아다니지 말자 뭐 그런 생각들을 했다.
숙소로 돌아오는 동안 어둑한 길을 건너는데 중간중간에 흑인 마약상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계속 뚫어져라 쳐다보는 경우도 있었다. 위험이 도처에 널려있었다.
풍경에서 느껴지는 빛들이 약간 내가 태어났을 당시에 느꼈던 듯한, 구석진 동네에서 느껴지는 빛깔이 보였다.
그렇게 둘째 날이 마무리되었다. 지나고 오늘의 느낀 점은 내가 느끼지 못하는 위험이 정말 많다는 점, 조심해야 된다는 점, 그리고 이곳에서 한국인을 만난다면 물론 이제 모두가 그런 건 아니겠지만 이곳에서 공부를 하고 있거나 이곳에서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따뜻할 거라는 조금 뭔가 그런 생각이 든다는 점.
그리고 로컬 음식 정말 맛있다. 꼭 왔다면 로컬 음식들을 많이 느껴보고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제 이제야 느껴보는 그런 맛들이라 새롭고 좋겠지만, 그리고 돌아갈 때쯤엔 어떤 생각을 할지 잘 모르겠지만 뭐 일단 좋다.
오늘은 모든 게 다 좋았고 내일도 좋을 것이다. 뉴욕으로 향할 내일이 얼마나 힘들지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저 침대로 깊이, 깊이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