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성옥
한성옥은 서울 효창공원역 1번 출구 부근에 있었다. 식당 간판에 ‘70년 전통 한성옥 해장국 전문’이라 쓴 큰 글자가 노포임을 알려줬다. 출입문에 붙은 푸른 블루리본서베이 엠블럼이 전통의 맛에 대한 평가를 해줬다.
2023년 7월 사장님 건강상의 이유로 폐업하였다. 서울 노포 하나가 스러졌다. 기록과 기억을 되새기며 추억의 맛을 곱씹는다.
식당 안으로 들어선다. 출입문 입구 위에는 복조리와 표주박이 걸려 있고 해장국에 쓰이는 배추와 주방의 모습도 보인다. 내부는 작고 허름하지만 용문동 3대 해장국집으로 손꼽힐 정도로 유명하다. 소뼈 해장국 단일메뉴만 판매하며 새벽 일찍 문을 열어 오후 3시까지만 영업한다. 재료가 소진되면 문을 닫는다.
소뼈 해장국을 주문한다. 가림막이 쳐진 틈으로 주방이 보인다. 빨간 옷을 입은 남사장님이 뚝배기에 소뼈, 선지 등을 담고 호주산 소뼈로 우린 육수로 여러 번 토렴해 국물을 붓는다. 다진 양념도 한쪽에 살짝 얹는다. 숟가락이 뚝배기에 꽂혀 나온다. 먹다 보면 젓가락이 필요 없다.
소뼈 해장국에 복(福) 자가 쓰인 공기 안에 꾹꾹 눌러 담은 따뜻한 쌀밥과 깍두기를 내준다. 단출하게 차려졌지만 부족함이 없는 밥상이다.
투박하고 묵직한 검은 뚝배기에 맑은 기름이 떠 있는 농밀한 갈색빛 국물이 눈에 먼저 들어온다. 한술 떠 맛을 본다. 자극적이지 않다. 구수하고 개운하다. 배추에서 우러난 은은한 단맛도 입안에 감돈다. 짜고 매운 옅은 맛이 아닌 뼈, 배추, 선지 등의 식재료가 뭉근하게 우러난 진하고 깊은 맛의 국물이다.
호주산 큼직한 소뼈에 살코기가 제법 붙어 있다. 진하고 구수한 국물이 배인 살코기를 발라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질기지 않고 차지게 씹힌다. 선홍빛의 국내산 선지도 넉넉하게 보인다. 진한 국물을 머금어 간은 알맞고 폭신폭신 고소하다. 푹 삶아진 배춧잎은 부드럽고 달금하다.
뼈에 붙은 살코기와 선지를 먹다가 대파, 고춧가루 등을 넣은 맵고 짠맛이 강하지 않은 다진양념을 국물에 섞고 하얀 쌀밥을 말아먹는다. 매운맛의 풍미와 대파의 아삭함이 더해진다. 진국이 스며든 밥알이 후루룩 넘어간다.
숟가락에 밥과 깍두기를 올려 먹는다. 무르지도 단단하지도 않은 식감과 새곰한 맛이 풍미를 돋운다. 뚝배기 바닥이 보이며 땀이 목덜미를 타고 흐른다. 후련한 국밥 한 끼다.
폐업하여 다시는 맛볼 수 없다. 사라지는 거보다 잊히는 게 슬프다. 기억을 곱씹어 추억할 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