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가 아니라며 무기한 미뤄대는 아버지 사이에 끼어 내가 이도저도 못하는 사이에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다.
남편 그러니까 당시의 남자친구는 나보다 5살이 많았으므로 더 이상 확신 없이 기다릴 수 없다는 결단을 내렸다. 확정하고 진행하지 않으면 본인은 나이가 있기 때문에 결혼정보회사를 가던 다른 길을 찾겠다고 한다. 나를 너무 사랑하지만 무기한 기다림은 어렵다고.
나 역시 결단을 내린다. 결혼이 집안의 결합이던 뭐던 우리는 양가 도움 없이 결혼하니, 그리고 성인이니 허락은 필요 없다고. 우리는 진행할 테니 참석을 할지 말지는 아버지가 결정하라고.
그렇게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어 순조로운 진행으로 가는 줄로만 알았다.
사건의 발단은 아버지가 내 남자친구에게 따로 연락이 온 것이었다. 문자로 '시간 될 때 연락 주게'하여서 남자친구가 전화를 걸었더니 "시간 될 때 술 한잔 하자" 했다는 것이었다. 남자친구는 남자친구 쪽 식구들을 만날 때 내가 불편할까 먼저 배려하는 타입이었다. 그러니 나 역시 남자친구가 불편할까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비장인과 갑자기 둘이 본다는 게 얼마나 불편한 일인가.
"남자친구랑 술 먹자고 했다면서? 그럼 우리 같이 만나게 약속 잡아볼까?"
"왜 네가 전화해? 너 남자친구가 시켰어? 됐다고 해라"
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걸 남자친구에게 그대로 전해도 될지도 모르겠고, 그저 한숨 만 나왔다.
식장은 남자친구 쪽에서 양보해서 서울 우리 집 근처로 잡기로 했다. 어머니를 먼저 만났으니 이야기를 하고, 늦게 들어오는 아버지를 기다렸다가 이야기했다.
왜 본인을 빼놓고 이야기하냐고 화를 낸다. 먼저 만났으니 엄마에게 먼저 이야기한 거라 해도 도통 들어먹지를 않는다.
식장은 10군데를 돌아보고 리스트업 해서 장점단점금액을 엑셀로 정리해서 본인한테 보고하란다. 그럼 본인이 결정해주겠다고 한다. 너무 기가 차서 말도 안 나왔다. 그러더니 하는 말이 "주차도 고려해야 하는데 너네들이 그런 거 알기나 하냐? 위치는 내 친구들 친척들 어디서 오는지 알고 있냐? 그런 걸 다 고려해야 하는 거다. 네가 뭘 알겠어"
자기 입장만 생각하는 것도 어이없었지만 또 시작된 무시발언에 나는 결국 한마디 하고 만다.
"무시하지 마. 나도 생각이 있고 다 고려해서 결정해"
"이 xx가 그럼 너 마음대로 다 해라 그냥"
갑자기 날아온 것은 쌍욕이었다.
"이 형편없는 xx가 어디서 형편없는 xx를 만나 가지고 그 xx 때문에 정말 형편없는 x이 돼버렸어."
드라마 속에서나 보던 막장가족. 그건 우리 집이었다. 딸에게 쌍욕을 내뱉는 아버지. 딸이 결정한 문제를 가지고 남자친구 때문에 변했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내뱉는 아버지. 이다음에 어머니가 내게 해준 말은 더 가관이었다. 아버지는 이미 화가 나있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남자친구에게 본인이 먼저 굽히고 술 먹자고 해줬는데 '감히' 내 딸을 조종해서 전화 걸게 시켰기 때문에. 감히 먼저 굽신굽신 하면서 언제 보면 괜찮으실지 묻는 전화를 걸지 않았기 때문에. 아들을 장가보내면서 여자쪽집에 혼인을 청하는 연락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너무 기가차고 화가 났지만 나는 마지막으로 노력해 보기로 한다. 아버지에게 장문의 편지를 남겼다. 내 마음이 어떤지 어차피 결혼할 거라면 좋게 해 주면 안 되겠는지. 아버지는 아무런 답도 연락도 주지 않았다.
남자친구는 축복받지 못하는 결혼, 우리 아버지가 혹여나 오지 않았을 때 사람들의 시선 등을 걱정했고 힘들게 본인을 키워준 부모님께 너무 죄송하다고 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나는 결국 너무 미안해 헤어짐을 고한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를 너무 사랑했다. 둘 다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진행해 보기로 한다. 나는 아버지가 사회적 시선에 엄청 민감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식장에 오지 않을 리가 없었다. 남들의 시선 때문에.
아버지는 상견례도 참석하고 식장에도 왔다. 으레 그 사람 좋아 보이는 교양있어 보이는 웃음과 말투로 사돈댁을 대했다. 그래 다시 좋게 지내보자 하는 마음도 들었다. 그러나 그 마음은 순식간에 다시 눈처럼 녹아 없어졌다. 식이 끝나고 내 얼굴을 보자마자 아버지가 한 말은 "식 끝나고 해야 될게 뭔지 모르지? 친척들 연락부터 돌려라. 그리고 신혼여행 다녀오면 토요일에 바로 할머니댁부터 와라."
식이 끝난 날 다른 모든 사람들한테 들은 말은 고생했다 수고했다 행복하게 잘 살아였는데 아버지가 내 얼굴을 보자마자 하고 싶은 말은 고작 이런 말이었다. 우리의 스케줄 같은 것 의견 같은 것은 안 중에도 없는 명령. 그래도 좋은 날이니 우선 네네 한다.
그런데 갑자기 주차장 앞에서 우릴 불러 세운다. 왜 그딴 식으로 했냐며 갑자기 식에서 본인마음에 안 든 부분들을 지적하기 시작한다.(심지어 대부분 지인들이 따로 괜찮았다고 좋았다고 할 정도였던 부분들이었다.) 어쩌라는 거지? 식은 이미 끝났는데?
"이미 끝난 걸 가지고 왜 그래"하니 불같이 화를 낸다. 나도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대체 왜 그러냐고 화를 낸다. 신혼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결심한다. 아버지를 더 이상 만나지 않겠다고. 언제까지 이래야 하는지 가슴이 갑갑했다.
떠올려보니 취업 후 자취하면서 나는 너무 좋았다. 집에 아버지가 없어서. 친구가 부모님 보고 싶지 않냐고 자기는 너무보고싶어 울었다고 하는데 실은 나는 전혀 보고 싶지가 않았다. 비로소 숨이 쉬어지는 느낌이었다. 그저 말 잘 듣는 착한 딸이라 집에 오라면 가는 딸이었을 뿐.
그럼에도 가슴 한편이 아리고 아픈 것은 어찌할 수가 없는지 매일밤 남편 몰래 눈물을 삼켰다. 그 후 어떻게 자식에게 연락한 통 안 할 수 있는지 그 지독한 아버지에게 질려버리고 말았다. 아버지는 내가 '감히' 먼저연락을 안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자식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은 다른 세상 이야기임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