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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론 Jun 07. 2024

또, 또 서두른다

주방 팬 그릴에 낀 기름때가 거슬리는 날. 꺼내 찌든 때를 벗겨냈다. 잘 빠지지 않았지만 조금씩 풀어지는 모습에 괜스레 개운한 마음이 들었다. 진작할걸.




모든 작업은 해체보다 조립이 중요하다. 어떻게든 뜯어내면 해체는 되지만 역순서로 조립할 걸 생각하지 않으면 후회하거나 다른 제품을 뜯어봐야 한다.


야무지게 뜯어낸 그릴 스테인리스를 억지로 끼우려다 손이 다쳤다. 다시 끼우려는데 사방에 사이즈가 맞지 않아 개운함이 물러가고 짜증이 들어왔다.


재단한 사이즈로 딱 들어맞으면 좋으련만, 먼저 한 곳을 집어넣고 다른 곳도 차차 맞춰가야 한다. 모두 한꺼번에 넣으려다 일을 그르쳤다. 손가락 모퉁이에 피가 고였다. 빨리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닌데 또 서두르고 있었다.




한쪽씩 구부리며 차분히 조립하고 끼웠다. 손을 닦고 밴드를 붙였다. 영광이라는 단어를 붙이기엔 너무 볼품없는 이유의 상처로 느껴졌지만 그래도 뭐, 끝냈으니 됐다. 잠시 자리에 앉아 눈을 감았다.


잘 풀리지 않는 일을 급하게 하려다 씹지 않고 삼킨 떡처럼 걸린 적이 많았다. 결국 다시 꺼내 차분히 씹어 삼키게 될 거면서, 운이 좋게 목구멍을 넘어가도 뱃속에서 소화가 되지도 않을 텐데.


엉켜버린 목걸이처럼 차분하게 하나씩 풀어내야 하는 일들이 있다. 둥둥 떠다니는 기름들을 체로 걸러내고 차분한 마음을 풀어 따뜻하고 부드러운 국물을 만들어야 한다.


늘 알면서도 그런다. 속상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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