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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는 ‘워킹맘’이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 인사팀에서 6년간 재직하다 프랑스로 이직한 한국엄마 이야기

by Loa Jan 24. 2025


“워킹맘? 프랑스에서 그런 표현은 존재하지 않아.”

- 프랑스인 상사와의 미팅 중



대학 졸업 후 한국에서 약 6년간 외국계 인사팀에서 일했다. 다른 젊은 친구들처럼 커리어를 위한 성장과 앞으로 펼쳐질 미래를 위해 열심히 달렸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게 되었다.


과거 프랑스 유학시절 서울대에서 교환학생으로 온 하우스메이트 언니가 ‘남녀평등’ 관련한 연구보조를 하다 교수님께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남녀평등, 이 단어 자체가 너무 지루하게 느껴집니다. 교수님, 저는 여자이지만 살면서 남녀가 불평등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이 단어 자체가 이제는 변화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 깊게 공감했었다. 서울에서 태어나 파리에서 공부하고 있는 나에게 남녀평등의 주제는 너무 구닥다리의 것이었다. 내가 여자라는 이유로 불평등을 느낀 적도 없었고 적어도 내가 사는 선진화된 오늘날의 한국에서는 그런 불평등한 일을 크게 마주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런데 결혼하고 아이를 계획하니, 나를 둘러싸고 있는 한국이라는 거대사회가 나에게 말한다.


<< 남편 육아휴직? 실제로 여자들은 은근히 그러려니 봐주지만 남편들이 쓰잖아? 무조건 승진 누락이야. 너 인사팀이니까 잘 알잖아? >>


<< 아이는 엄마가 봐야지. 적어도 3년은 엄마가 아이를 케어하는 게 맞아. EBS 다큐 못 봤니? >>


<< 자! 연! 분! 만!, 모! 유! 수! 유! >>


<< 워킹맘의 삶이 얼마나 힘든 줄 알아? 나는 아직도 내 아이에게 죄책감을 느껴. >>


<< 육아휴직 풀로 쓸 수 있는 직장이 최고지. >>


<< 남편이 일 그만둬도 된대. ㅎㅎㅎ 이제 아이와의 시간에 전념하려고. >>



나는 아직도 한국이 남녀가 평등한 사회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나는 인사담당자이기에 6년 동안 우리 조직을 볼 때 여자라는 이유로 남자보다 임금을 덜 준다거나 승진을 불리하게 하는 등의 차별은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우리 회사가 전문직이 많은 회사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남성을 우대해서 채용 프로세스를 밟아 본 적 또한 없다.


그러나 나의 20대와 30대 초반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여성’으로서 마주하고 있는 나를 둘러싼 ‘거대사회’가 실제로 어떤 것인지 알지 못했다. 실제로 미혼 여성인 나와 가족을 이루고 엄마가 되는 여성의 나는 ‘마주하는 거대사회‘가 그야말로 다른 것이었다.


<82년생 김지영이 아닌 89년생 내가 느꼈던 엄마사회>

워킹맘 = 좀 불쌍함 (남편 경제적 능력이 안되나?)

전문직 워킹맘 = 엄마가 커리어를 생각하는 건 좀 아이에게 미안해야지

한국 엄마 = 아이를 위한 희생의 아이콘

아이를 위한 것 = 가장 최고의 것

아이교육 = $$ 비싼 게 좋은 것 / 강남서초맘 루트 go!!



1년의 육아휴직 기간 중, 나는 내 품 안에 있는 작은 천사와 함께 ‘천국’과 ‘절망의 늪’을 왔다 갔다 했다. 건강하게 정말 감사하게 나에게 와준 나를 닮은 나의 사랑, 그러나 거대 사회의 끊임없는 압박 속에서 마음속 깊이 자리 잡은 나를 뒤흔드는 그 알 수 없는 불안감은 나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절망의 감정과 혼돈이었다.



아이를 낳고 생각해 보니 ’ 유리천장‘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왜 우리 회사 여성 전문직들이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면 커리어를 포기하는지, 그리고 조직 전체적으로 여성 근로자들 수가 남성보다 높지만 임원직으로 갈수록 높은 자리는 여성보다 남성의 비율이 훨씬 높은지..


육아휴직이 끝날 무렵, 나는 여러 계기와 기도로 마음을 다 잡으며 재직하고 있던 회사 본사 인사팀 자리에 지원하게 되었고 기회를 얻어 한국을 떠나 프랑스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 날 프랑스인 상사와의 미팅시간이었다.

나의 바로 직속 상사되시는 분은 회사 인사본부에서 가장 높은 CHRO 직책이시다. 내가 입사할 무렵 팀 내에 3명의 여성직원들이 육아휴직에서 복귀했다. 팀원들에 대해서 얘기하다 내가 ‘워킹맘’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상사가 말했다.


“워킹맘? 프랑스에서 그런 표현은 존재하지 않아.”


생각해 보니 나도 영어 단어를 그대로 말했고, 이를 말하기 위한 불어로 생각나는 단어가 없다.


“프랑스에서는 일하는 아빠, 일하는 엄마를 따로 구별하지 않아. 왜냐면 모두가 당연히 일하거든. “


아, 나는 워킹맘이 구별되는 단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그렇다고 부정적이거나 무언가를 구분되게 생각한 것은 아닌데.. 오히려 HR적으로 아이가 있는 엄마직원들을 배려하는 정책이나 시스템을 생각했었는데.. 생각해 보니 우리가 워킹파더라는 말을 잘하지 않네?



“과거에 프랑스도 여자들이 집과 아이들을 돌보고 때로는 일하는 엄마들을 좋지 않게 보는 시선도 있었어. 지금은 다르지. 내 아내도 아직 일하고 있어. 나는 내 딸이 결혼한 후 일을 포기하는 걸 절대로 원치 않아. 사람일은 모르는 거야. 나중에 내 딸이 이혼을 원할 수도 있고 남편이 원치 않는 사고를 당할 수도 있지. “


공감을 했다. 나도 딸이 있다면 내 딸의 인생을 누군가의 인생에 거는 도박을 하고 싶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프랑스는 부모님이 아이를 대신 케어해 주는 시절도 거의 끝났어. 옆에 A직원의 아이는 생후 5개월이야. 지금 크레슈(어린이집)에 있지. “


보통 프랑스는 출산휴가를 3개월 정도 (엄마 3, 아빠 3) 쓰고 4-6개월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낸다.


한국에 있을 때, 기존 회사로 복직하면 당연히 부모님 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린이집 픽업, 아이가 아플 때 등등.. 우리 부부도 프랑스에 부모님이 계시지 않으니 온전히 나와 남편 둘이서 일과 육아를 감당해야 한다. 우리 아들은 프랑스에 와서 14개월쯤 어린이집 자리가 생겼고 지금은 어린이집에서 10시간 정도를 보내고 온다. 그런데 어린이집에 있는 아이들이 대부분 이 정도의 시간을 어린이집에서 보낸다. (회사들이 후원하는 사립 어린이집이라 더 그럴 수도 있다.)


한국에 있을 때는 엄마인 나에게 쏟아져 내려오는 육아에 대한 압박감과 죄책감에 힘들었는데 프랑스에 오니 여자 동료들은 죄책감이 1도 없다. 왜냐면 모두가 이런 생활이 너무나 당연하다.


1년간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귀하니,

전혀 다른 거대사회가 나를 맞이하고 있다.


남자도 여자도 일을 절대 포기하지 않는 나라,

나는 지금 프랑스 인사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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