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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론 Feb 14. 2024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 있음에도 나아가야 하는 경우가 있다. 안 될 걸 알고 있음에도 그 길을 가야만 한다. 어쩔 수 없지만 해야 한다. 무식하게 보일 수도 있고, 그렇게 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거 없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래도 해야 한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무엇일까, 과연 나의 부모는 나를 사랑해서 낳은 것일까 사랑하다 보니 내가 어난 것일까 전자든 후자든 상관없다.


그런 것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내가 태어났으니 태어났다면 삶의 의미를 직접 찾아야 한다.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며, 무엇을 위해 살 것인지를 직접 생각해내야 한다.

이는 방구석에서 가만히 앉아 있다고 문득 떠오르는 그런 비상한 아이디어가 아니다.


경험해봐야 한다. 책도 좋고, 사회생활도 좋고, 일단 밖으로 나가 무엇이든 보고 듣고 느껴도 좋다. 다만 쾌락을 좇는 일만큼은 하지 말아야 한다. 쾌락의 끝은 항상 낭떠러지다.




본론으로 돌아와 우리가 왜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를 알게 된다면 우리는 삶의 목표와 목적, 의식을 가질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이 공정하다고 느낀다. 다들 비슷한 출발선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아니다.

누군가는 수많은 박수갈채와 혜택과 훈련을 받아가며 자라나지만, 누군가는 당장 밥을 뜰 숟가락조차 없어서 맨손으로 밥을 퍼먹거나 그 밥마저 누군가에게 구걸해야 할 수 있다.

우리는 공정한 사회에 살고 있지 않다. 그 공정은 공정함에 대한 정의를 내릴 수 있는 사람들에 의해 공정함이 다시 한번 재정리된다.

그리고 우리는 어쩔 수 없다는 말에 당도한다. 내가 어떻게 해도 달라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당장은, 이 당장은 이 매우 중요한데, 우린 언젠가 자리에 올라가게 된다. 좋든 싫든, 무능하건, 능력이 있건,


그때도 같은 생각을 갖고 있으면 그것은 정말로 어떻게 할 수 없는 게 된다. 그러기로 마음먹었다는 게 끝이 되면, 더 이상 발전은 없다.


이전에 살아왔던 사람들과 똑같은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바꿀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삶의 목적의식이다. 그것이 없는 사람들은 대부분 공허하거나 시간 낭비만 하다가 사라지게 된다.


죽거나, 아프거나, 남들 다 하는 거 따라 하려다가 본인이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타인에 의존하고 기대며 쓰러지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 살아간다. 자기 위로의 힘은 매우 강력하다. 그 공허한 삶을 목적의식 없이도 이어갈 수 있게끔 할 정도로.


우리는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한다.
무엇을 위해 살고 있나 그리고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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