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죽어가던 나의 정서나무
사랑이란 게 나는 불가능한 줄 알았다
내 첫사랑은 무려 23살 무렵에 찾아왔다. 그 흔한 학창 시절의 첫사랑. 학창 시절의 짝사랑 같은 건 나에겐 없었다. 사랑이란 게 나는 불가능한 줄 알았다. 그 누구에게도 사람들이 말하는 사랑 아니 좋아하는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 누군가에게 그냥 계속해서 잘해주고 싶다고? 뭐든 해주고 싶다고?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고 심장이 뛴다고? 그런 게 가능할 거라고 믿지 못했다.
몇 번의 사랑, 몇 번의 설렘을 겪었지만 그래도 나는 말라죽어가고 있었다. 항상 재를 뿌려대는 탓에 내 정서나무는 자라나지 못했다. 그나마 죽지 않게 막은 게 아니었을까. 그러다 지금의 남편을 만나서 격동의 감정을 겪었다.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이 없었다. 우리는 결국 결혼을 했다.
사람의 마음속에 정서나무가 있다면, 나는 물도 해도 받지 못해서 말라 비틀어 죽어가고 있었다.
어느 정도였냐면, 학창 시절 한창 웃고 울 꽃다운 나이에 나는 잘 웃지 않았다. 중학생 때 만난 친구들이 아니었다면, 나는 말라죽어버렸을 것이다. 나는 내가 잘 웃지 않는지도 몰랐다. 한 학년이 끝나고 반에 롤링페이퍼를 돌렸는데, 그때 알았다. 많은 아이들이 처음에 내가 너무 무서웠다고 했다. 너무 무표정이라서. 재밌는 얘기를 해도 잘 웃지 않아서. 내가 그렇게까지 안 웃는지 나는 몰랐다. 그 후로 사람들과 만날 때 조금 억지로라도 웃는 습관이 생겼다.
중학생 때 만난 그 친구들이 너무 고마운 것은 내가 연락을 잘하지 않아도, 약속에 잘 나가지 않아도 결국 내 생각이 날 때면 연락이 닿아서 인연이 유지되었다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학창 시절 나를 정말 많이 챙겨준 참 고마운 친구가 있는데 사는 길이 너무 달라지면서 연락조차도 안 하게 된 친구가 있다. 꼭 한번 연락해 봐야겠다.
나는 올곧게 화를 내지도 못했다. 사람이 화를 낼 때는 낼 줄 알아야 하는데, 그조차도 내게는 어려운 일이었다. 그저 나는 갈등을 회피하고 도망쳤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는 호전적인 성격이라서 장난이 심한 남자애들하고 곧잘 싸웠다. 선생님이 반성문 써오라고 시킨 적도 많았고, 내 팔을 뜯기고, 나도 그 애를 뜯었다.
그랬던 내가 아무에게도 화내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화를 내면 내가 손해라고 생각이 들어서 불의를 보고도 참았고, 그냥 너무 소심해져서 불합리한 일에도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무력감이 아니었을까. 나의 집으로부터 시작된. 계란으로 바위를 치고 있는 것 같은 무력감 때문에, 나만 지치는 느낌 때문에. 나만 지치면 나만 손해지 않은가. 그래서 그 아무하고도 싸우지 않기로 한 것이다.
나는 잘 울지도 않았다. 떠올려보면 아주 어릴 때는 눈물이 많았던 것 같은데. 학창 시절 수련회를 가면 촛불을 들고 교관이 부모님, 선생님, 친구들 얘기를 하면서 눈물을 유도했다. 그때도 나는 눈물 한 방울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많은 친구들이 울기에 조금 우는 척은 했던 것 같다. 나만 안 울면 이상할 것 같아서. 학교에서 억울한 일을 당해도 눈물 한 방울 나오지 않았다. 그때의 나는 정말 내가 억지로 울지 않는 이상 100번 찔러도 눈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 모든 것은 나의 마음에는 아무 관심이 없던 부모님 때문이었다고 생각이 든다.
아이가 학교에서 상장을 받았다. 그 어린아이가 얼마나 기쁘고 얼마나 부모님에게 자랑하고 싶었을까. 신나서 자랑해도 어머니는 그다지 기뻐하지 않는다. 별 반응이 없다. 아버지는 더 잘해야 한다고 더 잘하라고만 한다. 오히려 내 실수를 나무란다. 아, 나는 별로 기뻐할 필요가 없구나.
학창 시절 부모님 친구분을 만났다. 내가 취미로 혼자 피아노를 열심히 치던 때였다. 취미가 뭐니? 묻기에 피아노 친다고 하니 잘 치겠구나! 잘 치니? 하셨다. 그러자 우리 아버지는 "얘 잘 못 쳐." 하셨다. "공부도 그닥 못해"하셨다. 나는 잘 못하는 부끄러운 딸이구나.
우울감과 무력감이 최상이던 시절, 우울증에 대해 많은 검색을 해보다가 그런 글을 보았다.
당장 주변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세요. 내가 지금 우울감을 느끼고 있다고 우울증인 것 같다고 당장 말하세요. 걱정보다 어른들은 적극적으로 도와줄 거예요.
나는 정말 큰 용기를 냈다. 수천번 아니 수만 번 고민 후에 얘기를 꺼냈다. 감히 아버지에겐 말을 꺼낼 생각도 못했고, 어머니에게 말했다.
"엄마, 나 우울증 인 것 같아..."
"네가 무슨 우울증이니? 아니야."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난 왜 살까? 살 이유가 도대체 있나? 죽고 싶어졌다. 내가 죽어서 그제야 어머니와 아버지가 아주 크게 후회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우울증을 스스로 극복했던 이야기는 나중에 추가적으로 적어봐야겠다.
여전히 나는 엄청 잘 웃고, 엄청 잘 우는 감정적인 사람은 아니다. 남편이 나를 로봇 같다고 말한 적도 있다. 그래도 남편을 만난 후의 나는 남편덕에 엄청 웃고, 남편이 울보라고 하기도 한다. 남편과 아주 격하게 싸우기도 했다. 여전히 자주 도망치지만, 감정과 마주할 용기가 생겼다. 이사람을 만나지 못했다면 난 여전히 메마른 삶이었으리라. 남편을 만나서 비로소 나의 정서나무에 나뭇가지가 자라나고 그 가지들에 푸릇한 이파리가 돋아나고 꽃봉오리가 맺혔다.
그리고 현재는 나의 아들을 만나 나의 정서나무에 꽃이 활짝 피었다.
그 꽃의 이름은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