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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귀복 Jun 21. 2024

프러포즈가 꼭 필요한지 묻는 당신에게

feat. 바보가 바보에게



남자들은 모른다. 몰라도 너무 모른다. 모르니 안 하고, 안 하니 혼난다.



억울한 일상이 끊임없이 반복되지만 딱히 개선할 의지조차 안 보인다. 노력해도 안 되기 때문이다. 결국, 남은 선택은 단 하나. 그렇게 많은 남성들이 ‘캔디’가 된다. 참고 참고 또 참는다. 상대방은 어떤가?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참사를 예방하고자 힌트를 줘도 못 알아들으니, 가슴 한편이 늘 체한 듯 답답하다. 콕 집어 말해봐야 소용이 없다. 악순환의 반복이다. 이따금씩 남성의 이러한 무지는 음악적 재능이 전무한 여성을 피아니스트로 만들기도 한다. 여기저기서 도레미~~ 의 ‘’를 계속 친다. 급기야 가수 손담비의 노래를 피아노로 연주하는 사람들까지 눈에 띈다.


“내가 미쳤어 정말 미쳤어 너무 미워서 떠나버렸어.”


<사진 출처 : 손담비 앨범>


손담비가 부른 <미쳤어>의 가사가 당신의 아찔한 현실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오늘 이야기를 시작한다.




“결혼 전에 프러포즈 꼭 해야 하나요?”


이 질문에 대한 여성들의 답변은 불 보듯 뻔하다. 십중팔구는 “당연하죠”다. 그렇다면 남성들의 반응은 어떨까? 아마도 십중 하나둘만 “그럼요”를 택할 것이다. 왜 이런 결과가 나오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답은 간단하다. 몰라서 그런다. 그러니 마음을 비우,  남자는 백지처럼 깨끗한 존재임을 인정하길 바란.


남성은 여성이 어떻게 그리느냐에 따라 ‘작품’이 되기도 하고, ‘재활용’이 되기도 한.”


올해 초, 결혼을 앞둔 여직원 H가 다가와 기쁜 소식을 전할 때의 일이다. “선생님, 저 드디어 날 잡았어요. 축하해 주세요” 하고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한 옥타브 더 높게 울려 퍼진다. 진심 어린 축하를 전한 뒤, 질문을 하나 건넨다.


“축하해요. 혹시 프러포즈는 받았어요?” 


잠시 후, 답변을 준비하는 H의 동공이 좌우로 심하게 흔들리는 게 보인다. 느낌이 안 좋다. “아니요”라고 대답하는 목소리의 톤이 한 옥타브 반 정도 낮아지더니 소리도 더 작아진다. 큰일이다. 이쯤 되니 예비 신랑의 앞날이 걱정이다. 신랑과의 친분도 있으니 그냥 두고 보기가 더 힘들다. 눈치를 살피던 ‘오지랖’ 신발끈을 묶으며 슬슬 출동을 준비한다.


프러포즈의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남성에게는 이벤트를 건너뛰었을 때 벌어지는 끔찍한 상황을 미리 알려주는 게 효과적이다.


현장으로 가서 살펴보자. 술집 문을 열고 들어서니 동성에게 청첩장을 전달받은 남성들반응이 한결같다. ‘축하해’라는 인사를 건넨 뒤, “웰컴 투 더 헬.” “너도 이제 끝이야.” “좋은 시절 다 갔네.” 등의 다정한(?) 축하 인사가 이어진 후 술로 떡이 되기 바쁘다. 연애사가 등장할 틈이 없다. 반면 여성들은 어떨까? 여성이 동성에게 청첩장을 받으면, ‘축하해’라는 인사를 전한 뒤, 어떤 말을 건넬까? 순서는 다르지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질문이 하나 있다. 그렇다. 당신이 생각하는 바로 그 질문이다.


“프러포즈는 받았어?”


이제 이해가 되는가? 인생에서 낭만은 옵션이고, 현실은 필수다. 프러포즈를 낭만의 범주로 착각하고 건너뛰면 큰코다친다. 프러포즈의 범주는 엄연한 현실이다. 예정된 질문에 속사포 랩으로 화려한 답변을 선보여도 부족한 판국에 묵언 수행을 선보이게 되면? 으아악~~~~~! 생각만으로도 ‘신병교육대에  입소해서 군복을 다시 입는 것’만큼이나 끔찍하다.


무슨 일이든 시작이 제일 중요하다.


결혼도 마찬가지다. 가장 빛나야 할 신부가 신랑 때문에 어두워지면 되겠는가. 프러포즈는 기본 중에 기본이다. 양말을 벗어서 빨래통에 넣는 것, 음식물 쓰레기는 남편이 버리는 것 등과 동급이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고로, 불상사를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 여성은 남성에게 콕 집어서 언급하는 게 좋다.


