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남들보다 어릴 때 기억이 선명하게 남아있는 편이다. 다들 그런 줄 알았는데 사람들이랑 얘기하다 보니까 보통 아주 어릴 때의 기억은 다 잊어버렸다고 한다. 내가 아주 어릴 때 봤던 만화영화를 선명하게 기억하는 것 때문에 알게 됐다. 학교선배들, 회사선배들이 나이 속인 것 아니냐고 그러더라. 알고 보니 나는 어릴 때 사건들이 단편적으로 많이 기억나는데 대부분의 지인들은 아니라고 했다. 나는 선명한 기억들이 많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내가 기억력이 좋아서? 꼭 그런 것 만도 아닌 것 같은데. 이유는 모르지만, 그래서 나는 더 괴로운 것 같기도 하다. 그냥 잊어버렸으면 좋으련만.
나의 첫 번째 기억은 아주 웃긴 기억이다. 몇 살 인지도 모르겠다. 어른들이 뽀뽀하라고 시킨 것 보면 아주아주 어렸을 때겠지? 내가 싫다고 말했는데 자꾸만 어른들이 뽀뽀를 하라고 시켰다. 그래서 나는 다시는 못 시키게 하려고 일부러 침을 할 수 있는 한 한껏 뱉어서 어른들 볼에 잔뜩 묻혀버렸다. 어린 마음에 그러면 안 시키겠지? 한 것 같다. 이게 왜 기억나는지. 그냥 웃긴 기억으로 갖고 있다.
나의 두 번째 기억은 아주아주 선명하다. 4살 때였던 것 같다. 어머니가 내생에 처음으로 나를 집에 혼자 두고 외출했다. 나한테 "이거 다 보기 전에 엄마 올게"하고 말해서 "네"했다. 어머니가 틀어준 건 디즈니 피노키오 비디오였다. 피노키오가 바다에서 뗏목 같은 것을 타고, 고래의 모습까지도 장면이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그러나 비디오가 끝나도 어머니는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비디오를 되돌려서 재생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엄마가 금방 오겠지? 하고 되돌려서 다시 봤다. 두 번을 다시 봐도 오지 않아서 작은방에 들어가 울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돌아온 기억이 난다.
어머니에게 말했더니 본인은 전혀 기억이 안 난다고 한다. 그렇게 어린애를 혼자 두고 외출할 일이 없단다.
6살 때인가? 몇 살 때인지는 모르겠다. 내 오른쪽 광대에는 일명 담배빵이 있다. 아버지는 가해자를 그냥 보내버렸다. 이건 기억이 선명하지는 않고,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만 기억났는데 내가 18살 때쯤인가 어머니가 내게 자세히 말해줬다. 길에 서있었는데 어떤 아저씨가 앞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손을 내렸는데 하필 그 위치가 내 볼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어머니가 연고값이라도 받으려고 뭐라 하려고 했는데 그 사람이 사과하니까 아버지가 먼저 괜찮다고 가라고 했다는 것이다. 평소 아버지가 가족보다 다른 사람들 심지어 쌩판 모르는 남까지도 먼저 배려하고 생각하는걸 생각하면 충분히 그랬을 법 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자기는 절대 그랬을리가 없단다. 갑자기 나를 위하는 척 "그런 놈이 다 있어! 어디 우리 이쁜 딸 얼굴에!" 하면서 연기까지 하더라. 기가 찼다.
팔꿈치에도 일명 담배빵이 있다. 초등학생 때 아버지가 피던 담배에 지져진 흉터다. 이건 아주 선명하게 기억나는데 할머니댁에서 아버지랑 나랑 또 언성이 높아졌다. 내용은 기억이 안 나는데 아마 또 아버지 뜻대로 내가 그대로 하지 않아서 그랬을 것이다. 할머니가 너도 자식한테 똑같이 당해보라며 고소하다고 한 말까지 기억난다. 아버지는 또 항상 으레 하던 짜증 섞인 한숨을 쉬고 나가버렸다. 아버지는 마당 한편에 있는 거울을 보면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는데 나는 마당을 지나야 있는 화장실을 가기 위해서 아버지 뒤를 지나갔다. 그때 아버지가 갑자기 뒤돌며 팔을 들면서 담뱃불에 팔꿈치가 닿고 말았다. 나는 아직도 선명히 기억난다. 그때 아버지는 내게 단 한 마디 사과도 하지 않았다. 나중에 흉터를 보여주며 "아빠 담뱃불에 이렇게 됐잖아" 하니 그런 일은 없었단다. 그럴 리가 없단다. 그럼 이 흉터는 뭘까요. 하긴 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내가 성인이 돼서도 여전히 내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심지어 집안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는 걸 보면 놀라거나 미안했을 리가 없다.
