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귀복 Jul 04. 2024

샤넬 백 사준 남편

남편은 황금손

운을 타고 나는 사람들이 있다. 내 아내가 그렇다. 그녀의 주종목은 추첨이다. 수시로 당첨되어 구매하는 상품을 '1+1'으로 만든다. 지난달에만 무려 두 건이다. 텀블러를 샀는데 텀블러 가방을 서비스로 받았고, 네일 아트 샵에서는 1회 무상 이용권을 뽑아 왔다. 그렇다. 내 아내는 '황금손'이 분명하다.


'에이, 뭘 이 정도 가지고, 별거 아니네'라고 속단는가? 걱정 마시라. 당신의 생각   후면 바뀐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직후, 잠실에 위치한 롯데백화점에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우리 부부는 실내복을 포함해서 4가지 품목을 구입했다. 총구입가는 30만 원 정도로 기억한다. 그리고 그날은 백화점 행사가 있던 날이다. 1등 상품은 1,000만 원 상당의 TV였고, 2등 상품은 백화점 상품권 500만 원이었다. 가진 건 시간 밖에 없던 신혼 시절, 꽝이 없는 이벤트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7등 상품 크리넥스와 8등 상품 치약은 살림 밑천이다. 에스컬레이터에 몸을 싣 추첨 현장으로 올라갔다. 5분 여 정도 줄을 서서 기다린  추첨 버튼을 눌렀고, 목표한 대로 7등과 8등 상품을 수령했다. 예상했던 결과다. 아쉬움은 없다. 다만 손에 남은 영수증 두 장을 마저 사용하기 위해 줄을 한 번 더 섰을 뿐이다. 기다리는 동안 아내에게 "자기야, 2등 당첨되면 샤넬 백 사 줄게. TV는 당첨되면 어머님 집에 보내드리자. 오빠만 믿어" 하고 말하며 장난을 쳤다. 그리고 잠시 뒤, 차례가 되어 나는 7등을 뽑았다. 옆에 있던 아내는 몇 등을 뽑았을까? 그렇다. 장난은 현실이 되었다. 말은 언제나 씨가 된다.


"축하드립니다. 2등 당첨입니다."


당시 샤넬 백의 가격은 612만 원이었다. 백화점 상품권 500만 원을 사용해도 자비 부담금 112만 원이 더 필요하다. '남아일언중천금'이니 말을 무를 수도 없고, 고민이 깊어진다. 헉! 그런데 상품권을 교환하는데도 돈을 요구한다. 눈물을 머금고 제세공과금 110만 원을 납부했다. 샤넬 백을 구입하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실제 부담금이 222만 원으로 늘어나는 순간이다. 흑흑. 그러나 어쩌겠는가. 뼛속까지 인티제인 나는 약속을 목숨만큼 소중하게 여긴다. 반드시 지키려 노력한다. 아내와 함께 카페에 앉아 1시간 동안 고민을 했고, 마침내 우리는 카드를 긁었다. 그날 이후 샤넬 백은 오르고 올라 지금은 1,500만 원이 훌쩍 넘는다. 투자 원금 대비 600퍼센트가 넘는 수익달성고, 배당 수익으로 '샤넬 백을 사준 남편'이라는 타이틀도 었다. 투자 결과가  만족스럽다.



어느새 1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났고, 아내가 샤 백을 든 모습을 본 건 10번 정도 되는 듯하다.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친구들을 만날 때는 비싼 가방을 들고나가지 않는 것을 보면 과시하는 용도는 아닌 게 분명하다. 게다가  가방은 종종 남편보다 더 나은 역할을 하기도 한다. 아내는 우울할 때마다 상자를 열어 보며 위로를 얻기 때문이다. 이처럼 샤넬 백한 여인자존감을 높이고, 가정의 평화를 지키는데 꾸준히 기여하는 중이다. 222만 원이 사랑하는 배우자 로망을 실현하고, 슬픔의 역치를 높이는 비용이라고 생각하니 꽤나 합리적으로 여겨다.



이쯤에서 잠시 백화점 상품권에 당첨되었던 그날로 돌아가 보자.



사실 아내는 "자기야, 나 가방 안 사도 괜찮아. 옷이나 한 벌 사고 남은 금액은 아껴두자"라고 말했다. 그 말을 따랐다면 어땠을까? 샤넬의 가격 인상 소식이 들릴 때마다 행복한 추억은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가슴에 상처를 남겼을 듯싶다. 결국 아내의 황금손은 약속을 지킨 남편의 결단을 만나 빛을 더했다. 이제와 생각하니 부부의 케미가 진정 하이엔드급 '명품(名品)'.


"인생에 정해진 답은 없다."


중요한 선택의 순간, 지금 하는 결정이 미래에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다면 오늘의 내가 웃고 사랑하는 사람의 미소를 볼 수 있다면, 때로는 과감히 결단을 내리것도 꽤나 괜찮은 방법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잠깐, 그런데 왜 부제가 '남편은 황금손'인지 궁금하지 않은가? 그렇다. 여기까지만 읽으면 '아내는 황금손'이 더 적절한 제목이다. 아직도 모르겠는가? 기분이다. 힌트를 남긴다.



"황금손을 가진 여인을 뽑은 남성은 누구인가?"


후훗. 오늘은 여기까지.





배경 이미지 출처 : 샤넬 공식 홈페이지





비하인드 스토리


특별한 이유 없이 우울한 날이 있다. 얼마 전 아내가 그랬다. 소파에서 책을 읽는 게 "자기야, 나 요즘 외로워. 세상에 나 혼자 있는 거 같아"라는 말을 전한다. 눈빛에는 슬픔이 가득하다. 사랑하는 여인의 아픔을 그냥 두고 볼 수가 없다. 공감과 위로가 필요한 순간이다. 읽고 있던 책을 얼른 덮고, 아내의 두 손을 꼭 잡는다. 공감 능력 제로였던 과거의 내가 아니다. 배우자의 속상한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 눈을 마주치며 부드럽게 말을 건넨다.


.
.
.
.
.
.
.
.


"자기야, 그럼 종교를 가져 봐."

...

분위기 파악 못하는 인티제 남편이 기어이 사고를 친다. "자기야, 내가 있잖아"가 정답인데 화를 부르는 오답을 말한다. 결국 아내는 작은 방에 들어가서 상자를 꺼낸다. 10여 년 전 사놓은 샤넬이 여전히 빛을 발한다. 


"클래식은 역시 영원하다."




다음 날, 나는 직장에서 억울일을 한다. 사직서에 서명을 남기고 싶은 충동을 강하게 느낀다. 퇴근길 차 안에서 볼륨을 게 하고 CCM을 도 기분이 풀리지 않는다. 이때 카톡이 울리고, 사진 한 장이 전송된다. 우아, 이럴 수가! 화면을 확대함과 동시에 종교도 해결해 주지 못한 슬픔이 단번에 사라진다. 그렇다. 아내에게는 '샤넬'이, 딸에게는 '양파링'이 다.


초록데이를 마치고 하원하는 딸


그리고 내게는 명품보다 빛나는 '아내와 딸'있다. 







나는 다시 출근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