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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론 Feb 11. 2024

남이었으면, 차라리

아버지에 대해

나의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다. 낮은 자존감과 의처증이 있었고 술에 취하면 어머니께 폭력을 일삼던 한량이다. 고등학교 2학년에 사춘기를 겪던 나에게는 폭력을 휘두르지 않았으나 어머니의 외출을 못마땅해하며 거실에서 취해있던 아버지에게 반기를 들었고 다툼이 있었다.


분에 못 이긴 아버지는 부엌에서 칼을 꺼내 들었고 걸어 잠근 방문에 벽장을 넘어트리고 숨죽여 울던 것이 나의 기억 일부이다. 충격으로 기억이 온전치 못하고, 기억하고 싶지도 않다.


아버지를 못 본 지 10년이 지나간다. 아쉽거나 잘못했다는 생각은 일절 들지 않는다. 10년이라는 시간은, 17년의 악몽을 씻어내기엔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다만, 시간이 흘러 지나가면 언젠가 후회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시의 나는 아버지에게 '당신이 나에게 무엇을 해주었는가' 물었다. 이 말은 그 사람의 인생에 대못을 박았다. 무의미한 한량에 불과했던 자신을 자각하는 순간에 그는 주먹을 휘두르며 도망쳤다. 정반대의 길을 걷기로 다짐하며 살아간다. 

이해할 수 없는 부류라는 건 오래전에 알고 있었다. 아버지라는 이유로 이해하려 했지만 용서되지 않았다. 지난 10년이라는 시간은, 나에겐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그런 아버지의 단점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잘못된 아버지로 살아가는 것과 어떤 인간이 가족과 단절된 상태로 살아갈 수밖에 없고 술과 담배에 의지하게 되는지를 배웠고 부족한 자존감을 가진 사람이 함부로 가족을 형성했을 때에 겪는 상황을 배웠다. 최악의 인간을 곁에 두었지만 그를 떨쳐내지 못했던 어머니도 이해되지 않았었다. 아직 아버지를, 그리고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하겠다.

7살의 난 '내가 암에 걸려 모든 것이 끝났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다. 다행히도 그 아이는 암에 걸리지 않았고 지금껏 잘 살고 있다. 가끔 술냄새와 함께 던져오던 연락을 모두 차단했었다. 그 풍기는 냄새가 저주스러웠고 두려웠다.


그날의 악몽이 뇌리를 스칠 때마다 나를 지키기 위해 도망쳤다. 그러다 얼마 전에 두려움을 떨쳐내기 위해 아버지에게 직면했다. 연락처를 찾아 전화를 걸고 잠시 동안의 대화를 마쳤다.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아들과 자랑할 추억이 게임 행사장에 갔던 것뿐인 나약한 인간을 마주했다. 나는 과연 무엇을 두려워하며 살아왔던 걸까.


내가 이날까지 살아가게 한 생물학적 아버지이지만 아닌 건 아니다. 아주 오래전 내 마음과 삶에서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부디 암에 걸려서라도 가정의 평화를 간절히 소망했던 일곱 살의 아들이 내 자식이라고 생각하면 난 삶을 이어가고 싶지 않다.


당시에 나는 내 고통으로라도, 우리 집이 평화로워지리라는 그릇된 생각을 했다. 이후에 흐릿한 기억 속에서 난 몇 해를 더, 문 뒤에서 보내야 했을까. 나의 어머니는 남편이라는 이유로 얼마나 더 많은 폭력 속에서 살아와야 했을까. 아비 없는 자식소리 듣지 않게 하기 위해 어머니는 견뎠고, 나는 그 아비 없는 자식이었으면 하는 아이러니 속에서 당신의 정반대 방향으로 달려왔다


나의 목표 중 하나는 멋진 아버지가 되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 하고 싶은 것을 지원해 주는 아버지가 되고 싶다. 나의 부족함을 핑계 삼아 사랑하는 사람에게 폭력을 쓴다면 즉시 팔다리가 다 잘려도 좋다.


그 정도로 폭력에 정당성을 부여하지 말아야 한다. 내가 겪어왔던 나쁜 기억들을 도려내고 좋은 것들만을 주더라도 아이들에게는 각자의 삶 속에서 악몽을 마주할 것이다. 다만, 나보다는 나은 삶을 전해주고 간다면 내가 살아가는 이유로써 충분하다.


콘서트홀에서 떠들다 혼나는 아이들에게, 문득 부러움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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