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생각 같은 행동을 했는데

속이 참 깊은 아이와 생각이 없는 아이

by 샤이어

최근의 일이다. 시아버님과 단둘이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내 남편을 별명인 그니(운동 안 해도 근육부자라서)라고 쓰겠다.


"그니가 중학생 때인가, 내가 일을 못하게 돼서 집에 있었거든. 그니가 어느 날 갑자기 학원을 안 가겠다는 거야. 왜 안 가냐고 가라고 하니까 필요 없다고. 도움이 안 된다기에 그러라 했지. 그러다 내가 다시 일을 하게 됐는데 그니가 다시 학원을 보내달라는 거야. 왜 안 다니겠다고 했었냐 하니 아빠가 일을 안 하는데 자기가 어떻게 학원을 다니냐고 그러더구나. 그니는 참 속이 깊은 아이지. 그렇지?"


"맞아요 아버님. 같이 살아보니 참 속이 깊어요"


맞다. 내 남편은 속도 깊고 철이 없음과는 정반대에 있는 남자다. 그런데 문득 나는 서글퍼졌다.




우리 집은 가난했다. 남편은 종종 '우리집이 어릴 때 가난해서-'란 말을 붙이는데, 가난배틀이나 불행배틀을 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집은 남편이 말하는 것보다 더욱 가난했다. 찢어지게냐고 묻는다면 그 정도는 아닐지라도 정말 가난했다.


어릴 적 우리 가족은 네이버 지식백과라던지 나무위키라던지 뉴스에도 등장하는 청계변 시민아파트에 살았다. 예전에 어떤 영화에도 나왔던 것으로 안다. 그게 시민아파트라는 것이었구나 검색해 봤다가 알게 되었다.

아파트인데 엘리베이터가 없고 화장실이 사람하나 겨우 들어갈 푸세식이고 주방은 높은 턱을 내려가야 했던 베란다란 건 존재하지 않던 집. 아직도 기억나는 매달린 버튼을 누르면 깜빡깜빡하며 켜지던 전등.

아침이면 냉장고에 쥐 발자국이 찍혀있고 밤이면 엄마가 쥐덫을 놓던. 아파트를 나설 때 바닥에 죽어있던 쥐시체들. 서랍 속에 뒀던 빨대로 음료를 먹다가 바퀴벌레를 먹어 뱉어야 했던 집. 주변엔 아파트단지란 게 존재하지도 않던 동네. 뒤편으로는 낡은 판자촌 같은 집들과 낡은 주방용품점들과 낡은 철공소 같은 것들이 있던 동네. 앞쪽으로는 고가도로와 벼룩시장이 있던 동네였다.

옛날 전등 스위치.
21세기에 집안에 이런 화장실이 있는 아파트가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때 이사를 갔는데 그게 임대아파트였다. 아마 재개발 때문에 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실평수 10 평남짓의 집이 너무 작아서 항상 큰집으로 이사 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임대아파트라는 것은 몰랐다. 우리 집이 임대아파트라는 걸 내가 알게 된 것은 몇 년 후였다. 학원버스기사가 나를 픽업해야 하니 집이 어디냐고 물었는데 듣자마자 "아~거기 임대아파트요?' 해서 알았다. 어려서 임대아파트란 게 뭔지 정확히 몰랐지만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단번에 알았다. 그분은 무슨 의도로 그리 말했을까. 어린아이 앞에서 본인은 뭐가 그리 잘났기에 그렇게 말했을까.


엄마는 항상 무엇이든 아껴 썼다. 로션도 치약도 튜브 뒤를 가위로 잘라서 벽면에 붙은 조금도 버리지 않고 사용했다. 세제도 샴푸도 마지막엔 물을 넣어서 마지막까지 사용했다. 내 옷과 신발과 가방은 당연히도 시장에서 산 것들이었다. 혹은 마트 앞 가판대에 널어놓고 세일하는 옷이거나. 나는 단 한 번도 유행하는 브랜드제품을 사달라고 요구해 본 적이 없었다. 어릴 적 장난감을 사달라고 떼써본 적이 없었다. 안된다면 그냥 말았다.


초등학생 때까지는 생일 때가 유일하게 아버지가 선물을 사준다고 말하는 때였다. 고심해서 너무 비싸지 않은 게임 cd를 요구했다. 그 선물조차도 아버지는 몇 달이나 지나서야 내가 왜 생일선물 안주냐고 닥달해서야 사주었다. 딸과의 약속을 매번 지킨 적이 없던 분이었고, 그건 생일선물도 예외는 아니었다.


중학생 때는 학원은 단과면 된다고 했다. 고등학생 때는 그마저도 관두고 무료 인터넷강의로 공부했다. 용돈도 그냥 안 받았다. 필요할 때만 요구했다. 책값이 많이 드니까 용돈까지 받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세뱃돈도 가져가고 애가 모아놓은 용돈도 빌려가는 판국이었으니 나는 돈을 요구하지 않았다.


다시 생각해 보면 참 멍청했다. 아버지는 비싼지 싼 지도 모르고 물건을 사고, 어머니는 팔랑귀처럼 영업에 넘어가서 이상한 것들을 많이 샀다. 아버지는 사업하는 사람은 얕보이면 안 된다고 좋은 차를 타고 다녔다. 어느정도로 좋은차였냐면 나를 데리러온 아버지의 차를보고 친구들이 내가 부잣집 최소한 잘사는집 애인줄 알정도였다. 부모는 낭비하고 아이는 그 작은 용돈도 아껴서 모았다. 아이는 현금 5만 원이 있는데 부모는 그조차도 없어서 그 돈을 빌려갔다.


사실은 근본적으로 우리 집의 가난은 순전히 아버지 탓이었다. 최근 본 웹툰에 '사업병'이라는 게 나왔다. 완전히 우리 아버지얘기가 아닌가. 성실한 일 없이 계속 밑 빠진 독에 물 붓듯 돈이 나오지 않는 항아리. 파출부일로 힘들게 벌어둔 본인 어머니의 돈까지도 가져가버리는 지독한 항아리. 몸이 약한 아내가 집안일에 육아도 모두 전담하며 벌어온 돈까지 가져가는 아주 독한 항아리. 허구한 날 좋은 집으로 이사 갈 거라고, 학자금대출은 다 갚아주겠노라고 허풍만 떨어대는 항아리였다. 사회초년생이 된 딸의 돈도 빌려달라고 가져가서는 되돌려주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철이 빨리 들었던 건 나도 마찬가지였는데, 남편과 똑같은 행동을 했었는데 왜 나는 속이 깊은 아이가 아니었을까. 남들은 내게 속이참 깊다고들 하는데 왜 아버지에게는 생각 없는 아이가 돼버렸을까. 내가 생각 없는 아이여야지만 본인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까 그랬던 건 아니었을까.

요즘 나는 '어린것이 왜 그리 부모님 생각부터 했을까 그러지 말걸 다른 애들처럼 떼도쓰고 이기적이고 철없이 살걸.' 하다가도 '그래, 내가 그렇게 했기 때문에 후회도 적다. 난 최선을 다했으니까.' 하고 생각한다. 이제부터는 드디어 이기적이기로 한다. 내행복만 생각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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