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가 넘쳐나는 요즘, 부모를 내 삶에서 도려내면서 이리저리 방황하다가 나르시시스트라는 것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것은 완벽히도 우리 아버지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리고 모든 콘텐츠에서 말하고 있었다.
나르시시스트를 만나게 되면 지금 당장 그 사람에게서 도망치세요
내가 미성년자일 때 빨리 이런 내용들을 알았다면 좋았을 텐데. 그랬다면, 집과 가까운 대학교에 붙어서 난 효자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텐데. 지방에 있는 캠퍼스든 지방에 있는 과학기술대학교든 어딘가로 도망쳤을 텐데. 아니 성인이 되서라도 알게 됐으면 덜 힘들었을텐데. 난 몰랐다. 세상 모든 아버지들은 다들 이런 줄 알았다.
내게는 평생을 쫓아다닌 자존감 도둑이 있었다.
95점 맞은 1등 한 딸에게 "실수를 도대체 왜 하니? 실수는 하는 게 아니다."
정말 많이 찾아보고 많은 고민 끝에 결정한 딸에게 "네가 대체 뭘 아냐. 이런 게 있는데 네가 알긴 하냐."
무엇이든 본인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하면 "내 딸답지 않게, 너답지 않게 행동한다. 왜 그러냐"
아버지는 피할수도 없는 자존감 폭파지뢰와 같았다.
나는 내 노력에 대해서도 결과에 대해서도 칭찬을 받아본 적이없다. 부모님의 친구들이나 지인들에게 나를 자랑하는 것을 들어본 적도 전해들은 일도 없다.
겸손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겸손이라기엔 뭐가 되었든 잘 못해요~라고 대답했다. 알고보니 보통의 부모들은 자식자랑을 못해서 안달이더라. 우리부모님은 내게 자랑할 거리가 없었던 걸까.
마주칠 때마다 내 모든 모습들을 지적했다. 피부상태, 머릿결, 내 몸의 점, 살이 쪘는지 빠졌는지, 자세, 머리스타일, 옷스타일, 화장 등등... 지적한 부분들이 개선되도록 노력하거나 도와준 적은 없었다.
그저 좀 더 본인 마음에 들 때면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하니까 좀 낫네."
그리고는 학교성적, 공부법, 자세, 말투 무엇이든 걸리는 것에 대한 지적을 다시 시작했다. 사실 평소에 TV 보면서도, 어딜가서도 무엇이든 불만이 많은 사람이었다. 본인과 조금만 달라도 이해가 안되느니 말도안되느니 하는 말을 입에 달고사는 사람이었으니 자식에 대해서도 전부 다 불만이고 이해가 안됐던 모양이다.
본인말에 논리적으로 반박하면 무조건 본인말만이 정답이었다. "네가 뭘 아냐.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라. 어디서 말대꾸냐. 넌 그냥 네 하면 되지 성격이 이상하다. 넌 내 소유물이다. 그러니 내 말대로 해라. 내가 인생을 더 살았으니 내가 더 잘 안다." 이런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
내 고민, 힘든 점을 이야기하면 "네가 잘못해서 그렇다. 네가 처신을 똑바로 해라. 고작 그런 걸로 그러냐." 당시엔 왜 화가 났는지 몰랐는데, 곱씹어보니 화날만했다. 내가 저런 말 듣고자 꺼낸말은 아니었으니. 무엇보다 부모가 내편이 아니라는 사실에 화가 났던 게 아닐까.
힘들어서 얘기해도 돌아오는 말이 저랬으니 나는 평생 힘들 때 기댈 사람이 없었다. 어머니가 있지 않았냐고? 어머니는 어땠냐면 인생조언 같은 것을 평생 내게 해준 적이 없었다. 요즘 드는 생각은 차라리 자존감 도둑이어도 본인 인생토대로 조언이랍시고 말해줬던 아버지가 더 나은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내가 저럴 때 화를 내면 그만하라고 말리는 사람이었다. 오히려 내가 어머니의 토로를 들어주는 사람이었다. 반대로 내 얘기를 하면 어머니는 잘 듣지 않았다.
사람 헷갈리게 본인 기분이 좋을 때면 똑똑한 우리 딸, 똘똘한 우리 딸, 이쁜 우리 딸 하고 부르던 사람. 이 모든 게 나의 기억 속 아버지였다. 아버지가 이렇듯 내게 하던 말들 중에서 내가 제일로 싫었던 말은 '너답지 않게'였다. 대체 나다운 게 뭘까. 아마도 아버지가 원하고 그리는 모습이었겠지. 진짜 내 모습이 아니라.
하필이면 부모라서 끝없이 바보처럼 인정과 사랑을 갈구했던 것 같다. 아무리 멍청한 짐승도 몇 번을 불에 데고 나면 다시는 불가까이 다가가지 않을 텐데. 나는 멍청하게도 또 잊고 또 잊고 다시금 기대를 했다.
아버지도 부모가 처음이라서, 아버지는 당신의 아버지의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불쌍한 사람이라서 내가 이해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부모니까 그래도 자식이니까 좀 달라지지 않을까. 나를 인정해 주기를 끝없이 포기하지 못했던 것 같다. 마지막까지도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있었나 보다. 조금만 내게 잘해주면 아 좀 달라지려나보다. 아버지도 이제 나이가 들어 변하려나보다. 그런 멍청한 기대를 품고 실망하기를 반복했다.
나는 크면서 이리저리 변했기 때문에 아버지도 변할 줄 알았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게 내 인생의 가장 큰 오판이었다.
금쪽같은 내 새끼를 즐겨본다. 그곳에 나오는 아이들에게 문제가 있지만, 오은영 선생님은 아이들을 지적하기보다 부모의 문제를 짚어주거나, 부모의 원부모까지 거슬러 올라가 보고 상처를 보듬어주는 부분들이 너무 좋았다. 나는 나도 모르게 거기서 오은영 선생님에게 위로를 받고 있었던 것 같다.
남편은 아이에게 문제가 있는데도 자꾸 부모에게 끝없이 노력하고 완벽한 부모가 되라고 하는 것 같이 느껴져서 보기가 싫다고 하지만, 나는 그런 부분이 너무 좋았다. 아이의 문제는 결국 부모가 노력할 수 있는 부분이라는 것. 부모의 잘못된 부분 때문에 생기기도 한다는 것. 평생을 내가 잘못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고 해주는 것 같아서 좋았나 보다.
그리고 거기 나오는 많은 아이들이 부러웠다. 부모가 바뀌어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아서. 그 부모의 아이들이 너무 부러웠다.
특히 형제가 나오는 편이 있었는데, 중학생 첫째가 마치 내 어릴 때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억압적인 아버지와 비난하는 어머니. 심각한 무기력증. 그래도 나는 그 아이가 부러웠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바뀌려고 노력하니까. 그러려고 이 프로에 출연했을 테니. 아버지가 아이에게 "힘들었니"하고 말하는데 내가 눈물이 났다. 나는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그 말. 그게 너무 부러워서. 너무너무 부러워서.
자신이 틀렸다고는 절대 생각하지도 않고 인정하지도 않는 아버지. 자존감도둑을 더 이상 만나지 않게 된 것이, 이렇게 된 게 차라리 잘됐다고 매번 생각하면서도 아쉽고 슬픈 건 어쩔 수없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