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장시장 고향손칼국수
네이버 국내 시장백과에 따르면 종로 광장시장은 “조선시대 배오개시장의 명맥을 잇고, 1905년 광장주식회사의 설립과 함께 시장 개설 허가를 받아 오랜 전통을 가진 전통시장으로 다양한 먹을거리를 파는 음식점들이 많고, 포목과 구제 상품 등이 활발하게 거래되고 있다.”고 한다.
또한 광장시장의 유래에 대하여 “광장이라는 말은 구한말에 설립된 광장주식회사에서 유래했고 광장주식회사의 이름은 광교와 장교 사이에 있다는 의미에서 다리 이름의 앞 글자를 따 광장주식회사라는 이름을 지었다. 거기서 광장시장이라는 말이 유래했다. 다만 처음에는 광교와 장교의 첫 글자인 광장(廣長)이었지만 훗날 넓게 저장한다는 의미의 광장(廣藏)으로 한자가 바뀌어 오늘날에 이르렀다.”고 전한다.
오전 10시경 종로5가역 골목에서 늦은 아침으로 국밥을 먹고 혜화역 학림에 들려 비엔나커피를 마시며 책을 본다. 오전 12시 45분 학림을 나와 마로니에공원을 둘러본 후 방송통신대 앞 정류장에서 마을버스 8번을 타고 종로5가역·광장시장에 내린다. 9월초지만 뙤약볕이 따갑다.
광장시장에는 국내외 유명인이나 연예인이 다녀간 식당들이 미디어에 보도되며 국내외 관광객들이 많이 방문한다.
광장시장을 알리는 입구 유명 꽈배기 집에는 내외국인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커피집, 육회 집, 빈대떡집, 김밥집 등을 스쳐 지나간다. 점심시간이 지났지만, 손님들이 제법 많다.
광장시장 안은 천장으로 뙤약볕은 가려졌지만, 사람들과 주방 조리 기구의 열기로 후끈하다.
여러 음식점을 지나며 미리 알아둔 고향칼국수를 찾아간다. 오후 1시 38분 동부 A 70호, 고향칼국수 앞에 다다른다.
서울 고향칼국수는 종로5가역 8번 출구 좌측 광장시장 안쪽에 있다. 고향손칼국수 또는 고향칼국수란 상호와 함께 동부 A 70호를 기억해 두고 찾으면 빠르다.
메뉴는 칼국수(6,000원), 칼만두(7,000원), 만둣국(7,000원), 떡만둣국(7,000원), 수제비(7,000원), 잔치국수(5,000원), 비빔국수(7,000원), 손만두(6,000원), 냉면(6,000원) 등을 맛볼 수 있다. 콩국수, 우무 콩국 등 여름 한정 메뉴도 판매한다.
영업시간은 매일 08:30~22:00이며 매주 월요일과 넷째 주 일요일은 휴무이다.
2019년 세계 최대 동영상 스트리밍 업체인 넷플릭스 '길 위의 셰프들' 아시아 편 서울 편에 나오며 작은 노상 가게에 줄을 설 정도로 내·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오후 1시 38분 고향손칼국수 앞. 더위와 점심시간을 지나서인지 줄선 손님들은 없었지만 앉을 자리도 없다. 손님은 내외국인이 반반 정도다.
식당 전경을 찍고 좀 더 가게 앞으로 다가선다. 메뉴판과 넷플릭스에 출연한 여사장님이 환하게 웃는 사진이 붙어있다. 사진 속 여사장님이 눈앞에 보인다. 직원도 여러 명 있고 여사장님 사진을 찍는 분들도 있다. 순서를 기다리기 위해 혼자라 말씀드리고 음식 만드는 과정을 찍어도 될지 물어본다. 허락을 받고 사진을 찍는다.
길쭉한 직사각형 나무 도마에 송아지 머리만 한 숙성 밀가루 반죽, 칼, 수제비용 반죽, 썬 칼국수면, 칼국수용 반죽, 밀대 등이 눈에 띈다.
좀 더 지켜본다. 주문이 들어오자, 여사장님이 숙성된 반죽을 띄어내 밀대로 밀고 사이사이 밀가루를 뿌린다. 칼국수 반죽을 겹쳐서 칼로 투박하게 썬다. 면발이 대부분 일정하지만 굵기와 길이가 조금씩 다른 부분도 있다. 수제비 주문이 들어오자 접어 둔 칼국수 반죽을 좀 더 얇게 밀고 대중없이 손으로 뚝뚝 뜯어낸다. 주문은 쉴 새 없이 들어온다. 밀고 뿌리고 뜯고 썬다.
반복되는 손길은 빙산이 녹아 얼음조각과 물이 되듯이 자연스럽고 막힘없이 이어진다. 이모 한 분도 여사장님과 같은 과정을 맡으며 손을 보탠다.
썰어 둔 칼국수면, 수제비는 도마 뒤 솥으로 향한다. 가스 불 위에는 4개의 솥이 올려져 있다. 좌측부터 진액 육수통으로 보이는 솥 2개와 토렴을 하는 솥, 면과 수제비를 삶는 솥이다.
