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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롱이 Aug 25. 2024

노포의 꾸밈없는 맛은 오지다!

2024년 8월 천안역에서 10시 30분 익산행 장한선 새마을호를 타고 11시 11분 삽교역에 내린다. 뙤약볕에 등이 따갑다. 기차에서 내린 승객들은 택시나 자가용으로, 행선지로 향한다.


한일식당이 삽교 시장에서 삽교역 네거리 부근으로 이전한 걸 미리 알아뒀다.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654m 10여 분 걸리는 한일식당으로 걸어간다. 2016년 12월, 2020년 7월 찾고 세 번째 방문이다.


삽교역 네거리 못 미쳐서 측으로 '한일식당'이라 쓴 커다란 입간판과 반듯하고 넓은 단층 한옥이 보인다. 주차 공간도 넉넉하다. 재개발 부지에 포함되어 70년 동안 정든 가게를 2022년 5월 12일 부득이하게 이전하였다고 한다.


예산 한일식당은 1950년 개업한 3대째 대를 잇는 70여 년 전통의 소머리국밥 전문점이다. 2017년 충청남도 가업승계 기업, 2020년 중소벤처기업부 인증 백년가게로 선정되었다.


소머리 육수에 다양한 머리 고기를 넣고 밥을 토렴한 붉은 소머리국밥이 대표 음식이다. 취향에 따라 ‘맑은 국밥’, ‘양국밥’, '맑은 국수', '양 국수'를 선택할 수 있다. 많이 먹는 사람은 ‘특 국밥’을 주문하면 된다. ‘따로국밥’은 소머리국밥(12.000원)보다 1,000원 비싸다. 소머리 수육과 도가니 수육도 판매한다. 전 메뉴 포장도 가능하다.


현자리로 이전 후에는 매일 정상 영업하며 영업시간은 평일은 10:00~19:30, 주말은 09:00~19:30까지 운영한다.


삽교 시장은 일제 침략기인 1927년에 형성된 시장이다. 상설 장과 2일과 7일에 열리는 오일장이 함께 열려서 인근의 물류가 모여들었다. 한일식당은 1950년 삽교 시장에서 개업하여 장날만 장사를 했다고 한다. 3대 70년을 이어온 소머리국밥으로 유명한 장터 식당이었다.


2016년 12월 삽교 시장 부근 한일식당을 처음 찾았다. 단층 건물 외관이 낡았다. 식당 입구 출입문 좌측에는 ‘원조 삽교 맛 70년 전통 3대 가업의 맛 소머리국밥’이라 쓴 글과 소머리 그림이 그려져 있는 간판이 있고 우측에는 세월의 더께가 느껴지는 무쇠솥 틈으로 하얀 김이 오르고 있었다. 무쇠솥 위에는 오랫동안 사람의 손때가 묻은 나무 덮개도 보였다.


이때는 삽교 오일장(매달 2, 7일) 장날과 장 전날에만 영업한 것으로 기억한다. 재료가 소진되면 영업을 마쳤다. 가게 뒤편 천막에서 소머리국밥 보통(8,000원)과 신암막걸리(3,000원)를 주문해 먹었다.


일반적인 맑은 소머리국밥과 달리 빨간 국물이 인상적이었다. 건더기도 푸짐하고 밥도 토렴하여 주었다. 찬으로 깍두기와 배추김치가 나왔다. 시큼한 게 국밥과 잘 어우러졌다.


신암막걸리는 호주산 소맥분(100%)으로 만든 7도짜리 무방부제 막걸리다. 톡 쏘는 첫 신맛과 단맛이 덜한 탁한 막걸리였다. 70년 전통 소머리국밥과 100년 전통의 막걸리 궁합이 그만이었다.


막걸릿병과 뚝배기가 비워질수록 추위는 누그러지고 내장과 뇌는 행복감에 빠졌다. 한일식당의 첫맛이었다.

2016년 12월 한일식당/소머리국밥에 신암막걸리를 마셨다.

그 후 2020년 7월 오후 6시 언저리 저녁 먹으러 들렸다. 두 번째 방문이었다. 4년 가까이 흘렀지만, 허름한 식당 외관은 크게 변한 게 없었다. 출입문 위에 상호가 크게 쓰인 간판이 걸렸고 좌측에는 중소벤처기업부가 선정한 백년가게 엠블럼이 달려 있었다. 그 사이 전통의 맛에 대한 국가적 인증을 받았다.

 

식당 앞 가마솥에는 사골과 소머리 고기가 삶아지고 있었다. 삽교 장에도 식당에도 사람들이 적었다.

2020년 7월 한일식당

주문할 때 밥을 말지 물어봤다. 예전처럼 토렴한 얼큰한 국물의 소머리국밥을 주문했다. 9,000원이었다. 4년 동안 천원이 올랐다. 열무에 얼갈이배추를 넣은 열무김치와 깍두기 등이 밑반찬으로 나왔다.


