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공군 Majetek
Majetek은 1930년대 중반부터 1940년대 중반까지 체코 공군에 납품된 군용 시계이다. 공식 제식 명칭은 없으며, 케이스 뒷면에 새겨진 체코어 문구 "Majetek Vojenske Spravy"(군 행정 재산)에서 이름이 유래되었다.
이 시계는 컬렉터들 사이에서 MVS, Tartarugone, Big Turtle Watch 등의 별명으로 불리며, 독특한 쿠션형 케이스 디자인이 특징이다. 제조사는 Longines, Eterna, Lemania 등으로, 브랜드별로 디자인이 조금씩 다르다.
Longines 버전: 스몰세컨드와 회전 베젤이 있으며, 2차대전 직전에 체코 공군에 지급
Lemania & Eterna 버전: 센터세컨드와 고정 베젤이 특징이며, 전쟁 후 민간에 배포
1차대전 당시 체코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지배를 받았으며, 징집된 체코 병사들은 러시아와 싸우다 포로가 되었다. 체코 독립운동 지도자 토마스 마사리크(Tomáš Garrigue Masaryk)는 연합군 편에 서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맞서 싸우는게 독립에 유리하다고 판단하여 러시아를 설득한 끝에 러시아제국 내 연합군 소속의 체코군단을 창설하였다.
체코군단은 1914년10월 최전방인 갈리시아 전선에 배치되어 전투를 시작한다. 이 전투는 전선의 길이만 400km에 2백만명의 병사가 싸워 1차대전 중에서도 손에 꼽이는 규모의 큰 전투였다.
그런데 1917년3월에 러시아혁명이 시작되고, 1918년3월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과의 협상에 따라 러시아가 전쟁에서 이탈하자 러시아군에 속해있던 체코군단은 더 이상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싸울 수 없는 처지가 된다. 그리고 곧바로 러시아 전역은 1천2백만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내전에 휩싸이게 된다.
이에 마사리크는 체코군단에게 내전에 휘말리지 말고 서부전선으로 이동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프랑스 육군 내에 있는 2개 연대 규모의 체코군이 여전히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싸우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과 합류하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연합군이 체코군단을 데려오기 위해 러시아 북부 항구에 배를 보낸 작전은 실패하고, 독일군을 뚫고 서부전선으로 이동할 수도 없는 상황이 계속되었다. 이에 체코군단은 동쪽으로 지구 한바뀌를 돌아 전선에 합류하는 계획을 세웠고, 6만여 명의 병력이 수백량의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블라디보스토크로 이동하였다. 말 그대로 설국열차였다.
1918년7월, 체코군단은 블라디보스토크를 점령하고 이 항구를 연합군 선박에 개방하고 배편으로 서부 전선을 향해 차례차례 출한다. 그런데, 조금은 허무하게도, 1918년11월11일 독일이 항복하면서 1차대전이 종결되었다.
1918년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이 멸망하자 연합군은 1차대전 중 체코군의 기여 등을 고려하여 체코슬로바키아의 독립을 인정한다. 그리고, 지식인들이 외교를 이끌고 군단이 전쟁터에서 활약하여 얻은 체코슬로바키아의 독립은 당시 식민지배를 당하고 있던 모든 약소국들의 롤모델이 되어 우리나라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
1920년, 블라디보스토크에 남아있던 나머지 체코군단은 배편이 아닌 시베리아 횡단철도로 귀환한다. 이 과정에서 체코군단은 철수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북로군정서에게 무기를 팔았고, 이렇게 얻은 무기가 결정적 역할을 하여 1920년 6월의 봉오동 전투, 10월에는 청산리 전투에서 우리 독립군이 일본에 승리한다.
체코군단과 우리 독립군간의 무기거래는 단순한 경제적 거래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엔 일본의 감시와 방해가 워낙 심했고, 러시아 제국이 멸망하면서 화폐는 휴지조각이 되버리는 바람에 마땅한 거래수단도 없었기 때문이다.
청산리대첩의 주역 중 한 분인 이범석 장군은 회고록에서 "체코군단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식민통치 아래서 겪어온 노예 상태를 떠올리며 우리에게 연민을 표시했고, 갖고 있던 무기를 우리에게 팔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독립군이 체코군단으로부터 사들인 무기는 박격포 2문, 기관총 6정, 소총 1,200정, 탄약 80만발이었는데, 얼마를 주고 샀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1920년대 초 체코슬로바키아 골동품 시장에서는 당시 무기대금으로 받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의 금비녀, 금반지, 비단보자기, 심지어는 놋쇠 요강 등이 나왔다는 기록이 있다.
1차대전의 결과 어렵게 독립을 쟁취한 국가답게 2차대전 직전인 1938년 기준으로 체코군(당시에는 체코슬로바키아)은 중부 유럽에서 독일군 다음으로 강한 군대를 유지하고 있었다.
동부 유럽의 2인자였던 폴란드군과 비교해보면, 육군은 규모가 거의 비슷했으나 질적으로 압도적이었고, 폴란드 공군력은 체코 공군력의 30%수준에 못미칠 정도였다고 한다. 전차의 경우도 독일 육군을 능가하는 수준이었다. 여기에 프랑스와 동맹을 맺어 나치 독일을 쌍방향에서 압박할 수 있었고, 필요하다면 독일군과의 1:1전쟁도 가능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1938년9월30일, 어떻게든 전쟁을 피하고 싶었던 영국과 프랑스가 동맹이었던 체코를 배신하고 히틀러의 요청에 따라 체코 영토의 30%와 5백만명의 인구를 나치 독일과 주변국들에게 양도한다.
뮌헨협정이라 불리는 이 사건을 계기로 체코는 독일 접경지역의 주요 전략적 요충지를 뺏기고 내부적으로도 분열하여 국가 방위능력을 상실했으며, 6개월 뒤인 1939년3월에는 나치 독일에 완전히 병합된다. 이후 9월에 독일은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
전쟁이 발발하기 전인 1938년에 체코 공군 조종사들은 Longines이 제작한 시계를 지급받았는데, 1939년에 독일군의 점령이 시작되고 국가가 해체되자 모두 프랑스를 거쳐 영국으로 탈출한다. 그리고 1차대전에도 그랬듯이 체코군이 다른 국가의 군대에 편입되어 조국 독립을 위해 싸우는 상황이 벌어진다.
88명의 체코인과 2명의 슬로바키아인으로 구성된 체코 공군 파일럿들은 1940년8월29일 RAF 312비행중대로 편성되어 영국 공군이 제공한 Hawker Hurricane과 Supermarine Spitfire을 타고 독일군과 싸웠다. 이들의 중대코드는 DU였다.
312 비행중대는 60여 차례의 공중전에서 9명이 전사하였으나, 굉장히 공격적인 전투 스타일로 유명했다. 특히 312중대의 Josef František는 단독으로 30대 이상의 적기를 격추하여 영국 공군 최고 기록을 세웠다.
2001년에는 《Dark Blue World》(Tmavomodrý svět)라는 영화로 이들의 이야기가 제작되었으며, 당시 체코 조종사들이 착용했던 시계가 바로 Majetek이었다.
즉, Majetek은 단순한 군용 시계가 아니라, 체코 공군과 독립운동의 상징적인 시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