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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귀복 Jun 28. 2024

염라대왕 만날 뻔한 남자

'여알못' 남성을 위한 생존언어 특강



자기야, 나 뭐 달라진 거 없어?



"남성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질문이다."


'삼각함수'보다 서른두 배는 더 어렵다. 공식만 알면 쉽게 풀 수 있는 문제인데 감으로만 풀려고 하니 기어이 일이 커진다. 이 문제의 난도는 유독 '인티제(INTJ)'에게 더 높게 느껴진다. 헬 중에 헬이다. 출제자가 의도한 정답은 '칭찬'인데, 질문을 받은 인티제는 '오답'을 찾기 위해 애를 쓴다. 매의 눈이 되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꼼꼼히 스캔을 반복한다. 잘 모르겠으면, 그냥 "많이 달라졌네. 평소보다 더 예쁜데?"라고 하면 되는데, '오답'을 찾기 위해 계속 '오기'를 부린다. 그러다 끝내 사달이 난다. 주어진 시간이 초과하고, 결국 부부는 물을 베기 위해 날카로운 칼을 꺼내 든다.


"인티제는 고집이 세서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

자주 출제가 되는 '기출문제'임에도 새로운 정답을 찾으려 온 힘을 쏟는다. 눈동자를 동서남북으로 빠르게 굴리면서 달라진 점을 확인한다. 간혹 '틀린 그림 찾기'성공하면, "처음 보는 옷이네. 새로 샀어?" 등의 정답(?)말한 다음 크게 혼이 난다. 서로가 억울한 상황을 수차례 거듭한 후에야 "예뻐졌네"를 덧붙이며 평화를 찾는다.

"유사 문제를 하나 더 살펴보자."

외출을 앞두고 아내의 단장 시간이 길어질 경우에는 남편의 대응이 중요하다. 조건 반사가 필요한 시점이다. 군인이 상급자를 만나면 힘차게 경례를 하듯, 아내가 문을 열고 나오면 밝은 표정을 지으며 칭찬을 시작해야 한다. 이때에는 단어 선택만큼이나 반응 속도도 중요하다. 이렇게까지 설명했는데도 잘 모르겠으면, 그냥 보자마자 "우와~! 예쁘다"라고 말하면 된다.

"결혼 12년 차 인티제 남편은 어떨까?"

내공이 쌓일 만큼 쌓였다. 이제는 질문이 나오기 전에 답을 먼저 꺼낸다. "예쁘다"가 자동으로 나온다. 심지어 10년 차가 넘어가면서부터는 응용문제도 다. 물론 난도는 훨씬 더 높다. 내 경우 "예쁘다" 대신 "젊어 보이네"를 선택했다가 화를 입은 적이 있다. "지금도 젊은데, 그럼 내가 늙었어?"라고 답을 하는 아내에게 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럼 뭐라고 얘기해야 해?"라고 솔직하게 물었더니, "어려 보인다고 해야지"라는 정답을 알려준다. 역시 사람은 평생을 배워야 한다. 가르침에 따라 "응, 엄청 어려 보이네. 예쁘다"라고 말하며 위기를 모면한다. 그러나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며칠 뒤,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도전을 거듭한다. "자기, 강남 아가씨 같아"라고 말했다가 큰 봉변을 당했다. 나는 우아함을 상징하는 '강남'에 강조를 두고 말했는데, 아내는 '아가씨'가 주는 퇴폐적인 뉘앙스 때문에 화가 난 듯하다. 고민 끝에 "강남 사모님 같아"라고 말을 바꾸니, 아내의 분노가 가라앉는다.

"부부사이에도 방심은 금물이다."

문장 선택에는 늘 주의가 필요하다. 얼마 전에는 "우와~! 예쁘다. 새 여자 같아"라고 말했다가 '염라대왕'을 만날 뻔했다. 나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 그런데 이게 왜 화를 낼 일이냐고? "하! 하! 하!" 당신은 나와 같은 희귀 민족인 인티제가 분명하다. 여성은 예뻐지고 싶은 거지 다른 사람이 되려고 꾸미는 게 아니다. 기본 중에 기본이나 어차피 이해를 못 할 테니 그냥 외우길 바란다. 이렇듯 인티제 남편은 부족한 공감 능력을 암기와 눈치로 채우며 행복하게 살아간다. 그러니 당신 곁에 좋은 짝꿍이 나타나면 믿고 결혼해도 괜찮다.



만약 미혼인 인티제 남성이 이 글을 읽는다면, 본능을 억누르고 "예쁘다"를 입에 달고 지내보자. 습관이 몸에 배면 미래의 아내가 바뀐다. 내가 보장한다. 혹시나 여기까지 읽고도 '나는 인티제가 아니니 안 해도 되겠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지금 당장 화장실에 달려가서 찬물로 세수부터 해라. 당신은 정신을 차리는 게 우선이다. 또한 남편(남친)이 있는 여성 독자라면, '어라? 나는 해당이 없네'라고 생각하며 가벼이 넘기지 말고 이 글을 조용히 이성에게 건네보자. 행복은 그냥 굴러 들어오는 게 아니다. 한 노력이 필요하다. 기쁨은 언제나 복리로 어남을 기억하고, 지금 당장 실행옮겨보자.


"남성들이여, 용돈은 아껴도 되지만 부디 예쁘다는 말은 아끼지 말자."





비하인드 스토리


며칠 전에 있었던 일이다. 외출 준비를 하고 나온 아내의 미모가 평소보다 유독 더 빛난다. "예쁘다"라는 말이 자동으로 나온다. 인티제 남편은 진화(進化)를 꿈꾸며 "자기 엄청 예쁘다. 한 번 안아 봐도 돼?"라고 묻는다. 질문을 받은 아내가 수줍은 미소를 보이며 "우리 갓 사귄 거야?"라고 되묻는다. 승낙의 의미로 받아들이고 아내를 꼭 안아준다. 사랑스러운 말 한마디에 따스한 포옹이 더해지니, 오래도록 함께해 온 만성 피로가 "나 잠깐 3박 4일 여행 좀 다녀올게"라는 말을 남기고는 멀리 떠난다. 이처럼 사랑하는 사람의 미소는 피로를 물리치는 효과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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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약 지어먹을 돈도 아낄 겸, 다음에는 "저기요... 혹시 시간 있으세요?"라고 물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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