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가족인 줄로만 알았다
아이의 우주는 부모
나는 우리 가족이 평범한 가족인 줄 알았다. 으레 다른 가족들도 다 이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냐면 TV에서 농담 삼아 나오거나 하는 모습 중에 우리 가족의 모습도 있었고, 그래서 많은 부분들에 공감도 됐기 때문이다.
은연중에 마음속에선 아니란 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부모님의 직업은 좋은데 왜 그리 지독히도 가난한지, 왜 아버지는 본인만 생각하는지, 왜 어린 내가 부모님을 챙겨야 하는지, 왜 대화가 전혀 통하지 않는 것만 같은지, 왜 나는 부모님에게 자꾸 숨기고 거짓말을 하는지, 왜 항상 나보다 허례허식이 더 중요한지 나는 잠시 의심했지만 그 의심을 더 키우지 않았다. 그냥 으레 우리 집은 그래도 평범하고 나름 화목한 가족인 줄로 알았다. 가정폭력을 하는 것도 아니고, 주폭을 하는 것도 아니고, 웃기도 했고, 여름엔 가족여행도(항상 불평만 쏟아놓은 아버지 때문에 그다지 즐겁지는 않았지만) 갔으니까.
이전글에서 써 내려갔듯이 어린 시절의 나는 내가 행복하다고 느끼지를 않았었다. 매우 자주 기분이 상하고 짜증이 나고 이상하게도 도저히 집에서는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한편으로 내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자꾸 숨기고,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것도 내가 나쁜 아이라서 그런 줄로 알았다. 아버지가 밖에서는 가면을 쓰고 점잖은 사람으로 보이는 탓도 있었고, 어머니가 아버지와 내가 언성을 높일 때면 내게 꼭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었다. "너는 그냥 네 하고 넘기면 안 되겠니?" 아버지는 한숨을 푹 쉬면서 이렇게 말했다. "넌 성격이 왜 그러냐. 어디 어른한테 말대답이냐. 넌 왜 그렇게 성격이 이상하냐."
게다가 왜 그렇게 변했는지 모르겠지만, 초등학교 3, 4학년쯤부터 나는 매우 소심해졌다. 무엇이든 불만도 가득해졌다. 희미한 기억 속을 더듬어보면 그 이전에는 그렇게까지 소심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말이다. 그래서인지 대인관계는 내게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학교에서 학급 친구들과 잘 지내는 일이 내게는 참 어려웠다. 난 그것이 내가 외동이라서 그런 줄 알았다. 지금은 외동인 것이랑은 전혀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중학교 때 마음 맞는 친구들을 만난 것이 참 다행이었다. 처음으로 운이 좋아 학년이 올라가도 그중 두 명이 같은 반이 된 것도 다행이었다. 그것이 이어져 고등학교 진학 후에도, 성인이 되어서도 심지어 지금도 종종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 그 친구들이 아니었다면 난 더 우울하고, 음침한 아이가 됐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성인이 되기 전 세상에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찌 되었든, 학창 시절 대인관계의 어려움까지 겪으니 나는 내 성격이 이상하다고, 내가 이상한 사람이라고 믿고 살았다.
성인이 되어서 많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살다 보니까 내가 그렇게 이상한 사람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오히려 칭찬도 많이 듣고, 주위의 좋은 사람들한테 배울 점도 배우면서 변해가니 나는 꽤나 괜찮은 사람이 되어있었다. 사실 나는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사랑받고 자란 사람들처럼 하고 싶어서. 사람들과 지내다 보면 사랑받고 자란 티가 나는 사람들이 있다. 항상 자신감이 있고, 누구와도 잘 지내고, 거리낌 없이 베풀 줄 아는. 나 외의 타인을 아주 자연스럽게 잘 챙기는 사람들 말이다. 그것이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아서, 주변에 알아서 사람들이 모이는 사람 말이다.
하지만 집에만 가면 아버지에게 나는 생각 없고, 멋모르고, 버릇도 없는, 성격이상한 자식이었다. 서른 가까이 되어도 나는 아버지에게 그런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내겐 자신감이 없었다. 소심한 성격을 버리고 싶어서 밴드동아리 활동까지 했는데도, 그래도 나는 자신이 없었다. 극심하게 소심했던 부분들(예를 들면 배달 전화조차 하지 못하는 것, 음식점에서 종업원을 부르지 못하는 것, 버스벨을 눌렀는데도 정차하지 않아서 큰소리로 정차해 달라고 소리치지 못하는 것,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따지지 못하는 것 등)은 고쳤지만 그래도 나는 왜인지 자신이 없었다.
