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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귀복 Jul 19. 2024

7살 딸과 씨름하는 아빠

유치와 맞바꾼 행복


"살다 보면 누구나 억울한 일을 당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예기치 못한 큰 어려움에 앞이 보이지 않을 때도 많다. 그런 날은 신을 원망한다. 차 안에서 "왜 제게만 이런 시련을 주시는 겁니까?" 하고 소리치며 눈물을 펑펑 쏟는다. 그러나 사고 없이 평안한 하루를 보내거나, 예정에 없던 좋은 일이 생길 때는 다르다. "왜 제게만 이런 행운이 따르는 겁니까?" 하고 신을 탓하지 않는다. 사람 마음이 이처럼 간사하다. 불혹을 넘기니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슬픔 속에서도 기쁨을 찾을 수 있는 게 인생이고, 더 나아가 힘든 와중에도 감사함을 찾는 것이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임 깨닫는다.



"지난 3월, 딸아이가 첫 책 출간을 축하하며(?) 독한 감기를 선물해 주어 일주일 동안 끙끙 앓은 적이 있다." 

코로나보다 일곱 배 정도 더 힘든 시기로 기억한다. 다행히 7살 딸은 아빠와 엄마에게 감기를 옮긴 직후 건강을 회복했다. 주말 아침 무거운 몸으로 침대와 하나 되어 있으니, 쌩쌩한 딸아이가 다가와 "아빠, 나랑 놀자" 하고 계속 보챈다. 딸이 힘없는 내 두 다리를 붙잡고 힘차게 흔드는 순간에는 기쁨과 슬픔이 동시에 교차한다. 아이가 아픈 것보다는 부모가 아픈 게 언제나 더 나으니까.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다음 날 아침,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의 원장님이 원을 매각했다는 소식을 전한다. 책에 사연이 등장하고, 에필로그에 이름까지 남겨드린 고마운 은사가 운영하는 곳이다. 원장님 때문에 원을 선택한 우리 가족에게는 비상사태나 다름없다. 더욱이 새 학기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원을 바꾸기도 힘들고, 여러모로 끔찍한 상황이 분명하다. 대한민국에서는 7살 여아가 유치원을 바꾸는 게 마음만큼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원장님 하시는 말씀이 "폐원보다는 낫잖아요?"인데, 생각해 보니 맞다. 폐원보다는 낫다. 그렇다면 이 상황을 감사해야 하나? 나약한 인간은 정답을 알지만 행하는 게 늘 어렵다. 선생님들까지 다 바뀌는 상황이라 아이도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마음을 단단히 하고 집에서라도 더 잘 놀아줘야겠다고 다짐한 뒤, 즉시 실행에 옮기려 아이에게 씨름을 제안했다.

"진짜 비극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우리 부녀는 둘 다 승부욕이 남다르다. 씨름을 할 때면 거실의 열기가 '장충체육관'만큼이나 뜨거워진다. "땡! 땡! 땡!" 첫 경기 시작을 알림과 동시에 아빠의 무릎으로 딸의 앞니를 시원하게 날려버렸다. 아빠 무릎에 얼굴을 부딪힌 딸아이의 입에서 작은 알갱이가 나온 것이다. 일주일 전 치과에서 "조금 흔들리기는 하지만 아직 한참 더 쓸 수 있을 것 같아요"라는 설명을 들었던 바로 그 치아다. 순간 눈앞이 캄캄해진다. "하나만 뽑혀서 그나마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하는 찰나, 남은 앞니마저 옆으로 45도 정도 틀어져 있는 게 보인다. 놀란 아이는 대성통곡을 하다 잠이 들고, 대형 사고를 친 아빠는 밤새 뒤척이며 반성의 시간을 보낸다.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겨우 몸을 일으켜 출근을 하고, 가시밭길 위를 걷는 심정으로 일과를 시작한다. 멍한 정신으로 업무에 임하는 와중에 아내가 보낸 카톡이 울린다.


남은 앞니는 내가 잘 뽑아서 지혈까지 시키고, 등원 잘 시켰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일해^^


배우자의 연락을 받고 나서야 마음이 조금 놓인다. 역시 여자는 약하지만 엄마는 강하다. 두려움 없이 유치를 손으로 잡아 뽑는다.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남편에게 "잘 놀다가 그런 거니까 괜찮아"라고 위로해 주는 착한 아내가 있어 참 다행이다. 그날 저녁, 현관문을 여는 손길이 유독 떨린다. 집 안으로 들어서니, 딸아이는 평소처럼 "다다다다" 하고 전속력으로 달려와 아빠와 눈을 주친다. 앞니가 빠져 새는 발음으로 "아빠, 씨름하자!" 하며 목이 터져라 소리치는 아이. 얼굴에는 미소가 한가득이다. 이 순간 휑한 앞니 자리는 사랑으로 채워지고, 거실은 금세 천국으로 변한다.

"행복은 늘 가까이에 있는데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다."


아빠에게 앞니를 빼앗긴 7살 딸은 여전히 행복하다


앞니보다 아빠와 노는 게 더 소중한 아이가 있고, 손가락 두 개로 유치를 뽑는 강인한 아내가 있다. 행복하지 않을 이유를 찾기가 더 어려운 일상이다. 어쩌면, 비극 속에서도 행복이 피어나는 게 바로 인생이 아닌가 싶다.





비하인드 스토리


원 매각 사실이 알려진 다음 날, 특종이 하나 더 터진다.

"네? OO이가 그만둔다고요? 정말요?"

이 사실이 알려짐과 동시에 다른 원을 알아보던 부모들의 태도가 싹 바뀐다. 한마음이 되어 계속 다니기로 마음을 고친다. 원의 가장 큰 골칫거리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선생님들에게 삿대질과 욕설을 일삼던 짐승보다 못한 보호자가 스스로 떠난다고 하니, 다들 이게 무슨 복이냐고 한다. 신이 주신 큰 선물이나 다름없다. 덕분에 원의 분위기는 이전보다 훨씬 더 좋아졌고, 딸아이의 웃음도 그만큼 더 늘었다. 우리 부부의 만족도 역시 하늘을 찌른다.

"물론 그만둔 아이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모든 건 다 어른들의 문제다. 아이들은 죄가 없다. 같은 장소에서 이별을 고하는 두 성인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극명하게 나뉠 뿐이다. 아끼던 이는 아쉬움으로, 이를 갈던 이는 반갑게 떠나보낸다. 누군가와의 이별을 앞두고 나는 어느 쪽에 기우는 사람이 될까? 문득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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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인생을 또 배운다.


전화위복(轉禍爲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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