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좋았던 기억도 있다. 이 글은 쓸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다. 이 글을 적으면서 좋았던 일들을 떠올리다 보면 내 마음이 약해질까 봐. 문득 약해진 마음에 눈물 흘릴까 봐. 다시 잘 지내보자고 해버릴까 봐. 그리고 또 똑같은 후회를 하게 될까 봐.
사실 어린 시절과 20대를 부모님과 한집에서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이 기억들 때문이었다. 이런 기억이라도 없었으면 희망을 갖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 좋았던 기억들 때문에 그래도 좋은 부모야.라고 위안을 했고, 나쁜 부분들을 자꾸만 잊어버렸다. 나를 불길로 뛰어드는 나방처럼 만든 것이 이 기억들이었다.
하지만 이젠 안다. 좋았다고 나쁜 게 없어지는 건 아니다. 그 나쁜 부분을 내가 감당할 수 있느냐. 그것만 생각하니, 나는 이제 나를 존중하는 삶과 나의 가족(남편과 아들)을 지키는 삶을 살기로 그렇게 결정한 것이다.
아주 어릴 적, 그러니까 미취학아동이었던 시절 종종 아버지 차를 타고 아버지와 단둘이 남산타워에 갔다. 집에서 창문으로 남산타워가 아주 잘 보였으니 그다지 멀지 않아 종종 갔던 것 같다. 타워에 올라가지는 않고 남산타워 앞에서 주로 놀았던 같다.
집에서는 아버지가 문틀에 거는 그네 같은 것을 설치해 줘서 그네를 탔던 기억이 있다. 아주 가끔은 아버지가 다리로 비행기도 태워주었고, 아버지 손을 잡고선 아버지 몸을 타고 올라 철봉 돌듯이 한 바퀴 돌며 내가 재밌어했던 기억이 있다.
초등학생 때 이사 간 후로는 여의도가 가까워서 한강공원에서 함께 연을 날렸던 기억도 있다. 배드민턴을 알려준다고 해서 뒷동산에 올라가 배드민턴을 배운 기억도 있다. 항상 집에 돌아오는 길엔 기분이 상해있었던 것 같지만 말이다.
아주 드문 일이었지만 외식을 할 때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숯불고기를 먹었다. 아버지는 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사실 좋아한다고 하는 것도 조금밖에 안 먹는 분이지만) 조금밖에 먹지 않고 고기를 구워주었다.
아버지는 거의 대부분 내가 자고 있을 때 들어왔는데, 내 방에 들어와서는 뽀뽀를 하고 나가기도 했다.
오렌지주스를 아주 좋아하셨는데, 어느 날은 집에 들어와 주스를 마시더니 새로 산 오렌지 주스가 아주 진하고 맛있다는 것이었다. 엄마가 마트에서 사다 놓은 망고주스였다. 한참을 웃었던 기억이 있다.
이렇게만 보면 정말 좋은 아버지 아닌가. 그래서 나는 이 기억들을 마음 한편에 간직한 채 그래도 좋은 아버지야 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아무리 불합리하고, 아무리 화가 나도 그래도 나름 좋은 아버지야.라고 생각했다.
아버지 본인 기분이 좋은 날엔 싱글벙글 들어와 우리 이쁜 딸 우리 똑똑한 딸~ 할 때면 화났던 마음이 조금 누그러들면서 그래 아버지는 아버지의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방법을 모르실 뿐이야. 하고 내가 이해를 했더랬다.
어머니는 체력이 약하고 몸이 안 좋은, 힘이 없고 자주 아픈 분이었다.
아주 어릴 때는 어머니가 일을 나가지 않으셔서 집에서 튀김이라던지 탕수육이라던지 도넛이라던지 꽃게매운탕 같은 집에서 해 먹기 어려운 요리도 곧잘 해주셨다. 공부를 해서는 집에서 간단한 어린이 과학교실처럼 활동도 해주셨다. 일을 나간 후로는 이런저런 학원과 학습지를 시키셨다.
방학 때는 나를 데리고 방학숙제로 체험학습으로 여기저기 많이 데리고 다니셨다. 엄마랑 다니면 느리고, 덤벙대고 조금 답답했지만, 그래도 여기저기 많이 다니고 그냥 엄마라서 어디든 엄마를 따라가는 것도 좋았던 것 같다.
엄마가 내게 무관심하거나 내 얘기를 들어주지 않아 짜증이 나고 서운해도 결국 나는 항상 엄마에게 미안했다. 엄마는 몸이 약하고 나를 낳고 많이 아프게 되었으니 나는 항상 미안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의 지독히도 불합리한 행동들을 참고 사는 엄마가 너무 불쌍했다. 그래서 연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때로는 엄마 편 들어주는, 엄마의 얘기를 들어주는, 엄마를 챙기는, 엄마가 가고 싶은 곳에 같이 가 주는, 하고 싶은 것을 같이해주는 친구 같은 딸이 돼주었다. 어릴 땐 엄마가 친구 같은 엄마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내가 친구 같은 딸이 아니었을까.
그래,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가 세상에 어디 있을까. 아무리 그래도 핏줄인데. 우리 부모님도 나를 사랑하기는 하셨다. 방법을 모를 뿐. 방법이 잘못되었을 뿐. 그저 자식을 사랑하기는 했으나 그 사랑보다 본인이 더 중요했을 뿐.
오은영 박사님의 영상을 보다가 그런 말을 보았다.
부모는 자식을 사랑해요. 그런데, 자식은 부모를 더 사랑해요.
이 말을 듣는데 마음 한편이 울컥하는 것을 느꼈다. 나는 그저 부모님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부모님을 더 사랑했던 것이 아닐까. 너무 미웠지만, 그만큼 사랑했나 보다. 아니 사랑하니까 미웠다.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나에게 나쁘게 한다면 화는 나겠지만 마음에 상처를 입지는 않을 테니까. 그래서 더 슬픈 일이다. 보지 않아야 내가 행복하다는 이 사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