세간에 자식은 몇 살이 돼도 부모에겐 아이라는 말이 있다. 괜히 그런 말 때문에 나는 아버지가 나를 그런 취급하는 것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러지 말았다면, 내 자존감이 조금은 괜찮았을까.
우리 집이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은 것은, 아니 인정하게 된 것은 지금의 남편과 결혼하게 되면서였다. 아이는 태어나면 자신의 가족이 세상이 된다. 아이의 우주는 부모이다. 으레 세상은 우리 가족과 같다고 믿게 되는 것이다. 살면서 다른 가족을 자세히 들여다 볼일은 없다. 내가 그 집에 가서 사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다른 가족의 모습을 자세히 보게 되는 일이 발생하게 된 것은 결혼준비를 하면서부터였다. 남편가족을 보고 있자니 우리 가족과는 뭔가 많이 달랐다. 남편은 항상 내게 가감 없이 솔직했는데, 그 이유는 가족에 있었다. 부모님과 남편은 무엇이든 솔직하게 대화했다. 뭐든 숨기는 나와는 달리 남편은 부모님께 숨기는 것이 없었다. 예비시부모님은 항상 아들의 상황, 아들의 안위, 아들의 마음을 먼저 걱정했다. 우리 아버지는 본인의 상황, 본인의 생각, 본인의 마음을 먼저 걱정했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이혼할 생각이 없으니 더 이상 내편을 못 들어준다고 했다.
게다가 앞서 서술했다시피 남편은 솔직한 성격이라서 가감 없이 내게 계속 말했다. 우리 집은 뭔가 이상하다고. 나는 화를 냈다. 인터넷에서 본 고부갈등 글들에 보면, 남편들이 꼭 하는 말이 있다. '우리 엄마는 안 그래.' 결혼준비를 하면서 반대로 내가 그 비슷한 언행을 했다. 저 남편들은 진짜 안 그런 줄 아는 게 아니라 은연중에 알면서도 안 그럴 거라고 믿고 싶은 거다. 그래야 우리 가족은, 우리 엄마는 이상하지 않고, 괜찮은 가족이 되니까. 괜찮은 가족이어야 하니까. 본인의 아내가 '그렇구나 안 그러는구나.' 하고 인정해야지 갈등이 없을 테니까. 저 남편들은 나처럼 회피형 불안을 갖고 있을 것이다.
결혼식을 끝마치고, 나는 마침내 깨달았다. 우리 가족은 평범하지도 화목하지도 않구나. 드디어 인정했다. 나는 평생을 참아왔다. 나를 무시하고, 내려다보고, 묵살하고, 존중하지 않아도 그래도 내 아버지니까 참아왔다. 물리적 폭력을 내신체에 가한 적 없던 아버지가 내게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단 한 번도 물리적 체벌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아버지가 괜찮은 아버지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하게 되니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나와 함께 내 남편도 묶어서 존중이라고는 없이 마주치자마자 자신 마음대로 휘두르려 하고, 단순히 본인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심지어 나중에 남편과 내 지인들은 그러니까 대다수의 사람들은 너무 좋았다고 칭찬한 부분이었다.) 우리를 주차장 앞에 세워놓고 왜 그렇게 했냐고 꾸짖는 모습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좋은 날이니 아버지도 어머니도 항상 원하던 모습으로 최대한 좋게 네네 하며 넘겨야지 했던 마음이 그냥 그대로 깔끔히 증발해 없어져 버렸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칼을 꺼내 들고 병변을 도려내기로 마음먹었다. 마음먹은 것을 실제로 말하기까지 너무 가슴이 아팠다. 그래도 아이에게 부모는 세상이니까. 우주 그 자체이니까. 부모는 부모니까. 도저히 도려낼 수 없을 만큼 너무 힘들었다. 그래도 도려내야 했다. 남편도 나처럼 참으라고 하고 싶지 않으니까. 언젠가 태어날 내 아이가 어린 시절의 나처럼 자존감 깎아먹는 말들을 듣게 두고 싶지 않으니까. 그렇게 나는 큰 결심을 했다.
더 이상 내 인생에서 아버지를 만나지 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