뚝배기에 토렴한 밥과 대파, 소머리 고기가 가득 담겨 있다. 식당 앞마당에서 기른 송송 썬 대파를 듬뿍 넣어 먹었다. 식감도 보태고 알싸하고 달금한 맛도 국밥과 잘 어울렸다.


식당 뒤 천막 친 곳 자리에서 혼자 먹었다. 인적 없는 골목 등 뒤에서 조금씩 불어오는 바람이 여름날 뜨겁고 얼큰한 국밥을 먹으며 흐르는 땀을 식혀주었다.


막걸리를 먹지 않았지만, 넉넉한 건더기와 밥, 변함없는 맛이 뜨내기손님의 허기를 달래주었다. 한일식당의 두 번째 맛이었다.

2020년 7월 한일식당

11시 30분 한일식당 입구에 다다른다. 말끔한 한옥의 모습에 허름했던 예전의 식당 외관과 가마솥을 겹쳐본다. 백년가게 엠블럼에 적힌 글과 대기 안내 글을 읽고 식당으로 들어선다. 에어컨 바람이 땀을 식혀준다. 공간이 넓고 깔끔하다.


카운터에 있던 중년 여성분이 몇 명인지 묻는다. 한 명이라 답하니 카운터 앞 4인석 자리를 안내해 준다. 자리에 앉는다. 깍두기와 열무김치 밑반찬이 미리 차려져 있다.


태블릿으로 국밥(12,000원 토렴 국밥 밥이 말아있어요.)을 주문한다. 주문 후 보니 태블릿 아래 ‘2024년 7월 1일부로 가격을 부득이하게 올려 양해 부탁드리며 더 좋은 재료와 맛으로 보답하겠다.’는 글이 쓰여있다. 4년 전 먹었던 소머리국밥 가격이 9,000원이었다. 3,000원이 올랐다.


가격에 대해 생각하는 사이 여종업원분이 물통과 컵, 수저가 든 종이봉투를 가져다준다. 뒤이어 서빙 로봇이 국밥을 싣고 내 식탁 앞에 멈춘다. “음식이 도착하였습니다.” “음식을 내려 주세요” 차분하고 예의 바른 젊은 여성 말투로 소리를 낸다. 국밥을 들어 식탁에 놓자 “감사합니다” 하고 주방 좌측 대기 공간으로 이동한다. 식탁에는 ‘로봇을 당기지는 말아주세요.’란 주의 글이 적혀 있다. 사람과 로봇이 함께 손님을 응대한다.


소머리국밥은 가마솥에서 푹 고아낸 사골 육수와 소머리를 삶아 기름기를 걷어낸 육수를 합친 진국을 팔팔 끓인다. 주문이 들어오면 뚝배기에 밥, 양념해 둔 고기와 육수를 우린 고기를 넣고 끓고 있는 육수로 토렴 후 송송 썬 파를 얹어 내준다.


‘황토 옹기방’ 이라 쓴 갈색 뚝배기에 불그스름한 국물이 도드라진다. 양과 다양한 소머리 고기도 군데군데 눈에 들어온다. 숟가락으로 뒤적여 보니 뭉치지 않은 하얀 낟알의 밥들이 머리를 쏙 내밀고 고기 건더기도 넉넉하게 드러난다.


국물을 한술 뜬다. 붉은색만큼 자극적이지 않다. 얼근하고 개운한 뒷맛이 조화를 이룬다. 먹기 알맞은 온도는 숟가락질을 반복하게 한다. 은은한 감칠맛이 매력적인 국물이다.


밥과 건더기를 뒤섞어 크게 한술 떠먹는다. 토렴질을 거친 국물이 촉촉이 스며든 밥알은 삼삼하고 보드랍다. 소머리 고기, 우설, 양 등 다양한 한우 고기의 질감과 짙은 풍미로 입안이 풍성해진다. 썬 대파는 살강살강 씹히며 알싸하고 달금한 맛을 더한다.


열무김치는 덜 익어 풋풋하지만, 조직감이 살아있어 씹는 맛이 좋다. 깍두기는 단단하게 씹히며 여린 신맛이 입안을 상쾌하게 해준다. 단출하지만 국밥과 어울리는 찬들이다.


숟가락질이 바빠지며 뚝배기는 바닥을 드러낸다. 입은 기껍고 속은 담뿍하다. 한일식당의 세 번째 맛이었다.


2016년, 2020년, 2024년 소머리국밥을 세 번 맛봤다. 먹은 시간과 계절이 달랐다. 8년의 세월 동안 가격의 변화와 식당의 이전도 있었다. 하지만 맛을 위한 우직하고 꼼수 없는 마음은 한결같아 보였다. 소박하지만 노포의 시간과 정성이 담겨 깊이가 남다른 국밥 한 그릇이었다. 헛헛한 속을 포근하고 든든하게 해 준 먹거리였다. 노포의 꾸밈없는 맛은 오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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