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안 대구식당
11시 49분 마산역발 순천역행 무궁화호 기차를 타고 12시 3분 함안역에 내린다. 함안 군내버스 시간이 맞지 않아 함안국밥촌 거리 대구식당까지 1.1km 걸어간다. 2차선 도로 갓길엔 그늘진 곳이 없다. 8월 땡볕에 등이 따갑다. 바람도 불지 않아 팔과 이마에 땀이 맺힌다.
함안파출소 건너편 재령슈퍼 건물 위에 ‘함안한우국밥촌’을 알리는 글씨와 소 그림이 그려진 간판이 달려 있다. 재령슈퍼 60m 앞으로 주차장이 있고 우측으로 단층 건물 식당 세 개가 일자로 붙어서 영업중이다. 함안한우국밥촌 거리다.
함안파출소 건너편 직진하면 우측으로 함안의 별밋거리인 한우국밥촌이 보인다 한성식당, 대구식당, 시장한우국밥집 등 세 곳의 국밥집이 올망졸망 모여 있다.
2016년 두 번 대구식당을 찾았다. 당시 국밥이 5천원에서 6천원으로 인상되고 돼지불고기는 소(1만 2천원)는 없어지고 대(1만 5천원)만 주문 가능했던 시기였다. 국밥과 연탄에 구운 돼지불고기에 막걸리를 먹었던 기억이 마음 한쪽에 저장되어 있었다. 추억을 되새기며 대구식당으로 향한다.
예부터 함안은 경남의 교통 요충이자 동서 물류의 중심지로 큰 시장을 이뤘던 곳이었다. 큰 시장엔 큰 쇠전이 열렸고 신선한 소고기로 끓여내는 국밥이 유명했다. 현재는 장도 쇠전도 서지 않는다. ‘함안한우국밥촌’이란 이름의 거리로 세 곳의 식당이 겨우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그중 대구식당은 함안한우국밥촌에서 가장 오래된 곳으로 60여 년 가까이 대를 이어 영업 중인 노포다. 창업주 할머니가 대구에서 함안으로 시집와 장터 근처 살고 있던 집 한쪽을 빌려 국밥을 팔기 시작했다. 식당 이름이 지어진 까닭이다.
메뉴는 한우를 사용한 국물에 말아먹는 국밥(8천 원)과 국수(8천 원), 돼지수육(2만 원), 돼지불고기(2만 원), 한우 수육(3만 5천 원), 한우 불고기(3만 5천 원) 등을 판매한다. 밥과 국수를 함께 먹을 수 있는 짬뽕(8천 원)이 인기 음식이다. 밥을 따로 주문할 수 있다.
영업시간은 화~일요일 08:30~20:00이며 월요일은 휴무이다. 재료가 떨어지면 영업을 종료한다.
8년 만에 대구식당 앞에 선다. 허름한 외관과 간판, 창문에 쓰인 ‘전통 한우국밥 대구식당”이란 글자가 변함없다.
얼굴에 흐르는 땀을 훔치고 출입문을 밀고 들어선다. 식당 좌측 구석에 있는 에어컨 바람이 시원하게 피부에 와 닿는다. 젊은 남자분이 몇 명인지 물어본다. 혼자라 대답한다. 식수통 옆 4인석 자리에 앉는다. 시원한 보리차를 가져다준다. 한 번에 보리차 한 컵을 쭉 들이켜고 메뉴판을 본다. 국밥과 짬뽕 사이에서 머뭇거린다. 짬뽕을 주문하는 손님들 소리가 곳곳에서 들렸기 때문이다. 결정이 흔들거렸다. 식수통 옆 작은 물통에 얼린 보리차를 들고 온다. 땀도 식히고 갈증도 달래니 차분해진다. 미리 결정해 둔 대로 국밥만 주문한다. 차가운 보리차 한잔을 더 마신다. 보리차로 막걸리를 마시지 못하는 마음을 달랜다.
이유가 있었다. 함안역 오는 기차 안에서 2016년 기록했던 사진과 글을 보며 그때처럼 국밥, 돼지불고기, 막걸리를 먹을까 생각했지만 식사 후 함안 가야시장 직접 담근 농주에 명태전을 파는 식당에 가려 했기 때문에 참아야했다.
식당을 살펴보려던 찰나 돼지불고기 냄새가 에어컨 바람을 타고 코를 후빈다. 코는 눈보다 빨랐다. 눈으로 확인해 보니 에어컨 옆 빈 곳에서 아주머니 한 분이 연탄에 양념한 돼지불고기를 굽고 있었다. 8년 전 맛본 추억의 맛을 꺼내 곱씹는다.
