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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론 Apr 16. 2024

두 번째 슬럼프

삶이 날카롭게 느껴졌다. 어느 기점을 넘긴 걸까. 회사에 들어오고 정신없이 보내던 날들 속에서 갑자기 깨우치는 시점이었다. 처음은 함께 신입으로 들어온 형에게 '너 그렇게 살면 안 돼'라고 들었을 때, 그리고 미친 듯이 책을 씹어 삼키던 때.


처음은 충격으로 다가왔고 두 번째는 나의 삶의 주체성이 없다는 느낌에 좌절했다. 어린 나이에 회사에 들어왔지만 어디에도 갈 방법이 없었다. 나는 무능력했다.


그저 책을 많이 읽어 지식이 조금 쌓였을 뿐 똑같았다. 계속 읽었다. 미친 사람처럼 밥 먹을 때도, 휴일에도 좋은 책이라면 무조건 읽었다. 읽을수록 느껴지는 건 자괴감뿐이었다.




솜 같은 많은 날을 술에 적셨고, 무거웠다. 현실에 안주하려도 했지만 실패했다. 상담사는 말했다. 어찌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이상을 좇는 사람은 외로운 길을 걷거나 남들과 똑같은 '척'을 하며 살아야 한다고. 둘 다 싫었다.


나와 같은 사람들을 찾고 싶었다. 세상에 남은 마지막 인류도 아니고, 나 같은 사람이 어디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상담사의 말은 비웃는 소리처럼 들렸다. 자존감은 바닥을 기었다.


나는 별종이니까. 현실에 안주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성장하려는 멍청한 사람이니까. 외롭거나 멍청한 척 살아야 한다고. 주변에 있는 한 선배에게 느껴졌다. 단 둘이 있을 때는 명철한 사람이었다. 함께하는 자리에서는 광대가 되었다.


생각을 교류하며 미래를 논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고 싶었다. 하나 둘, 주변 사람들은 사라져 갔고 외로움이 찾아왔다. 깊은 밤에 불 하나 켜지 않고 방 안에 앉았다. 그대로 잠들지 못한 채 떨었다.


언제쯤 나는 다시 행복해질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리저리 생각하다 멈췄다. 가만히 누운 채로 낮은 곳으로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갔다. 바닥인 줄 알았던 자존감의 바닥이 깨졌다.


그러다 겁이 없어졌다. 이 상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지 않을까. 죽지만 않는다면, 무엇이라도 해보자. 다시 책을 들고 몸을 움직였다. 무식하게 자신을 몰아붙였다.


나도 남들처럼 사랑받아 마땅한 존재인데, 그런 말은 타인에게만 접대처럼 내보이고 가혹하게 나를 대했다. 남들처럼 살아도 괜찮다. 목표와 꿈을 못 이루더라도 내 삶은 실패하지 않았다. 그때의 나는 한없이 약하면서 나에게만 매몰찼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음에도 주변에는 살점을 파먹으려는 좀 같은 사람들만 있었다. 그럼에도 나아가야 한다. 누구를 위해, 나를 위해. 불투명했던 어린 날의 목표는 조금씩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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