아버지는 내게 자꾸 무시, 강요, 참견을 하고 나는 또 고집이 좀 있는 성격이라 자주 언성이 높아지고는 했다. 그러다가 아버지는
"너 같은 건 없었어야 한다."
"너 같은 건 다른 형제가 있어서 찬밥신세가 돼봤어야 한다."
"이런 건 내 딸도 아니다"
"(2차 성징온 딸에게) 발가벗겨서 밖에 내쫓아버려야 된다."
"넌 내 소유물이다. 그러니까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해야 되는 게 너다."
와 같은 폭언을 쏟아내기도 했다. 당연히 아버지는 저런 말들을 한 적이 없다고 했다. 말한 건 기억 안 나지만 내가 당신의 소유물인 건 맞다고 대답했다. 저런 대화가 오갈 때마다 어머니는 분명히 항상 옆에 있었는데, 어머니는 언제나 방관자였다. 어머니에게 왜 저런 말 듣는데 가만있었냐고 물어보니, 역시나 기억이 전혀 안 난다고 한다. 그런 말까지 들은 줄 몰랐단다.
이 답답함은 정말 겪어본 사람만 알 것이다. 아버지와 만나지 않기로 한 후에 힘든 마음에 이런저런 검색을 해보다가 '오은영의 화해' 책을 알게 되었다. 바로 구매해서 읽고 나서야 그제야 알게 됐다. 내 마음이 갈 곳을 잃었던 이유, 지금의 고통의 이유, 내가 지금 이래도 되는구나, 내 아이가 나처럼 클까 봐 내가 내 부모처럼 할까 봐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하는 마음의 지지까지. 이 책에서 말하는 화해는 부모님과의 화해를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부모님을 미워해도 되는지, 부모님에게 이렇게 해도 되는지, 내가 왜 이러는지 나 스스로를 미워했던 나 자신과 화해하라는 것이었다.
야산을 오르다 보면 사람들이 많이 밟고 지나간 곳에 길이 나요. 뇌의 신경회로도 그래요. 부모와의 관계에서 나쁜 쪽으로 지름길이 뚫려버린 사람은 부모와의 기억 대부분이 좋지 않아요. 나쁜 기억들은 더 강하고 깊게 기억에 남습니다.
대화의 핵심은 그런 기억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에요. 그게 정말 있었던 일이든 자식이 왜곡해서 느꼈든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니에요. 자식이 마음이 아팠다고 말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기억이 없다고만 한다면 그 부모의 수준이 거기까지인 겁니다. 진정하고 진실한 대화를 할 준비가 안 되어 있는 거예요.
기억은 주관적이구나. 그리고 그들은 사과할 생각이 전혀 없구나. 있었다면 기억했겠지. 아니 기억을 못 하더라도 사과했겠지. 아니 적어도 내 마음을 물어봐 줬겠지. 아니 그럴 거라면, 애초에 평소에도 내 마음을 물어봤겠지. 이건 내 노력과 관계없이 불가능한 일이구나. 이제 나는 그들의 인정과 사과와 화해 같은 것은 기대하지 말고 온전한 내 삶을 살아도 되겠구나.
드디어 그 답답함이 해결되고 나니까 분노와 상처로 힘들었던 마음이 조금 누그러졌다. '화해' 책을 내줘서 너무 감사하다고 오은영 박사님께 큰절을 수백 수천번 하고 싶다. 이 책이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도 매일밤 혼자 몰래 눈물로 밤을 지새우고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