추억을 맛보고 식당을 살펴본다. 출입문 앞으로 집을 개조해 만든 방이 보인다. 방안에는 일반 식당 테이블이 아닌 세월의 더께가 묻은 소반이 나란히 놓여 있다. 손님들은 군데군데 색칠이 벗겨지고 색바랜 붉은빛을 띠는 소반 앞에 앉아 빨간 국밥을 먹고 있다. 장터 국밥집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눈을 돌려 출입문 우측을 본다. 열린 주방과 식당 분들이 쉬는 공간이 있다. 주방에는 큰 양은솥이 걸려있고 연세 계신 아주머니 한 분이 고기도 써시고 토렴도 하시느라 바쁘게 움직이신다.
보리차 한잔을 더 마시고 열린 주방으로 다가간다. 작은 구멍이 뚫린 양은 채반엔 삶아 둔 국수사리가 놓여 있고 밥솥엔 식혀 둔 쌀밥이 담겨 있다. 주방 중앙 커다란 양은솥 안에는 벌겋게 소고깃국이 뭉근하게 끓고 있다.
빨간 도마에서 진갈색 소고기를 써시던 아주머니가 주문이 들어오자, 국밥을 만든다. 냉면을 담는 스테인리스 그릇에 식혀둔 밥을 담고 썰어둔 소고기와 대파를 얹는다. 위생 장갑을 낀 왼손으로 그릇을 잡고 비스듬히 기울인 후 양은솥 안 국물과 건더기를 국자로 떠 그릇에 담으며 뜨거운 국물을 부었다 따르기를 3~4차례 반복한다. 먹기 좋은 온도를 맞춰주는 토렴질이다. 아주머니의 손놀림은 빠르고 노련하다. 국자로 밥알은 풀지 않는다. 국물을 넉넉하게 담아 마무리한다. 한우국밥이 완성된다. 수고스러움을 눈으로 담고 자리로 돌아간다.
자리로 돌아오니 꽃 그림이 그려진 양은 쟁반이 식탁 위에 놓여있다. 방금 본 토렴한 한우국밥과 된장, 양파, 고추, 묵은김치를 담고 있다. 상차림이 단출하다.
한우국밥을 바라본다. 도드라지는 빨간 국물 위로 모락모락 김이 오른다. 밥알, 콩나물, 대파, 무, 선지, 소고기 살점 네다섯 도막이 제 색을 내며 담겨 있다. 후춧가루도 조금 뿌려져 있다.
한우국밥은 사골과 한우 사태·양지·홍두깨살 등을 넣어 우려낸 육수에 선지, 무, 콩나물, 대파, 고춧가루 등을 넣어 벌겋게 한 번 더 끓여낸다고 한다. 간은 직접 담은 된장과 간장으로 맞춘다고 한다. 장터에서 팔던 소고기국밥이다.
살며시 건더기들을 밀치고 국물을 살포시 떠먹는다. 자극적인 색감과 다르게 맛은 담박하다. 얼근하고 개운하다. 몇 번 더 국물만 떠먹는다. 알맞은 온도의 국물이 구수하고 깊다.
뭉텅뭉텅 썬 선지를 동강동강 내고 국밥을 휘젓는다. 한 술 크게 떠먹는다. 귀성지고(제법 엇구수하다.) 시원한 국물이 고루 밴 밥알이 이슬비처럼 씹힌다. 선지는 뽀드득 씹히며 빨간 국물을 토해내고, 작은따옴표 같은 콩나물은 아사삭하다. 무는 입술로도 뭉그러지고 두툼한 소고기는 나긋나긋하면서도 결 따라 제 식감을 낸다. 어쩌다 씹히는 지방은 감칠맛에 고소함을 더한다. 식재료들이 푹 고아지며 스며들고 배어 나온 맛과 식감은 혀를 감돌고 어금니를 놀린다. 여러 식재료의 기운을 오롯이 품은 국물은 이들을 감싸안고 잘 어우러진다.
국밥 위에 묵은김치 한 점 올려 맛본다. 식감은 무뎌졌지만, 농익은 신맛이 어우러지며 입이 개운해진다. 구수한 된장을 찍은 양파는 여린 아릿함에 단맛을 내고 고추는 알싸하다. 입술까지 얼얼하다. 얼음 보리차를 한잔 마신다. 국밥노포의 찬들은 더도 덜도 할 것 없이 마침하다.
한 술 두 술 국밥은 쉴 새 없이 들어가고 밥 한 톨 남지 않은 빈 그릇엔 숟가락만 덩그러니 남는다. 입가에 묻은 빨간 기름을 혀로 훔친다.
에어컨 바람은 땀을 식혀주며 겉만 시원하게 하지만 수수한 한우국밥 한 그릇은 속까지 산뜻하게 해준다. 얌전한 경상도식 소고기국밥은 무심하고 친근하다. 손님의 취향에 따라 선택해서 먹게 하는 배려와 정성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식당 들어올 때와는 다른 땀이 이마에 살짝 흐른다. 빨간 맛이 토렴을 타고 마음을 적신다. 맛은 추억을 남긴다. 온탕에 몸을 담그면 나오는 외마디가 절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