“자기야, 나 프러포즈는 꼭 받고 싶어. 그래야 청첩장 전할 때 할 말이 있거든. 대답 못하면 창피하잖아. 자기도 점수 깎이는 게 싫고. 이해하지? 여자들의 세계는 그래.”


 정도로 간곡부탁했는데도 “나는 싫은데?”라고 답을 하는 남성이 있다면, 신이 준 마지막 기회가 분명하다. 얼른 떠나라. 결혼 전에도 배려를 안 하는데 결혼 후에는 잘할까? 나는 ‘아니다’에 내가 쓴 책 <나는 행복을 촬영하는 방사선사입니다> 열 권을 걸겠다.



OO아(야), 나랑 결혼해 줄래?”


남성들이여, 위에 적힌 열 글자만 입 밖으로 내뱉으면 수십 년이 편해진다. 내 결혼, 친구 결혼, 매해 결혼기념일, TV에서 수시로 방영되는 고백 장면이 싸움의 불씨가 되지 않도록 꼭 이행하길 바란다. 물론 낭만까지 더해지면 더 좋다.



이렇게까지 설명했는데도 이해를 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듯하여 실제 사례를 준비했다.



결혼을 앞둔 내게 유부남 5년 차인 K 전공의 선생님이 매일같이 찾아와 “선생님, 프러포즈했어요?”라고 물었다. 당시 여자친구였던 아내도 내게 “나는 프러포즈 받아야 결혼할 거야”라고 분명히 선언했지만 나는 동의하지 않았다. 뼛속까지 인티제인 나는 프러포즈를 ‘허례허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K 선생님은 내게 찾아와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도대체 이 사람은 얼마나 근사하게 프러포즈를 했길래 나한테 이러는 거지?’라는 궁금함에 “선생님은 프러포즈 어떻게 했어요?”라고 물었다. 짧은 침묵이 흐르고 나서, 그가 천장을 바라보며 한숨을 깊게 내쉰  입을 열었다.


“저는 안 했어요. 그래서 지금까지 시달려요.”


한 영혼을 구하기 위한 K 전공의의 부단한 노력 덕분에 나는 무사히 위기를 모면했다. 남산 가장 높은 곳에 올라 야경을 감상하며 추억을 남겼다. 상공을 회전하는 레스토랑에서 디저트로 나오는 케이크에 새겨진 ‘Will you marry me?’라는 문구는 천국의 입장권이 되었다. 그 사건 이후 K의 신분은 내게 귀인으로 상승했고, 이제는 나도 누군가의 귀인이 되고자 글을 남긴다.



정리해 보자. 프러포즈는 여자의 자존심이다. 그리고 여자의 자존심을 지켜주는 게 남자의 자존심을 지키는 일이다. ‘일거양득(擧兩得)’이 분명하다. 이래도 하지 않을 텐가?


“헉! 그런데 제 여자친구는 프러포즈 필요 없다고 하던데요?”


으윽~~! 역시 남자는 모른다. 속는 셈 치고 일단 번 해봐라. 살아보니 사랑하는 여인의 환한 미소를 보는 것만큼이나 행복한 일도 없더라.



마지막으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서 이 글을 접한 독자님들께는 심심한 위로를 전한다. 부디 ‘이 인간 있다가 두고 보자’라는 생각으로 이를 갈기보다는 ‘너무 늦지 않게 알게 되어 다행이다’라는 마음가짐으로 지금부터라도 잘 가르치길 바란다. 왜냐하면 남자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 시간 이후로 수많은 백지가 다양한 예술 작품으로 새롭게 탄생하길 기대해 본다.



혹시나 여기까지 읽고도 “프러포즈가 꼭 필요한가요?”라고 묻는 바보가 있다면, 답은 딱 하나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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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당신은 혼자 사는 게 더 낫다.





비하인드 스토리


같은 부서에 스물아홉 살 인티제 남성 A가 근무한다.  년 사귄 여자친구가 있는 그에게 “프러포즈할 거야?”라고 물었다. 당황한 A는 “네?”라는 답변을 한 뒤, 머리를 긁적이 “그거 꼭 해야 하나요?”라고 묻는다. 이럴 수가! 결혼을 앞둔 그가 프러포즈를 ‘허례허식’이라고 생각한다. 전 국민 재난문자 발송을 고려할 만큼의 중대한 위급상황이다. A를 급히 1층 카페로 데리고 가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을 주문하고 자리에 앉는다. K 전공의에게 받은 은혜를 떠올리며, ‘낭만’과 ‘낭비’의 차이에 대해 목이 터져라 설명한다. 어느새 커피 잔에는 얼음만이 남는다.








그렇게 나는  한 영혼을 구한. 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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