국수, 수제비를 삶고 만두를 데치는 솥은 사골육수처럼 뽀얗다. 밀가루 전분이 녹아들어서인듯하다. 구멍이 뚫린 작은 토기 모양 체망에 면을 담아 좀 더 삶아 대접에 담는다. 삶은 면은 갈색빛 육수가 끓는 옆 솥 큰 체망에 붓고 푹 담갔다 뺏다 한다. 몇 차례 토렴 후 면은 대접으로 옮겨진다. 속 깊은 국자로 뜨거운 육수를 붓는다. 썬 애호박도 토렴용 솥에서 익혀 담고 김 가루를 뿌려 손님에게 내준다. 진액 육수 솥에서 국자로 퍼 육수를 보충하며 불 조절도 함께 이어진다. 주문하고 칼국수 한 그릇 만드는 과정은 짧지만 물 흐르듯 빠르고 거침없다. 연륜이 느껴진다.
반죽의 숙성, 육수 끓이기, 면 썰기, 삶기, 토렴과 국물의 농도를 맞추는 작업등 칼국수 한 그릇에는 시간과 정성이 녹아 들어 있다. 정직한 칼국수의 정석(定石)에는 꼼수가 없다.
5분 정도 칼국수 만드는 과정을 보고 있다가 자리가 나 앉는다. 은색 테이블 눈앞에는 떡국떡, 김 가루, 썬 애호박이 담긴 통이 놓여 있고 뒤로 가스 불 위에 끓고 있는 솥들이 보인다. 우측 앞에는 나무 도마가 놓여 있다. 옆으로 찐만두가 수북이 쌓여 있다. 먹음직스럽다. 칼만두를 시킬까 잠시 망설이다 칼국수를 주문한다.
자리에 앉기 전에 지켜보았던 과정을 거쳐 칼국수가 내 앞에 놓인다. 배추김치와 썬 대파를 넣은 양념간장을 찬으로 내준다. 채 1m도 안 되는 거리에서 식사하는 내내 여사장님의 반복되는 작업은 이뤄진다. 눈과 코, 귀로 느끼며 칼국수를 먹는다.
대접에는 흐린 갈색빛 육수와 뽀얗고 굵은 면발이 담겨 있고 푸른빛 채 썬 애호박과 검은 김 가루가 고명으로 얹어져 있다. 색감도 식재료도 수수해 보이는 칼국수 한 그릇이다.
칼국수 육수는 멸치와 다시마를 기본으로 새우, 양파, 파 뿌리를 넣어 우려낸다고 한다. 한쪽 구석에 숟가락을 담가 국물을 크게 한술 뜬다. 걸쭉하지 않은 국물은 간간하다. 몇 술 더 떠먹는다. 먹을수록 짠맛은 덜해지고 멸치와 다시마가 증폭된 구수한 감칠맛과 새우와 채수가 만든 은은한 단맛이 입안을 감친다. 질리지 않는 맛이 입안에 오래 머문다.
칼국수 반죽은 밀가루에 콩가루와 소금을 약간 넣어 반죽해 하루 정도 냉장 숙성한다고 한다. 김 가루를 섞고 젓가락으로 휘휘 저은 후 면을 크게 휘감아 입으로 밀어 넣는다.
냉장 숙성한 반죽을 떼어내 밀고 접어 썰어낸 면발은 제면기에 뽑은 면처럼 매끈하지 않다. 두툼하고 탄력적이다. 대부분 일정하나 굵기와 길이가 조금씩 다르기도 하다. 국물이 묻힌 면발은 삼삼하고 고소하다. 쫀득하고 찰지다가 보드랍게 씹히기도 하며 어금니를 희롱한다. 몇 번 더 면을 먹는다. 씹는 재미가 쏠쏠하다. 중간중간 김 가루는 감칠맛을 여름 제철 애호박은 단맛을 더해준다.
밑반찬으로 나온 배추김치를 면에 얹어 맛본다. 면과 다른 아삭한 식감은 신선한 채소의 물증이다. 짭짤한 양념간장 속 송송 썬 대파와 고추를 면에 얹어 먹는다. 대파와 고추, 칼국수 면의 식감이 교차한다. 담백한 칼국수 면에 짭짤한 감칠맛과 아릿한 맛, 매운맛이 입속에 터지며 풍미를 더한다.
대접 속 면과 국물이 바닥을 드러낼 즘 주변을 둘러본다. 내외국인 손님들이 열린 주방 여사장님을 가운데 두고 네모지게 주위를 에워싸고 다닥다닥 붙어 음식을 먹는다. 외할머니가 시골집에 찾아온 손주들에게 칼국수를 해주듯이.
한 집에서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을 식구(食口)라고 부른다. 비록 얘기는 나누진 않았지만, 시장통 작은 공간에서 평범한 한국 길거리 음식을 함께 먹으며 한 끼지만 식구의 정(情)을 나눈듯하다. 혀, 어금니, 뇌, 내장, 가슴에 추억의 맛을 콕콕 박아 놓는다.
겨울에 다시 찾아 입김 호호 불어가며 추억의 맛을 꺼내 또 다른 손님들과 정을 나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